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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하현옥의 시선] 오늘의 부채는 내일의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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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하현옥 논설위원


‘불황형 인플레이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3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민생회복지원금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현재의 경제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전형적인 소비 감소의 불황형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황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면 해당 현상을 야기한 원인이 불황인 경우다. 경기 둔화 등으로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면서 생기는 ‘불황형 흑자’가 대표적이다. 그런 만큼 박 의원의 발언을 말 그대로 이해하자면, 불황 때문에 소비가 감소하며 물가가 오른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런데 불황으로 소비가 줄면 수요 감소로 물건값은 떨어진다. 이론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생길 수 없다. 어불성설이다.

논리의 비약은 있지만, 박 의원 발언의 전반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경기 침체 속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불황형 인플레이션’이라고 표현한 듯하다. 현재 물가 오름세는 수요가 견인하는 인플레이션이 아닌 공급자 측에서 유발한 인플레이션이라며, 부진한 소비를 진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요 감소에 방점을 찍은 건 민주당이 주장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벼랑에 놓인 민생 경제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민생회복지원금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지역화폐 형태로 국민 1인당 25만원씩,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의 경우 10만원을 더 지급하는 방식이다. ‘금(金) 사과’를 비롯해 치솟는 물가로 가계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탓에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 지원금을 통해 얇아진 지갑을 채워 소비를 자극하고 수요를 늘리면 어려움을 겪는 민생에 도움이 될 것이란 논리 구조다.



야당의 13조원 민생지원금 주장

돈 풀리며 물가에 기름 부을 수도

소비 진작 효과 미미할 가능성

문제는 예상되는 부작용이다. 민주당의 주장대로 지원금을 지급할 경우 총 소요 예산은 13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이 돈이 시장에 풀리면 들썩이는 물가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같은 날 “물가가 너무 높아서 돈(지원금)을 주자는 건데, 지원금을 주면 물가는 더 올라간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고 아무리 일회성이라고 하지만 피해가 너무 큰 경제 정책”이라고 지적한 대로다. 뛰는 물가 때문에 힘들다고 지원금을 주는데, 지원금 때문에 물가가 날아가면 소비 여력은 더 쪼그라들 수 있다. ‘물가 상승→지원금 지급→물가 상승→지원금 지급’의 무한 루프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여의치 않은 나라 곳간 사정이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1127조원으로 전년도보다 60조원가량 증가했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50.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나라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사회보장성기금수지)도 지난해 87조원 적자를 냈다. 또한 올해도 지난해(56조원)에 이어 대규모 ‘세수 펑크’가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원금 지급을 위한 13조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하려면 국채를 발행하는 수밖에 없다. 올해 국채 이자 상환액만 29조원에 달하는 데, 빚에 빚을 더하자는 이야기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1.3%를 기록하며 ‘깜짝 성장’했다. 수출(0.9%)과 민간 소비(0.8%) 회복 덕이다. 체감 경기와 온도 차가 있다지만, 굳이 지금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을 고집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지원금의 효과도 의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당시 코로나19 관련해 지급한 재난지원금의 소비 증대 효과는 0.26~0.36배 정도였다. 100만원을 받았을 때 추가 소비로 이어진 것은 26만~36만원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지원금을 받은 뒤 소비를 앞당겨 하고 이후 소비를 줄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민생회복지원금은 당장 주머니에 들어올 공돈처럼 보인다. 주면 좋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외상으로 베푼 호의는 공짜가 아니다. 빚 갚을 돈을 마련하려면 다시 빚을 내거나(국채 발행)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시간 차는 있지만 결국 세금 고지서로 돌아온다. ‘오늘의 부채는 내일의 세금’(독일 납세자협회 홈페이지 첫 화면의 표어)이란 말대로다. 국민의 돈으로 생색은 야당이 내고 뒷감당은 국민, 더 정확히 말하면 미래 세대의 몫으로 남는다. 물가 부담은 덤이다. 넉넉지 않은 나라 곳간에 빠듯한 나라 살림에도 야당이 빚잔치일 민생회복지원금을 고집한다면, 미래를 담보로 해 거야(巨野)의 축하연을 열겠다는 무책임한 의지로 비칠 뿐이다.

하현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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