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8 (수)

[모던 경성]모던 보이도, 쪽진 婦人도 음악회 오지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뉴스 라이브러리 속의 모던 경성]신문·잡지마다 ‘음악감상법’ 실려…’음악, 이해하는 청중 몇이나 될까’

조선일보

192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경성을 비롯한 전국에서 '음악회'가 자주 열렸다. 모던 보이, 모던 걸은 물론 쪽진 부인네까지 객석을 채울 만큼, 서양 고전음악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음악을 진짜 이해하는 청중은 몇이나 될까' (홍난파)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이때문에 신문,잡지에 '서양 음악 듣는 법'같은 강좌가 자주 실렸다./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양 음악을 어떻게 들을까’

1929년 홍난파가 연재한 신문 기사 제목이다. 난파는 1929년9월8일부터 6회에 걸쳐 조선일보에’서양음악 감상법’을 썼다. 당시 ‘음악회’가 우후죽순처럼 열렸고, 라디오와 축음기에서도 서양 음악이 흘러나왔다. 신문에 ‘음악감상법’을 소개해야할 만큼, 서양 고전음악이 넘쳐난 세상이었다. 보통 여학생들도 성악공부를 하거나 바이올린을 배우고, 쪽진 구식 부인들도 유행처럼 음악회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근래에 이르러서 음악회가 잦아집니다. 그리하야 일반 여학생들도 성악공부를 한다는 등 혹은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등 서양음악에 대한 지식이 점점 늘어갑니다. 음악회를 할 때마다 대성황을 일으키는 것은 전혀 이 까닭이겠습니다.그리고 음악회 때에 유의하여 보면 쪽지신 부인네들도 많이 오셔서 이국(異國)의 서투른 음률에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서양음악 듣는 법’1, 매일신보 1925년2월 15일)

난파는 한국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동시에 1922년 서양음악을 교육하고 보급할 목적으로 ‘연악회’를 만든 음악교육자였다. 서양 음악 대중화를 위해 음악감상법을 소개하는 데도 앞장섰다.

◇'클래식 모르면 세기의 쌍놈(?)’

요즘도 서양 고전음악을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은데 서양 음악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오죽했을까. 문제는 100년 전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은 서양 음악을 모르면 문명인 취급을 못받을 만큼 클래식 음악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강했다는 점이다. 식민지로 전락한 민족의 재기를 위해 서구 근대 문명을 빨리 배워야한다는 압박이 강한 시절이었다. 당시 서양 음악은 근대 문명의 일부, 내지는 핵심으로 받아들여졌다. 음악이 취미나 오락이 아니라, 하루빨리 습득해야하는 필수과목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 인텔리겐차 사이에 음악열의 침윤이 현저한 것은 하나의 주목할 만한 현상’(음악평론가 김관, ‘사해공론’제4권제7호,1938,7)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오죽하면 채만식이 서양음악을 모른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갈데 없는 ‘세기(世紀)의 쌍놈’'이라 자학했을까. ‘아무리 해도 음악이란 내게는 난물중에 유수한 난물에 속하는 者이다. 누구 썩 손쉽게 그 놈 음악을 알아듣는 묘방이 있거들랑 좀 전수를 시켜주셨으면 싶다’고 공개 요청하는 신문 칼럼을 썼다. (’클래식 음악 모르면 세기의 쌍놈이라고?’,모던 경성 2021년12월11일)

조선일보

홍난파는 음악회 청중 중 제대로 이해하고 연주를 듣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 난파는 1929년과 1930년 조선일보에 '음악감상법'을 여러차례 연재했다.


◇'음악을 이해하는 청중이 과연 몇이나 될까’

1920~1930년대 신문·잡지엔 ‘음악감상법’이나 ‘음악상식’같은 칼럼이 종종 실렸다. 홍난파는’(경성)공회당이나 청년회관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가보면 언제든지 만원의 성황을 이루기는 하지만 그 수많은 청중 가운데 참으로 음악을 이해하고 참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과연 몇사람이 되는지 이것은 적지 않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귀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음악도 여기에 대한 소양이나 예비지식 없이 들으면 그는 마치 쇠귀에 경읽기로 웅얼웅얼하고 똥땅똥땅하는 소리는 들을 망정 참 음악의 소리는 용이히 듣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청각을 음악적으로 훈련’하면서 ‘음악의 예비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이상 ‘서양음악을 어떻게 들을까’1,조선일보 1929년9월8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

서양 음악은 1920년대 조선인에게 낯선 현상이었다. 홍난파는 1929년에만 조선일보에 '서양음악을 어떻게 들을까' 라는 주제로 음악감상법을 소개했다. 기사는 1929년9월8일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오페라는 얼마나 아름다고 굉장할지 끔찍끔찍하다’

