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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사설]“사무총장 아들은 세자”… 선관위 자녀 특혜 오죽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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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 고위직과 중간관리자 27명이 특혜 채용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어제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시행된 291차례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법·규정 위반 건수가 12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선관위 간부가 인사 담당자들에게 자녀 채용을 청탁하면 이들이 면접위원을 바꾸거나 합격 순위를 조작하는 등 조직적인 불법 행위가 벌어졌다. 사무처 1인자인 사무총장의 아들이 채용과 전보 등에서 잇달아 특혜를 받자 선관위 직원들이 내부 메신저에서 그를 ‘세자’로 지칭할 정도였다고 한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김세환 전 사무총장이 사무차장 재직 당시인 2020년 아들이 지역 선관위에 지원하자 별다른 사유 없이 선발 인원이 예정보다 늘었고, 인사 담당자들은 그의 아들에게 유리하도록 채용 조건을 ‘8급, 35세 이하, 인천 출퇴근 가능자’로 제한했다. 면접위원도 김 전 사무총장과 가까운 인사들로 구성돼 그의 아들은 거의 만점을 받았다. 박찬진 전 전남선관위 사무총장 딸의 경우도 면접관들이 사전에 조율한 대로 점수 칸을 비워 둔 채 제출했고, 인사 담당자가 높은 점수를 써넣어 합격시켰다. 한마디로 ‘아빠 찬스’를 실현시키기 위한 맞춤형 채용이었다.

상임위원의 아들이 채용될 수 있도록 인사 담당자가 면접관들에게 평정표를 연필로 작성하도록 한 뒤 지우개로 지워 순위를 뒤바꾼 경우도 있었다. 직원 자녀가 소속 기관인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전출 동의서를 받지 못하자 과장급 간부가 지도·감독 대상인 선출직 지자체장을 압박해 동의를 받아오기까지 했다. 이런 식으로 선관위 간부 자녀들이 채용되면서 합격권에 들었던 지원자가 탈락한 사례도 확인됐다.

선관위는 지난해 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졌을 때 독립적인 헌법기관임을 내세워 자체 감사를 고집했다. 하지만 이번 감사로 직원 자녀들에게 국가공무원이 될 수 있는 ‘프리패스’를 남발해 온 실상이 밝혀졌다. 선거가 공정하도록 관리해야 할 기관이 ‘불공정의 끝판왕’을 보여줬다는 비판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앞으로 이어질 검찰 수사는 선관위 채용 비리의 깊은 뿌리를 더욱 선명히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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