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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어린 눈에 비친 ‘광기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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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리는 서로 사랑도, 생각도, 병균도 나눈다. 위정자들에게 불온한 사상은 책을 타고 넘나들기 때문에 책은 강력한 통제의 대상이었다. 수십년 전엔 경찰이 대학교 앞에서 가방 검사를 하고 불온한 책을 걸러내기 일쑤였다. 지금도 권위주의 정권이 자리잡은 나라에서는 출판에 대한 검열이 견고하다. 우리나라에 출판사가 10만개가 넘는데 중국엔 겨우 수백개의 출판사만 있다. 러시아의 출판 재벌도 미디어청 관리 앞에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자유로운 생각의 교환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 여기는 곳에서는 ‘출판과 표현의 자유’는 침해하기 어려운, 중요한 가치다.



국제출판협회는 ‘출판의 자유’라는 중요한 가치를 지키다가 핍박받은 출판인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볼테르상을 준다. 감옥에 있거나 종교적·정치적 위협에 시달리는 출판인들에게 상을 줘서 그들이 처한 위험을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다. 상의 이름은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의 이름을 땄다. 1906년에 나온 볼테르의 전기에서 저자인 에벌린 홀은 볼테르의 생각을 이렇게 요약했다. “나는 당신의 말에 찬성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당신의 의견을 말할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 광신과 배타성을 타파하기 위해 평생 싸웠고 ‘톨레랑스’를 프랑스 정신의 일부로 만든 그를 기려 상의 이름으로 삼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최근엔 볼테르에게 ‘반유대주의’ 혐의가 있다며 볼테르의 이름을 상의 이름에서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볼테르도 그가 살았던 시대의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지만 유대인을 포함해 종교적 박해를 받는 모두를 변호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그의 이력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를 ‘반유대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한 주장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 주장의 근거로 삼은 것이 나치가 지배하던 시절 프랑스에서 출판된 친나치주의 책이라서 더 맹랑하다.



‘커튼 뒤에서’는 나치 지배에 놓여 있던 프랑스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치의 괴뢰 정권, 비시 정부는 1940년부터 1944년까지 프랑스 남부를 통치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크게 침해했고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을 강제수용소에 가뒀다. 유대인 엄마와 ‘고이’(비유대인) 아빠 슬하의 자매. 엄마는 병으로 세상을 뜨고 새엄마가 왔다. 엄마가 그리운 탓에 새엄마에게 심술을 부리면서 일상이 흘러가는데, 세상은 하 수상하여 전쟁이 깊어진다. 아빠도 참전했다가 장애인이 되어 돌아오고 새엄마도 바느질거리라도 구해 입에 풀칠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폭격, 사이렌, 그리고 공포와 울부짖음 속에서 더 큰 공포가 다가온다. 유대인 감별법. 세명 이상의 조부모가 유대인이거나 두명의 조부모와 배우자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감별’된다. 그래서 자매는 유대인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불과 8개월 만에 기준이 바뀐다. 유대교를 믿거나 증조부모 중 두명이 유대인인 사람. 이제 자매는 유대인이 되었다. 자매를 체포하러 온 경찰관. 그를 피해 커튼 뒤에 숨은 자매. 커튼을 들추는 자는 누구인가?



광기의 시절에 나온 책에 기대어 300년 전의 계몽주의자를 비난하긴 어렵다. 그런데 그 바람에 따라붙은 다른 질문이 생겼다. 잘잘못을 떠나 굳이 서구 철학자 이름으로 상을 줄 이유는 있는가?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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