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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과학기술이 미래다] 〈122〉'올림픽 통신·전산화' 체신부가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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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전두환 대통령이 1986년 9월 20일 열린 제10회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사마란치 IOC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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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5월 체신부, 체육부, 과학기술처 등 3개 부처는 올림픽 통신·전산 운영을 체신부가 주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체신부는 통신과 전산 운영 기본계획 수립과 조정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조직위 관계자의 설명. “당시 소프트웨어(SW)는 과학기술처 소관이었지만 국내 통신을 총괄하는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가 체신부 산하여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컴퓨터올림픽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체신부의 역할이 절대 필요했습니다. 수준 높은 통신서비스는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의 최대 과제이자 성공 조건이었습니다.”

체신부는 이에 앞서 1982년 1월 13일 기획관리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통신실무분과위원회를 구성, 운영했다. 그해 5월 24일에는 올림픽통신실무반을 설치, 운영했다.

이어 1986년 2월 4일에는 기획관리실장 산하에 86아시안게임·88올림픽 통신지원상황실을 설치했다. 7월에는 기획관리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과학기술처, 동력자원부, 한국과학기술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등 관련 기관의 과장급 등을 위원으로 하는 통신·전산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86아시안게임 전까지 모두 10차례 회의를 열고 전산시스템 운영과 통신 회선 점검, 임시 우체국 설치 등 주요 현안을 처리했다.

1985년 9월 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는 제10회 아시안게임 전산화 사업 개요를 확정했다.

조직위는 전산화 목표를 △최신기술 활용으로 과학대회를 운영하고 △국내 기술 능력을 해외에 널리 알리며 △국내 정보통신산업 발전을 도모하고 △스포츠 과학화 전기 마련 등에 두기로 했다.

조직위는 전산시스템을 경기운영시스템(GIONS), 종합정보망시스템(WINS), 대회관리시스템(SOMS), 대회지원시스템(SOSS) 등 4개로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 시스템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시스템공학연구소(SERI)와 한국데이터통신(현 LG유플러스), 쌍용컴퓨터(현 쌍용정보통신), 한국전산(현 교보DTS) 등이 개발키로 했다.

10월 SERI는 '올림픽 전산화기술개발에 관한 연구' 최종 보고서를 과학기술처에 제출했다. 연구책임자는 허채만 개발실장이었다. 연구보고서는 경기운영·데이터베이스(DB)·컴퓨터네트워크·ID카드 등 4개 분야로 작성되었으며, 권영범 선임연구원(현 열림원소프트렙 대표) 등 모두 13명의 연구원이 참여했다.

허채만 당시 SERI 개발실장의 말.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특히 올림픽은 국력 과시장이었다. 우리는 올림픽을 통해 선진과학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과시하는 한편 국내 정보통신산업 발전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보고서는 23개 올림픽 경기 종목별 특성을 감안해 경기 전 준비 사항과 경기 운영 및 경기 결과 처리 등에 대한 입출력 분석, 시스템 설계, DB 구축과 검색 방안 등 올림픽 운영 전반을 다루었다.

올림픽 전산화 기술 주관 기관인 SERI의 임무는 막중했다.

주관 기관의 임무는 △올림픽 시스템에 대한 기술 총괄 책임 △종합적인 연구개발(R&D) 계획서 수립 △전산 개발 기관 간 협조를 통한 국내 전산기술 수준 향상 △개발한 시스템의 종합적인 운영과 통제 등이었다.

주관 기관 선정 배경에는 국내 과학자들에 대한 노태우 위원장의 신뢰가 크게 작용했다. 노 위원장은 전국체전 전산시스템 개발 이후 “과학자들이 애국자”라며 과학자들에 무한신뢰를 보냈다.

SERI 당시 한 관계자의 말. “외국에서 올림픽 전산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막대한 외화를 지불해야 하는데 황무지나 다름없던 국내 전산 환경에서 SERI가 국내 최초로 인천체전 시스템을 개발한 것을 보고 노 위원장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노 위원장은 주위 인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내 과학자들의 열정과 애국심에 감탄했다. 그들이 존경스럽다.”

이런 가운데 올림픽 전산화 개발 업체들은 각자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 과정에 개발 업체는 조직위의 요청에 따라 시스템 보완이나 수정 작업을 했다.

