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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美, 반도체 굴기 로드맵 완성… 삼성·SK의 메모리마저 주도권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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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론에 보조금 8조4500억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61억4000만달러(약 8조4500억원)의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25일 발표했다. 이와 함께 최대 75억달러(약 10조3000억원 )의 대출을 해주기로 했다. 직접 보조금 규모는 삼성전자의 64억달러(약 8조8000억원)보다 적지만, 전체 지원금은 대출을 합쳐 총 136억4000만달러에 이른다. 바이든 대통령은 마이크론이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인 뉴욕주(州) 시러큐스를 직접 찾아 이 같은 지원안을 발표한다. 마이크론은 향후 20년간 총 1250억달러(약 172조원)를 미국 내에 투자하기로 했다.

마이크론의 대규모 투자와 미국 정부의 지원은 자국 내에 완결된 형태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구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까지 미국이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한 삼성전자와 TSMC, 인텔의 투자는 파운드리(위탁 생산)와 패키징(조립) 중심이다. 마이크론이 투자하는 것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기본이 되는 메모리 반도체로,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체 글로벌 시장의 70% 정도(D램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를 한국과 대만 등에서 대부분 공급받아 왔지만, 이제 자국에서 생산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메모리 반도체부터 고대역폭 메모리(HBM), 인공지능(AI) 가속기 등 최첨단 반도체를 미국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 정부가 자국 기업인 인텔과 마이크론을 집중 육성하면서, 해외 기업 중 파운드리 1·2위 업체인 TSMC와 삼성전자를 끌어들여 ‘반도체 자국주의’를 완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첫 ‘메모리 지원’ 나선 미국

마이크론은 뉴욕주 시러큐스에 최첨단 메모리 공장 두 곳을 건설하고, 아이다호주에 있는 기존 R&D(연구·개발) 공장을 확장하기로 했다. 백악관은 “2026년부터 아이다호주의 R&D 센터가 가동되고, 2028~2029년부터는 뉴욕의 두 공장에서도 반도체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론의 투자로 7만개 이상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백악관은 이날 마이크론에 대한 지원금 지급 결정에 대해 “마이크론의 공장 설립 등 대미 투자로 수십년간 외국 기업들이 지배했던 첨단 메모리 칩 기술의 우위를 미국으로 되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업체가 미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것은 마이크론이 최초로, 반도체 업계에선 “반도체 산업 전체를 미국으로 이식하고 싶어 하는 미 정부의 퍼즐이 완성되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이은 3위 메모리 기업인 마이크론은 1990년대 일본·한국 반도체 기업의 D램 저가 공세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미국 메모리 기업이다. 가격 경쟁에 밀려 D램을 발명한 인텔이 시장에서 철수한 상황에서 마이크론은 경쟁사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일본 도시바의 메모리 사업을 차례대로 인수하며 글로벌 메모리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마이크론의 메모리 생산 대부분은 일본과 대만 등 아시아 국가에서 이뤄진다. 미국 정부는 이번 보조금 지급을 통해 첨단 D램 생산을 미국으로 돌려놓겠다는 전략이다.

이날 브리핑은 마이크론이 공장을 건설 중인 뉴욕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의원이 첫 발언을 했다. 그는 “메모리 칩은 휴대폰부터 자동차, 방위 기술, 특히 AI와 같은 혁신 기술 발전에 필수적”이라며 “이러한 칩을 해외, 특히 중국과 같은 경쟁국에서 생산하도록 둬선 안 된다”고 했다.

◇약진하는 마이크론

반도체 업계에선 “그동안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비해 생산능력이 크게 뒤처졌던 마이크론이 보조금을 등에 업고 약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 상무부는 보도 자료에서 “총 240만 평방피트의 클린룸(반도체 생산을 위한 청정 공간)이 확보될 예정”이라며 “축구장 40개 크기와 맞먹는 규모”라고 했다.

지난해 4분기 글로벌 D램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 45.5%, SK하이닉스 31.8%, 마이크론 19.2%로 격차가 컸다. 하지만 향후 미국 본토의 첨단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이 늘어나고 공급망 재편에 나서는 고객사들이 마이크론 제품을 선택하며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내에서 제조되는 메모리 반도체는 전 세계 생산량의 약 2%에 불과하다.

마이크론은 기술 면에서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바짝 뒤쫓고 있다. 지난 2022년 한국 기업들에 앞서 232단 낸드플래시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고, 지난 2월에는 삼성전자와 같은 날 AI 반도체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최첨단 제품인 ‘12단 HBM3E’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에 앞서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에 HBM 제품을 공급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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