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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7년 직장 나와 전업 작가로… 묻어둔 글로 대박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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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서점대상 받은 황보름 작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클레이하우스)는 요즘 서점가에서 가장 잘 팔리는 소설. 2022년 1월 출간 이후 누적 30만부 넘게 팔렸다. 해외에서도 잘나간다. 지난해 9월 일본 대형 출판사 슈에이샤에서 번역·출간돼 올해 일본서점대상 번역 소설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영문판은 ‘해리포터’ 출판사인 영국 블룸스버리가 내는 등 전 세계 25국과 판권 수출 계약을 맺었다. 번아웃이 온 직장인 ‘영주’가 서점을 차리고, 취업 준비를 포기한 바리스타 ‘민준’이 서점에서 커피를 내린다. 두 인물을 중심으로 서점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았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조선일보

황보름 작가가 본지 인터뷰에서 세계 각국에서 출간된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소개했다. 왼쪽부터 한국어·브라질어·일어·영문판 순.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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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보름(44)은 대기업을 관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맨땅에 헤딩’해 십여 년 만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기까지 “운과 우연이 작용했다”고 한다. ‘취업이 잘된다’는 말에 큰 고민 없이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LG전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7년간 일했다. 하지만 입사 2개월 차부터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힘들게 하며 버티는 삶이었어요.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아무 계획 없이 일을 그만뒀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독자’는 서른이 돼서야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출판계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한 권 다 쓰고 투고하면 되는 건 줄 알았다”며 웃었다. 그렇게 쓴 책 ‘서른 이후 일곱가지 생각’(가제)은 출판사 20여 곳에 투고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일은 무엇인가…. 이런 내용이었는데 친한 동생이 말하더군요. ‘누나, 이거 무슨 스님이 쓴 글 같아….’”

2017년 독서 에세이 ‘매일 읽겠습니다’(어떤책)를 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래서 ‘소설이나 써보자’ 하고 3개월 만에 쓴 것이 ‘휴남동’이다. “등단 작가도 아니어서 소설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고이 하드 드라이브에 묻어뒀지요.” 대신 2019년부터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휴남동’을 나눠 올렸다. 2020년 브런치와 밀리의서재가 공동으로 전자책 프로젝트 공모전을 열었다. 브런치에 올려둔 ‘휴남동’을 클릭 한 번으로 출품했다. 그리고 이른바 ‘대박’이 터졌다. “출간 초반에는 쇄를 찍는 속도가 책이 팔리는 속도를 못 따라갈 정도였어요.”

저자가 생각하는 흥행 비결은 뭘까. 황보름은 “책 속의 등장인물을 응원하다 보면 어느새 나를 응원하게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흔한 등장인물, 흔한 고민, 흔한 생각이 오히려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매 장 교훈을 주는 느낌이 코리안 탈무드 같다’는 기자의 평에는 “글이나 문장을 읽고 깨달음이나 통찰을 얻는 걸 좋아한다. 책을 읽으면 뭐라도 하나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 소설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고 했다.

‘힐링 소설’이라는 분류에 대해서는 “복잡한 마음”이라고 했다. “쉬운 위로의 말만 가득한 소설이라는 선입관을 가질까봐… 그런데 외국에서는 이런 소설을 ‘필 굿(Feel good) 소설’이라고 부른대요. 다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소설이라고요. 독자들이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뭐라 부르든 상관 없어요.” 해외 팬들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감을 전해온다. Cozy(아늑한), Heartwarming(마음이 따듯해지는) 등. 어쩌면 황보름표 ‘K힐링 소설’의 저력은 마치 내 이야기 같은, 지독한 익숙함에서 비롯한 편안함이 아닐까.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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