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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세상을 구하라” 야심 품은 경제 사상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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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벽돌책] 사람을 위한 경제학

조선일보

월가 점령 시위가 한창이던 2011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수십 명의 학생들이 ‘이 수업을 듣지 않겠다’며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사건이 있었다. 그 유명한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경제학 입문 수업이었다. 수업을 거부한 학생들은 현대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은 주류 경제학이 낳은 문제라고 봤나 보다. 주류 경제학을 배우는 일은 그런 모순에 눈감는 항복 행위라고 여겼던 듯하고.

실비아 나사르의 ‘사람을 위한 경제학’(반비)을 읽다가 문득 그 학생들을 떠올렸다. 가진 자들을 옹호하는 사악하고 단단한 율법이 세상을 지배하며, 거기에 입문하는 순간 자기들은 세뇌될 테니 처음부터 거부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얼마나 젊은이답게 순수하고…, 어리석은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뷰티풀 마인드’의 저자이자 경제학 석사인 나사르는 19세기와 20세기 경제사상가들의 삶을 흥미진진한 연속극처럼 보여준다. 그녀가 고른 학자들은 모두 인간적인 흠결이 있지만 적어도 ‘부자 편에 서야겠다’ 따위 태도는 지니지 않았다. 그들을 사로잡는 것은 무려 ‘세상을 구하겠다’는 열정과 야심이다. 이 사상가들은 자신들의 학문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하지만 그들의 아이디어는 혁신적이기는 해도 늘 불완전하다. 그래서 다음 세대 사상가들로부터 논박당한다.

조선일보

북스


816쪽에 걸쳐 책이 그리는 경제사상사는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생각 도구’가 진화하는 과정이다. 그 도구는 율법이 아니며 사악하지도 단단하지도 않다(이 책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인물이 마르크스다). 현재의 경제학 교과서 역시 학문적 열정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논박당하고 보완돼야 한다.

짧은 책 소개지만 이거 하나는 빠뜨리지 말아야겠다. 천재들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그런 건지, 아니면 천재들이라 자존심이 세서 그런 건지, 몇몇 인물들의 연애담이 정말 재미있다. 특히 비어트리스 포터 웨브와 조앤 로빈슨, 이 당당한 두 여성 학자의 삶은 여태까지 영화화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경제학에 관심이 없어도, 그저 인물 이야기로 읽어도 푹 빠지게 될 책이다.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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