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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AI 반도체 기술 '심장' 찾아간 이재용···ASML 신임 CEO도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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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자이스와 '기술 동맹' 확대]

EUV장비에 자이스 부품 3만개

삼성, 차세대 D램 양산 앞두고

ASML·자이스와 삼각연대 구축

국내기업들과도 협업 확대 전망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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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반도체 장비 업계의 ‘히든챔피언’으로 통하는 독일 자이스 본사를 방문하면서 삼성과 ASML·자이스를 잇는 최첨단 기술 동맹이 한층 더 단단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이스는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 ‘슈퍼 을’로 통하는 ASML에 각종 광학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기업이다. 자이스가 없다면 ASML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적용되는 공정을 살펴보면 자이스 기술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통상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는 웨이퍼 위에 빛을 쏴 회로를 새기는 노광 공정을 거쳐야 한다. 과거에는 파장이 비교적 긴 심자외선(DUV) 장비로도 충분히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회로 폭이 좁아지면서 극도로 파장이 짧은 EUV를 쏘아내는 첨단 장비가 각광받고 있다.

문제는 EUV 광선이 물질에 닿으면 쉽게 흡수된다는 것이다. 10㎚(나노미터·10억분의1m) 이하 회로를 새기려면 광선을 초정밀 유도탄처럼 정교하게 쏴야 하는데 일반적인 거울은 EUV 광선을 대부분 흡수해버려 회로가 뭉개지거나 잘못 그려진다. 자이스는 EUV의 이 같은 특성을 극복하기 위해 2010년대부터 원자 단위로 유리를 가공하는 기술을 개발해 ASML에 납품했다. 자이스가 갖고 있는 EUV 장비 관련 특허만 200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체 장비 업계의 한 관계자는 28일 “ASML 기술력의 상당수는 자이스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삼성이 ASML을 넘어 자이스까지 기술 동맹에 끌어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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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동에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신임 최고경영자(CEO)가 동행한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푸케 CEO는 10년 동안 ASML을 이끌었던 페터르 베닝크 전임 CEO의 뒤를 이어 24일(현지 시간)부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CEO 자리에 앉자마자 독일로 날아와 이 회장과 대면한 셈이다. 이번 회동에는 이 회장을 비롯해 송재혁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남석우 DS 부문 제조&기술 담당 사장과 안드레아스 페허 자이스 반도체제조 부문 CEO 등이 대거 참석해 최근 기술 동향과 향후 협력 확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자이스는 앞서 2026년까지 480억 원을 투자해 한국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이번 회동을 계기로 국내 기업들과의 협업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삼성전자가 연내 EUV 공정을 적용한 6세대 10나노급 차세대 D램을 양산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자이스와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전 세대 제품보다 더 많은 회로에 EUV가 활용된다는 점이다. D램 공정에 EUV가 적용되면 동일한 칩 면적에 더 많은 기억 소자를 정교하게 배치할 수 있어 AI 시대 메모리칩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각광 받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에도 차세대 D램이 투입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EUV 기술의 중요성이 점차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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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이 회장의 행보 역시 다시 한 번 주목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일식집에서 만나 ‘스시 회동’을 한 데 이어 베닝크 전 CEO(지난해 12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올 2월) 등과 잇달아 직접 만나 미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황 CEO와의 만남이 일식당 사장의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빅샷들과의 만남은 이보다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 역시 올 초 삼성전자 본사를 직접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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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과거 반도체는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어떤 업체가 더 싸게 만들어내느냐를 두고 경쟁했지만 앞으로는 어떤 업체가 고객사 입맛에 맞는 고품질 맞춤형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를 두고 생존 싸움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며 “그동안 CEO 레벨에서 주로 이뤄지던 반도체 세일즈 경쟁 역시 앞으로는 총수 레벨로까지 확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황 CEO를 직접 만난 뒤 회동 사실을 이례적으로 자신의 SNS를 통해 직접 공개하기도 했다.

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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