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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주노동자 친구들 구하려다 징역형···노동절에도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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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달라” 절규에 단속차량 추돌···1심 실형

노동절에 열린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 선고

안타까워한 시민사회···“누굴 위한 실형인가”

경향신문

지난 3월7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 산업단지의 한 도로 인도에 타이어가 놓여 있다. 지난해 8월25일 법무부의 기습 단속에 마주친 김모씨(42)는 ‘살려달라’는 이주노동자들의 비명에 버스로 단속차량을 들이받고 도주를 시도하다가 이 도로에서 체포됐다.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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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체류자 기습 단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도망치게 하려다가 단속차량을 들이받아 징역형을 받은 제조업체 직원이 노동절인 1일 열린 항소심에서도 석방되지 못했다.

대구고법 형사2부(재판장 정승규)는 이날 오전 특수공무집해방해치상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씨(42)의 항소심 선고에서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양형기준이 권고하는 최저형에서 1년을 감형했지만 집행유예를 선고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김씨는 불법체류 단속 공무원들의 검문 요구에 불응하고 차량을 진행해 공무차량을 손괴하고 공무원들을 다치게 했다”면서도 “피고인은 버스에 탄 외국인 노동자들의 ‘도와달라’는 요청에 다소 충동적으로 범행에 이르렀고, 다친 공무원들의 상해 정도도 대체로 아주 무거워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어 “김씨가 다친 공무원들을 위해 1인당 100만~150만원씩을 공탁하는 등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고, 피해 공무원들이 선처 의사를 표시했다”며 “이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원심의 선고는 무겁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해 8월25일 미등록 이주노동자 36명을 태운 통근버스를 몰고 대구 달성군의 한 공장으로 출근하던 중 법무부 출입국사무소의 단속에 맞닥뜨렸다.

단속차량 3대가 버스를 포위하고 단속을 시작하자 버스에 타고 있던 이주노동자들은 김씨에게 “살려주세요” “도망가주세요”라고 애원했다. 김씨는 “애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액셀을 밟았다. 그는 단속차량을 파손하고 공무원들에게 타박상·염좌 등 전치 2~3주의 부상을 입힌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14일 김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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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6일 오후 대구 달성군 한 공장 사무실에 위치한 김모씨(42)의 자리가 비어 있다.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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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이주노동자들···나와 뭐가 다른가요”

김씨는 평소 친구처럼 지내 온 이주노동자들의 애원을 외면하지 못해 버스를 몰았다. 그는 18살 때부터 타지의 공장에서 일을 해 오며 같은 처지인 이주노동자들에게서 동질감을 느껴 왔다.

김씨는 지난 3월 경향신문과 서면 인터뷰에서 “가족과 헤어져 타국에서 한달 일해 월급날이면 퇴근 후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모습이 늘 나와 같았다”며 “아는 사람 하나 없이 가족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단에서 홀로 버틴 저와 이주노동자들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재판부에는 8333명의 탄원서가 제출되기도 했다.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연대회의(대경이주연대회의)’는 이날 선고 후 기자회견을 열어 “사회적 약자를 도우려 한 이에 대해 법조문에 얽매여 또다시 실형을 내린 재판부에 실망감을 넘어 깊은 분노를 느낀다”며 “재판부는 김씨를 가뒀지만, 그의 정의로운 행위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고 했다.

김씨의 항소심 법률대리인인 손나희 변호사는 “재판부는 범행 동기나 경중, 개전의 정을 참작하고도 실형을 내렸다”며 “피해 공무원들이 선처를 탄원했는데 누구를 위한 실형인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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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대구 수성구 대구고법 앞에서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연대회의’ 관계자들이 ‘사회적 약자를 도운 이를 석방하라! 김모씨에게 중형을 선고한 재판부를 규탄한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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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적인 단속 행정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법무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강화하면서 출근길은 물론 예배당·식당 등 일상 공간에서까지 강제단속이 이뤄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신고하겠다며 협박해 돈을 뜯거나 사적으로 체포 활동을 벌이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대규모 강제단속으로 주요 노동자와 소비자를 잃게 된 지역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불만도 쌓이고 있다.

대경이주연대회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단지 법적 체류자격을 갖추지 못했을 뿐 범죄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마치 중대한 범죄를 범하고 도주 중인 사람을 긴급체포하듯 단속하는 방식은 결코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 더 알아보려면

이주노동자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정부도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에 대한 대책으로 이주노동자 도입을 계속 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을 노동력으로만 생각할 뿐, 이들의 인권에 대한 관심은 적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 폭행·폭언·성범죄, 열악한 숙소 등 심각한 노동권 침해를 당한 끝에 미등록 체류자가 되곤 합니다.

‘공존’에 대한 고민이 더없이 절실해진 지금, 김씨의 사건은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안겨줍니다. 경향신문은 지난 3월 김씨의 이야기를 자세히 취재했습니다.


☞ 단속차량을 들이받고 그는 달렸다, 친구들이 울부짖어서[사람 구함 : 어느 피고인의 변론]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150600001



☞ “잘못된 제도가 미등록 체류로 내몰아···강제단속은 해법 아니다”[사람 구함 : 어느 피고인의 변론]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150600011



☞ “아이 사진 보여주던 이주노동자들···살려달라는 절규 외면 못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4031743001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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