난파는 테너, 바리톤, 베이스(남성)와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여성) 등 음역에 따른 구분, 소나타와 콘체르토(협주곡), 심포니(교향악), 가극(歌劇·오페라)등을 소개한다. 홍난파는 대표적 오페라로 구노의 ‘파우스트’바그너의 ‘탄호이저’ 로엔그린’'마이스터 가인(歌人)’ ‘니벨룽겐의 지환(指環·반지)’과 베르디의 ‘리골렛토’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 롯시니의 ‘세빌랴의 이발사’푸치니의 ‘호접부인’(나비부인) 등을 들었다.’이런 가극 무대장치에도 한 막에 수만원이란 큰 돈이 들며 또 출연하는 배우도 전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들입니다. 죽은 카루소나 살아있는 사람으로는 ‘파-라’ ‘샬리아핀’ ‘슈만하잉크’같은 이들이 유명한 가극배우인 동시에 또한 세계에서 첫째 둘째를 다투는 성악가들인즉 정말 가극은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굉장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끔찍합니다.’(‘서양음악을 어떻게 들을까’4,10월10일)

조선일보

음악 감상법을 연재한 매일신보 1925년 2월15일자 기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음악의 정조(情調)와 철학을 이해해야

매일신보는 ‘서양음악 듣는 법’1~3(1924년4월20일,5월4일,5월11일). ‘가정상식 통속강좌-서양음악 듣는 법’1~4(1925년2월15일,2월22일,3월1일,3월8일)이란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음악 전체의 기분, 다시 말하면 그 음악 전체에 떠도는 정조(情調)를 맛보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어떤 작품의 정조를 이해하려면 작곡가의 생애와 사상적 경향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베토벤 음악을 알려면 베토벤의 시대와 사상을 알지못하면 제대로 즐길 수없다는 얘기다. (‘서양음악 듣는 법’3, 매일신보 1925년3월1일)

◇레코드는 가장 좋은 음악감상 도구

음악평론가 김관(金管)도 잡지 ‘여성’에 6회에 걸쳐’음악감상법’을 실었다. 그는’오늘 양악(洋樂)은 널리는 보급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젊은 사람들사이에서 애호되어 있고 이에서 일반 사회인의 관심도 깊어오고 있는 것은 대단 좋은 일이라고 할 수있다’고 운을 뗀 후, ‘한가지 섭섭한 것은 대중은 물론 양악애호자들까지도 말하기를 양악은 알아듣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하고 드디어 양악을 감상하는 것은 특수한 기술이나 두뇌를 가져야하는 줄 알고 있음이다’라고 했다.(’레코드에 의한 음악감상법’ 1, ‘여성’ 제2권2호, 1937,2)

◇'실연보다 레코드가 낫다’

김관은 음악감상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레코드를 추천했다. ‘음악감상력을 양성하려면 첫째는 될 수있는대로 많이 좋은 음악을 늘 들어야 할 일’이라면서 ‘조선과 같이 음악회라든지 다른 실연(實演)의 기회를 빈번하게 접할 수 없는 곳에서는(樂壇적으로 보아 실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이 레코드를 이용해서 음악을 듣는 일은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일이고 효과상으로도 상당한 것이다’고 썼다. 김관은 박자와 리듬, 화성(和聲)부터 악기 식별법까지, 상세하게 음악 상식을 소개했다. 마지막회(’여성’제2권7호,1937.7)에선 악기별 추천 레코드를 소개하는데, 오케스트라 분야에선 롯시니 ‘윌리엄텔’ 서곡, 베토벤 교향곡 6번 등을 소개했다.

김관은 ‘성악감상법’(‘여성’ 제3권2호,3호, 1938,2,3)도 소개했다.

◇현대인에게도 버거운 클래식 음악

서양 음악을 어떻게 즐길까는 현대인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낯선 현대음악까지 얘기할 것도 없다. 연주시간만 1시간을 훌쩍 넘기는 말러나 브루크너 교향곡이 자주 연주되는 요즘 음악회에 별생각없이 갔다가는 쿵쾅거리는 소음에 시달리다 기진맥진해 돌아오기 십상이다. 요즘은 서양음악 말고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의 종류도 다양하고, 음악말고도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이 넘치기 때문에 굳이 서양음악에 목맬 필요야 없다. ‘비(非)문명인’ 취급 받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서양 고전 음악을 접했을 100년 전 사람들을 떠올리면 딱한 생각마저 든다.

◇참고자료

김관, 음악감상법 1~6, ‘여성’ 1937년2월호~7월호

김관, 조선에 있어서의 음악교양의 현상, 사해공론 제4권제7호, 1938,7

조선 뉴스라이브러리 100 바로가기

※'기사보기’와 ‘뉴스 라이브러리 바로가기’ 클릭은 조선닷컴에서 가능합니다.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