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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朝鮮칼럼] 국회의원에게 금배지 대신 점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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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국회의원 중

‘배지’는 한국·일본·대만 정도

의원 자질 갈수록 악화

뭐 잘했다고 금배지 다나

요즘 대학생은 배지보다 ‘과잠’

일하는 척이라도 하게

차라리 배지 말고 점퍼 입어라

4월 8일, 국회사무처는 제22대 국회의원들이 착용하게 될 배지를 공개했다. 총선 본투표 이틀 전쯤이면 매번 이렇게 해 왔다. 개표 직후 당선증 교부와 더불어 배지 배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배지를 받아간 이는 지난 21대에 이어 이번에도 정청래 당선자였다. 정치 입문 13년 만에 국회의원이 된 이준석 당선자는 “배지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여주며 자랑하고 싶다”고 했다. 2020년에 국회의원 배지 ‘언박싱’ 장면을 “세계 최초로 동영상에 올렸다”고 자랑했던 용혜인 의원은 이번에 비례 재선에 성공했다.

제2대 국회부터 착용한 것으로 알려진 의원 배지는 ‘국회기(旗) 및 국회배지 등에 관한 국회규칙’에 근거한다. 전 세계에서 국회의원 배지는 일본 및 일제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과 대만 정도에서만 볼 수 있다. 그동안 의원 배지 존폐 문제가 몇 번 이슈화되긴 했어도 디자인만 10차례 정도 바뀌었을 뿐 국회의원들의 배지 사랑 자체는 요지부동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 배지는 ‘금배지’로 불린다. 실제로는 순금이 아니라 미량(微量)의 도금 배지에 불과해도 ‘국회의원=금배지’는 우리 사회의 통념이다.

각종 국어사전도 금배지를 “국회의원임을 표시하는 배지”로 설명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누리는 언어사회학적 아우라는 금배지만이 아니다. “가려 뽑힌 뛰어난 인물”이라는 뜻의 ‘선량’(選良) 또한 국어사전에 따르면 “국회의원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본래 국회의원이란 국민이 뽑을 정도로 뛰어난 존재라는 의미다. 세간에는 국회 혹은 여의도 ‘입성(入城)’이라는 전근대적 표현도 예사로 사용된다. 국회의원이 아니면 모두 도성 바깥의 민초(民草)라는 뜻인가.

‘금배지’라는 이름값을 하느라 그런지 현실적으로 금배지는 금값을 톡톡히 한다. 186개나 된다는 국회의원의 특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국회의원 한 번만 해도 평생 이리저리 먹고살 수 있는 게 대한민국 정치 풍토다. 낙선이든 낙천이든 국회의원 선거판에 기웃거리기만 해도 보상이나 보은의 가능성이 은밀히 열려 있는 곳 또한 우리 정치판이다. 그런 만큼 국회의원 자리는 거의 모든 직군(職群)에서 로망이다. 관료나 법조인은 물론 기업인, 교수, 군경(軍警), 언론인, 의사, 시민운동가, 심지어 성직자나 문화예술인까지도 금배지를 탐낸다. 청년 정치라는 명분으로 여의도에서 ‘인생 로또’를 꿈꾸는 20대도 적지 않다.

금배지를 향한 ‘소용돌이 정치’는 국회의원의 자질을 날이 갈수록 악화시키고 있다. 누구나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고 믿기에 아무나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예외는 있겠지만 추세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 결정판이 바로 제22대 국회다. 피고인과 피의자, 전과자가 즐비한 데다가 각종 비리 혐의자나 막말꾼, 욕쟁이, 궤변가 또한 가득하다. 설령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고 해도 적잖은 동료 의원들이 이들의 동조자나 방관자로 처신한다. 양심 불량자 비율도 국민 평균을 훨씬 웃돌 것이다. 바로 이것이 목하 무소불위 입법 권력의 민낯일진대, 도대체 뭐가 잘났다고 그들은 보란 듯 금배지를 달까?

하지만 그들을 정치적 괴물로 키운 것은 궁극적으로 국민, 곧 우리 자신이다. 선거 때 그들을 심판하지 않는 것부터 문제지만, 평소 그들의 버릇을 잘못 들인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의회정치의 종주국 영국의 하원의원은 애초에 ‘무급 봉사’ 개념으로 출발했기에 유권자와의 관계가 대체로 대등하고 담백하다. 이에 반해 우리는 국회의원을 상전으로 받들어 모시는 경향이 있다. 어딜 가도 그들은 헤드테이블에 앉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나라의 주인 행세를 한다. 민의 대변자 국회의원을 민원 해결사로 인식하는 것 역시 후진적 정치 문화다. 어쩌면 우리의 민도(民度)가 ‘제왕적 금배지’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회의원의 신분과 권위를 ‘금배지’로 표시하는 관행은 이제 청산할 때가 되었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학교 배지를 열심히 달았다. 나름 특권과 선망의 상징이던 대학생 배지는 그러나 80년대 민주화운동과 더불어 일제히 사라졌다. 요새 같은 세상에 금배지를 오매불망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국회의원을 보면 학창 시절에 누군가는 수영복에도 명문대 배지를 달았더라는 소문이 생각난다. 참고로 요즘 대학생들은 배지 대신 이른바 ‘과잠’을 입는다. 정 그렇게 국회의원 티를 내고 싶으면 그들도 교섭단체별 혹은 상임위원회별로 배지 대신 점퍼를 입으면 어떨까. 누구 말마따나 ‘일하는 척’이라도 하게 말이다.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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