SERI가 개발키로 한 GIONS는 참가 선수와 임원 등록관리, 경기 운영과 처리, 경기정보관리 등 3대 주요 업무를 중심으로 원활한 대회 운영과 각종 정보를 신속·정확하게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SERI는 1981년부터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GIONS의 가장 큰 특징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분산 처리 방식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모든 비상사태에 대비해 완벽한 백업시스템을 갖추었다. 또 등록관리와 기록관리, 경기장 운영관리, 경기정보종합관리 등으로 시스템을 구성했다. 따라서 경기종목별 경기 결과 제공과 경기 일정, 선수 신상 명세 등 각종 정보를 단말기를 통해 제공했다.

WINS는 한국데이타통신이 1984년 말부터 개발을 담담했다. 전자우편과 경기정보서비스, 일반정보서비스, 외부시스템 접속 등으로 구성해 세계 각국 가입자가 실시간으로 경기 결과를 검색할 수 있게 했다. 이 시스템은 1985년 4월 '에밀레'라는 이름으로 개발돼 몇 차례 시험을 거쳐 'INS'라는 명칭으로 86아시안게임에서 운영했고, 이후 WINS로 변경했다.

이 시스템은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서 이기종 컴퓨터 간 접속을 실현, 한국 기술력을 세계에 자랑했다.

이 일에는 체신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GIONS와 WINS는 사용 컴퓨터가 달라 접속이 불가능했다. 체신부가 수차 기능 개선을 요구했지만 개발 기관은 자신들 방식만 고집했다.

이를 본 윤동윤 당시 체신부 통신정책국장이 나섰다.

1986년 9월 초 어느 날 GIONS와 WINS 등 2개 기관의 개발 실무 책임자와 기술진을 서울 시내 한 호텔로 불러 점심을 함께하면서 윤동윤 국장이 “기종 간 접속토록 하라”고 말했다. 이에 실무책임자들은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이를 그냥 넘길 윤 국장이 아니었다.

윤동윤 전 체신부 장관(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의 회고. “이 말을 듣고 '앞으로 실무 책임자들은 이 일에서 손을 떼라. 그 대신 실무진이 협의해서 이기종 간 접속을 반드시 해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아시안게임 개막을 며칠 앞두고 이기종 간 접속을 해결했습니다.”

SOMS는 쌍용컴퓨터가 1984년 7월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이 시스템은 인력 관리, 선수촌 관리, 입장권 관리, 등록 관리, 의전 관리 등으로 구성했다.

SOSS은 한국전산이 1984년 7월부터 개발에 착수했다. 이 시스템은 숙박 관리, 물자 관리, 수송 관리, 연습장 관리 등 4개로 구성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1986년 5월 7일 오전 올림픽회관에서 위원총회를 열고 박세직 체육부 장관을 3대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박 위원장은 육군사관학교 12기로, 수도경비사령관을 지낸 육군 소장 출신이다. 예편 후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과 총무처 장관 및 체육부 장관을 거쳐 올림픽대회 후 국가안전기획부장, 서울시장, 국회의원,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장, 재향군인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해 9월 20일 오후 3시.

“제10회 아시아 경기대회 서울 개최를 선언합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개회 선언에 이어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30억 아시안의 '영원한 우정과 전진'을 다짐하는 제10회 아시안게임 개막식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27개국 4800여명의 선수가 참석한 개막식에는 전두환 대통령을 비롯해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일본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등 각국 지도자 및 7만5000여 관중이 참석한 가운데 식전 행사, 공식 행사, 식후 공연 등 3부로 나눠 2시간여 동안 웅장하게 진행했다.

아시안게임은 10월 5일까지 16일 동안 27개 종목을 놓고 각국 선수들이 힘과 기를 겨루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종합 2위를 차지했다.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주목받은 건 단연 GIONS 등 전산시스템이었다. 경기 관련 모든 자료를 보도진에 배포하는 데 5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내외 언론들은 하나같이 GIONS를 역대 대회에서 가장 우수한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IBM조차 '완벽한 시스템'이라고 극찬했다.

정부는 86아시안게임이 끝나자 무오류 88서울올림픽을 위해 허리띠를 다시 졸라맸다. 88서울올림픽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 세계에 우뚝 설 절호의 기회였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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