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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극중 시대로 들어간 듯 뒷골목 향기가 ‘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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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어울리는 향기로 몰입도 높여

‘경험’ 중시하는 젊은 관객층에 인기

동아일보

뮤지컬 ‘헤드윅’(위쪽 사진)이 공연되고 있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는 작품 배경인 ‘뒷골목 펍’을 연상케 하는 달콤한 향기를 극장 로비에 분사해 공감각을 자극한다. 연극 ‘욘’을 공연한 서울시극단은 눈보라 치는 북유럽 숲속과 어울리는 향기를 제작해 공연장 로비에 퍼지도록 했다. 쇼노트·세종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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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극 ‘욘’이 열리는 극장에 들어서자 차가운 숲 내음이 코끝에 닿았다. 작품의 주인공 욘이 살고 있는 노르웨이의 숲을 표현한 향기, 바질과 측백나무 향내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이는 관객 밀집도, 출입문 열림 횟수 등 변수에 맞춰 로비 내 발향 기기 2대로 조절한 농도였다. 관객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시향지에는 온라인 프로그램북으로 연결되는 QR코드가 찍혀 있어 공연이 끝나고도 작품 감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최근 공연계가 작품, 극장에 어울리는 향기로 시청각을 넘어 관객 후각까지 자극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무대 위 화원의 문이 열릴 때마다 은은한 꽃 향과 흙 내음이 객석 전체에 퍼지게끔 했다. 조향 업체와 약 2개월간 논의 끝에 ‘누구나 아름답게 기억할’ 향을 개발한 것. 뒷좌석 관객들도 같은 농도의 향을 맡을 수 있도록 중형 서큘레이터 한 대로 극장 내 공기 순환을 조절했다.

제작사뿐 아닌 극장들도 향기 마케팅에 나섰다. 현재 뮤지컬 ‘헤드윅’이 공연되고 있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 들어서면 ‘뒷골목 오래된 펍’이 연상되는 달콤하면서도 뇌쇄적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조향 업체와 협업해 주인공 헤드윅이 공연했을 듯한 공간의 향을 제작한 것. 라벤더와 머스크, 바닐라의 달콤함이 어우러진 향은 로비에 설치된 발향 기기 2대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2분 30초마다 분사된다.

극장 자체를 대표하는 향기를 만들기도 한다. LG아트센터 서울은 2022년 서울 강서구로 이전 개관하면서 알싸한 나무 느낌의 시그니처 향 ‘136’을 제작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공연장 내 타원형 통로인 ‘튜브’에서 영감을 받은 향이다. 객석과 사무공간을 제외하고 튜브를 중심으로 매일 오전 11시부터 12시간가량 건물 내부 공조 시스템을 통해 분사된다. 캔들, 방향제 등 상품으로도 제작해 극장에서 판매 중이다.

이는 향기를 통해 관객의 공연 몰입도를 높이고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하게끔 하기 위함이다. ‘비밀의 화원’을 연출한 이기쁨 연출가는 “4DX 영화처럼 또 하나의 감각을 사용했을 때 작품이 훨씬 생생하게 와닿는다”며 “통상 공연이 시각과 청각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후각을 통해 환상적인 몰입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샤롯데씨어터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의 윤세인 공연사업팀장은 “마니아층이 아닌 관객도 공연을 즐기고 기억할 방법의 일환”이라며 “향을 통해 극장이 단지 공연만 보고 마는 공간이 아니라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공연계 향기 마케팅은 이색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관객 발길을 모으려면 ‘경험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작용됐다. 연극 ‘욘’을 제작한 서울시극단의 박지환 PD는 “오늘날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작품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봤다”며 “연극 ‘욘’을 시작으로 올해 남은 작품 3편 모두 맞춤형 향기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지인 LG아트센터 홍보마케팅팀장은 “공연장에 오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현장성’이라는 장르 특성을 살려 공감각적 요소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MZ세대 젊은 관객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머시브 공연 등 관객과 공연을 적극적으로 연동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향기 마케팅 역시 그 사례다. 공연장의 형태, 활용 방식 등 변화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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