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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힘든 토끼 위한 ‘따뜻한 보수’를 [기고/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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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줄고 하위 계층 느는 한국

‘운동권 심판론’보다 미래 비전을

집토끼 산토끼 따지지 말라

아니면 보수의 미래는 없다

조선일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과 당선인들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자총회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이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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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참패 책임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대체적인 여론은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나 톤 앤드 매너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듯하나, 필자는 다소 다른 시각에서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주문하고자 한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인식하는 비율은 2020년 59.4%에서 2022년 53.7%로 줄었고, 하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40.5%에서 45.6%로 늘어났다. 우리 국민 절반 가까이가 자신을 하위 계층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부의 절반 가까이를 상위 10%가 가지고 있지만, 하위 50%가 전체 부의 20%도 가지지 못한 양극화 상태이고, 그 정도가 점차 심해지고 있다.

50·60대 국민 중에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부모님보다 잘살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3040은 부모보다 가난한 경우가 많다. 부모는 집을 가졌지만 자신은 평생 월급을 모아도 주택 하나 장만이 어렵다. 더욱이 내 인생은 참을 수 있는데 자식 세대의 앞날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분노와 사회변혁의 갈증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국민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는 정치를 하였는가. 보수 실패의 근본 원인은 국민 개개인이 이런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어떠한 비전과 실천적 방안도 제시하지 못한 데 있다.

선거 전략의 기본은 비전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이(李)-조(曺) 심판론’, 심지어 ‘586 운동권 청산론’까지 꺼내 들었다. 스스로 비전의 부재를 국민 앞에 드러낸 것이다. 그 결과가 수도권-중도층-중산층의 이탈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성장의 기회를 다시 주고, 계층 이동 사다리를 만들어서 열심히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야 한다.

필자가 지난 3년간 ‘약자와의 동행’에 천착하며 당내 강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강조해 온 것은 이런 결과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말로 하지 않는다. 안심 소득은 ‘형편이 어려울수록 더 많이, 형편이 나으면 더 적게’ 지원해 양극화 완화와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도움을 준다. ‘서울런’은 저소득층 자녀에게 1타 강사의 인터넷 강의와 대학생 멘토링을 무료 제공하는 계층 이동을 위한 교육 사다리다. 약자 동행 조례 제정과 동행 지수의 개발 등 진심을 담은 노력도 모두 외로운 투쟁의 연속이었고, 수차례 제안에도 불구하고 당에서는 이를 전국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없었다.

왜 지난 대선에서 사람들은 정치인 이재명에게 열광했는가. 숱한 인성 논란과 대형 범죄 혐의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대통령이 될 뻔했고, 이번 총선에서 사당화(私黨化)된 민주당에 유권자들은 그토록 표를 몰아주었을까? 간단히 말해 ‘이재명은 확 뒤집고 바꿔줄 것 같아서’이다. 급격한 사회변혁을 원하는 국민은 독해 보이는 지도자를 찾는 법이다.

국민의힘이 이렇게 비전에 소극적인 것은 ‘신자유주의적 보수론’에 빠진 수구적 보수 세력 때문이다. 이들은 선명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이념 논쟁과 대결을 위해 전투적 지도부를 요구한다. 대통령은 이들에게 화답하는 길을 택했고, 결국은 수도권과 중도층에서 외면받았다.

조선일보

오세훈 서울시장.


이제 ‘신자유주의 우파’에서 ‘따뜻한 우파’로 노선 전환을 할 때가 됐다. 집토끼 산토끼 따지지 말고 힘든 토끼 억울한 토끼를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이번 변화의 기회를 놓치면 국민은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다.

넘어지고도 우물쭈물하면 1층 밑에 지하 2, 3층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자본주의도 시장경제도 여러 차례 위기 후의 수정 보완을 거쳐 따뜻한 자본주의인 자본주의 4.0 시대를 열었다. 이제 모든 걸 다 바꿔야 한다. 정부 여당의 통치 스타일도 국정 기조도 모두 따뜻한 보수로 바꿔야 산다.

[오세훈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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