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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미국·유럽은 왜 ‘중국 과잉생산’ 때리나…미래산업 주도권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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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5일 중국 장쑤성 롄윈강 항구에서 브라질로 수출되는 중국산 비야디(BYD) 전기차가 화물선에 실리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롄윈강/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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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 녹색산업의 급성장을 놓고, 미국과 유럽이 과잉생산 비판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에 대한 제재, 이른바 디리스킹(위험 회피) 정책에 이어, 미·유럽 대 중국 간 대결이 미래 핵심 산업인 녹색산업을 둘러싼 경쟁으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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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태양광 패널 등 과잉생산 논란 치열





중국 녹색산업에 대한 제재는 지난해 하반기 유럽연합(EU)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10월 “중국 전기차가 불법 보조금 혜택을 받는지, 이 보조금이 유럽 전기차 생산자에게 경제적 피해를 유발하는지를 판단할 것”이라며 중국산 수입 전기차에 대한 불법 보조금 조사를 시작했다. 유럽산보다 20% 이상 저렴한 중국산 전기차의 유럽 진출이 본격화하자, 이에 대한 규제에 나선 것이다.



미국이 올해 들어 유럽연합 주장에 동조했고, 동시에 범위를 넓혔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달 초 중국 방문에 앞서 “우리는 태양전지, 전기차 배터리,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려고 노력하는데 중국의 대규모 투자가 이 분야에서 과잉생산을 유발하고 있다”며 3대 녹색산업을 콕 집어 중국 과잉생산에 대한 대응에 나설 뜻을 밝혔다.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국산 철강과 해운, 물류, 조선 등 전통 산업에 대해서도 불공정 행위가 의심된다며 본격 대응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중국의 반론과 반격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해당 산업에 대한 자국의 비교우위는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장관)은 이달 초 프랑스를 방문해 “중국 전기차 회사는 지속적인 기술 혁신과 생산 및 공급망 개선, 시장 경쟁에 의해 발전해왔다”며 “과잉생산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비난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또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은 아직 과잉생산 단계가 아니며, 장기적으로 더 많은 생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 유럽 등 서구 선진국들이 자국 반도체 및 녹색산업 진흥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으면서 적반하장식으로 중국을 비난한다는 주장도 편다.



중국은 또 지난 26일 보복 관세를 명시한 새 관세법을 사상 처음 통과시켰다. 이 법안 제17조는 중국과 특혜무역협정(PTA)을 체결한 시장이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상대 국가 상품에 동등한 관세를 부과하도록 했다.



중국의 녹색산업은 미국과 유럽이 위협을 느낄 만큼 초고속 성장했다. 중국은 10여년 전부터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산업을 집중 육성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세계 전기차 판매량(1380만대)의 58.7%인 810만대가 중국 시장에서 팔렸고, 중국이 세계 시장에 수출한 전기차는 120만3천대(8.7%)에 이른다. 전기차 판매에 힘입어 중국은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이 됐다. 태양광 패널의 중국 점유율은 더 높아서, 세계 태양광 패널의 70~80%가 중국에서 생산됐고, 세계 전기차 배터리 생산의 약 60%도 중국 몫이다. 중국이 세가지 녹색산업의 주도권을 이미 상당 부분 쥐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올해 ‘헌것을 새것으로 바꾼다’는 이른바 ‘이구환신’ 정책을 진행하면서, 녹색산업의 비교우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구환신 정책은 기존 산업과 주민들의 소비 생활에까지 적용되는데, 중국의 부동산 및 내수 침체와 맞물려 중국 시장이 소화하지 못한 철강, 화학, 경공업 분야의 다양한 제품들이 글로벌 시장에 싼값으로 흘러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칠레, 브라질, 인도,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 자국 산업 육성에 나선 나라들의 불안감과 불만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미래 산업 규제가 본질





중국 녹색산업에 대한 미국의 문제 제기를 놓고, 올해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 바이든 행정부가 선거를 의식하고 내놓은 공세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중국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이 발맞춰 대응하는 모양새 등을 볼 때, 이번 문제 제기가 단순히 선거를 위한 대응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은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요소이자, 미래의 핵심 산업”이라며 “중국 녹색산업 과잉생산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문제 제기는 반도체·인공지능 등 첨단산업에 대한 규제(디리스킹)와 더불어 미래 산업을 놓고 양쪽이 사활을 걸고 벌이는 싸움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제조업 회생을 추진 중인 미국과 제조업 비중이 작지 않은 유럽연합이 미래 제조업의 핵심 영역인 녹색산업에서 주도권을 잡아가는 ‘중국 끌어내리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유럽연합이 15%, 미국이 11%(2021년)였다. 같은 기간 한국은 26%, 중국은 28%다.



중국 과잉생산에 대한 문제 제기는 2013년에도 이뤄진 바 있다. 중국의 철강, 시멘트, 유리, 알루미늄 산업 등에 대해 과잉생산 논란이 제기됐고, 중국은 이런 비판과 우려를 받아들여 일부 제품의 생산을 조정했다. 당시 중국 경제가 연평균 10% 이상 성장하고 있어 속도 조절이 필요했고, 과잉생산에 따른 자국 피해도 작지 않은 상황이었다. 미국과의 전략 경쟁을 시작하기 전이어서, 세계 시장의 눈치를 봐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지금은 당시와 상황이 매우 다르다. 미국과의 전략 경쟁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첨단기술·녹색산업 등 미래 핵심 산업 분야가 미-중 갈등이 폭발하는 지점이 되고 있다. 단순한 무역 갈등이 아닌 국가의 미래를 놓고 벌이는 경제·안보 전쟁이 펼쳐지는 것이다. 중국 경제가 2020년대 들어 연간 5% 성장을 장담하기 힘들어졌고, 청년실업률도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등 경제 전반이 침체된 상황이어서, 타국의 우려를 고려할 형편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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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시성의 태양광 패널.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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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만만찮고 세계 각국 스펙트럼 넓어





미국·유럽연합이 강력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있지만, 중국 녹색산업에 대한 규제는 디리스킹 정책보다 실현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인공지능 등 첨단기술 제재가 중국이 아직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유럽 등 선진국이 주도권을 갖고 진행하는 싸움이라면, 녹색산업의 경우 중국이 이미 상당한 비교우위를 확보한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이 뒤늦게 규제에 나섰기 때문이다.



녹색산업 제재에 대한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단기술 제재에 대한 이해관계보다 스펙트럼이 넓기도 하다. 첨단기술 제재의 경우 미국, 한국, 유럽, 일본 등 반도체·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한 일부 국가에 국한된 것이라면, 녹색산업에 대한 규제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이 필요한 개발도상국 등 상당수 나라가 각각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중국의 과잉생산에 대한 우려를 밝히긴 했지만, 미국·유럽연합보다 훨씬 톤이 낮았다. 오히려 숄츠 총리는 방중 과정에서 자국 기업인을 대거 대동했고, 중국에 도착해서는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강조했다. 장비 산업이 매우 발달한 독일 입장에서 중국 녹색산업의 급성장이 위협이 아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사우디아람코의 아민 나시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말 세계 에너지총회 연설에서 “태양광 발전 비용 감소와 관련해 중국의 역할이 컸다. 전기차와 관련해서도 동일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며 “우리가 2050년까지 에너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세계화와 협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이 필요한 나라들이 미국·유럽의 대중국 견제를 반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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