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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사설]투자 유치 美 반도체기업 R&D 부지에 아파트 지으려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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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의 게리 디커슨 CEO를 접견하고 있다. 2022.10.7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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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위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스(AMAT)의 한국 연구개발(R&D)센터 건립 계획이 우리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업무 혼선 탓에 차질이 빚어졌다. 센터를 지으려던 땅을 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한 공공택지 후보지로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방미 때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고 자랑한 사업인데,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AMAT는 재작년 9월 2025년까지 한국에 R&D센터를 짓기로 하고, 투자신고서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다. 작년 8월에는 경기 오산시에 땅도 매입했다. 그런데 석 달 뒤 국토교통부가 이 땅을 공공택지 후보지로 발표하는 바람에 건물 신축 등 개발이 불가능해졌다. 뒤늦게 오산시는 시 소유 땅을 대신 제공하거나, 택지용도를 바꾸는 방안 등을 AMAT와 협의 중이라고 한다.

문제가 생긴 건 중요한 투자 사안을 놓고 정부 내에서 유기적 공조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택지 지정 전 협의 때 오산시가 AMAT의 투자계획을 알려주지 않아서라고 하지만 책임을 피하려는 변명처럼 들린다.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린 반도체 산업 관련 투자를 놓고 국토부와 산자부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심각한 문제다.

외국 기업의 투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경기 용인시에 120조 원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밝힌 후 5년 넘게 지났지만 착공조차 못 했다. 토지보상 문제, 주변 지자체와의 물 공급 갈등 등으로 지연됐다. 최근에는 공장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짓는 문제가 걸림돌이다. 나중에 급증할 전기 수요를 고려하면 발전소가 필요하지만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문제가 생길까봐 담당 부처가 주저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일본에선 대만 TSMC와 합작한 구마모토 반도체 공장이 투자 결정부터 완공까지 2년여 만에 끝나 ‘양배추밭의 기적’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와 의회, 지자체가 한 팀으로 움직여 토지 확보, 인허가 등 모든 절차를 초고속으로 진행해 가능한 일이었다.

AMAT, ASML 등 세계 굴지의 반도체 장비 기업이 한국 투자를 검토하는 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지자체는 주요 고객을 찾아온 외국인 투자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든 나라들 가운데 기업 투자를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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