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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1인가구는 35㎡ 이하만? '눈가리고 아웅'에 분노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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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이 더불어삶 대표(livewithall@naver.com)]
정부가 지난 3월 25일 공포한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에는 가구원 수에 따라 공공임대주택의 면적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저출산 고령사회 정책과제 및 추진 방향에 따라 "공공임대주택 세대원 수별 적정면적 기준"을 마련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간단히 말하면 자녀가 있는 가구에게 더 넓은 면적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정부 개정안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하는 1인가구는 전용면적 35㎡ 이하, 2인가구는 전용면적 25 초과 44㎡ 이하, 3인가구는 35초과 50㎡ 이하, 4인가구는 전용면적 44㎡ 초과 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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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지난 3월 25일 국토부가 공포한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의 일부. ⓒ대한민국 전자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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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공공임대주택 관련 제도를 어떻게 바꿔도 세상은 잠잠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1인가구 공공임대주택 수요자들은 이번 조치에 화가 났다. 국회 홈페이지에는 '임대주택 면적 제한 폐지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국민동의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입소문을 타고 퍼져서, 4월 29일 현재 3만50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이런 반응을 보고 국토부도 한 발 물러났다. 이번 조치를 "전면 재검토"하고 상반기 중 대안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청원자는 "(시행규칙 개정안에서) 세대원수별 규정된 면적이 너무 좁게 산정되어 있다"면서, "면적 제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면적이 너무 작은 것이 큰 문제"라고 밝혔다. 그리고 "세대원 수에 따른 임대주택 면적 제한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될 수 없"다면서, "복지가 점점 후퇴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고 주장했다. 정곡을 찔렀다. 이 청원자는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해 봤거나 최소한 입주자 모집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직접 발언하고, 항의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공공임대주택 거주자와 수요자들은 그동안 너무 많이 참았다.

청원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자. 청원자는 정부의 이번 조치가 기존에 건설된 공공임대주택의 유형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1인 가구는 기존에 거실과 방이 분리된 36㎡ 유형에 지원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정부가 "35㎡ 이하"라는 기준을 신설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불과 1㎡ 차이 같지만 그게 아니다. 행복주택의 경우 35㎡와 33㎡ 유형이 있긴 하지만 드물고 대부분은 26㎡ 아니면 36㎡로 공급된다. 그래서 1인가구들은 이번 조치를 '26㎡ 원룸형에 들어가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2인가구도 마찬가지다. 국민임대주택이나 행복주택은 44㎡가 일부 있긴 하지만 대개 46㎡이나 49㎡ 유형이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했던 기준은 "44㎡ 이하"이므로 기존에 46㎡ 유형을 신청할 수 있었던 2인가구는 36㎡ 주택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다. 3인가구의 경우 51㎡과 55㎡ 유형이 존재하는데 개정 규칙은 "50㎡ 이하"로 발표되었으므로 앞으로는 44㎡나 46㎡를 신청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숫자로 실상을 감춘 것이고, 결과적으로 공공임대주택 수요자를 약 올린 것이나 다름없다. 청원자의 글은 바로 이 지점을 짚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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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 지난 4일 국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임대주택 면적 제한 폐지에 관한 청원' ⓒ국회 국민동의청원 페이지(https://petitions.assembl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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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공공임대주택 청약을 받는 LH청약 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4월 22일에 입주자모집 공고가 나온 '인천영종 A2 행복주택'의 경우 대학생과 청년에게 공급되는 임대주택은 16A, 22A, 26A 이렇게 3가지가 있다. 35㎡ 임대주택은? 당연히 없다. 35와 비슷한 숫자도 안 보인다. 즉 1인가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넓은 면적은 26㎡가 된다. 26㎡는 약 7.8평. 화장실을 제외한 생활공간에 침대 하나 놓으면 남는 공간이 별로 없다. 그럼 2인가구는? 신혼부부 대상 공급 주택으로 36A가 있다. 정부가 발표한 기준은 "44㎡ 이하"지만 이 단지에서는 36㎡ 주택을 신청해야만 한다. 1인가구와 2인가구 모두 한 단계씩 하향 신청을 요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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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 지난 22일 공고된 '인천중부권 행복주택 예비입주자 모집' 공고문의 일부. ⓒLH청약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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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임대주택의 가구원 수에 따른 면적 기준이 이번에 최초로 도입된 것은 아니다. 2022년부터 국민임대, 영구임대, 행복주택을 합쳐서 통합공공임대로 개편하면서 가구원 수에 따른 면적 기준을 적용했던 것을 이번에 공공임대주택 전체로 넓히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국토부가 발표했다가 철회한 면적 기준은 기존 통합공공임대에 적용되던 기준보다도 작다.

예를 들어 보자. 정부가 시행규칙 개정령을 발표하기 전인 3월 14일에 공고된 남양주별내 A1-1BL 통합공공임대주택(별내 별헤임)의 경우 18A, 46A, 56A의 3가지 유형에 대해 예비입주자를 모집했다. 여기서 1인가구는 18㎡ 주택밖에 선택지가 없다. 2인가구는 46㎡를, 3인가구는 46과 56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 개정령에 따르면 2인가구는 "44㎡ 이하"여야 하고 3인가구는 "50㎡ 이하"여야 한다. 1인가구, 2인가구, 3인가구 모두 기존에 선택 가능했던 평형을 선택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저출산 대책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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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4] 지난달 14일 공고된 '남양주별내 A1-1BL 통합공공임대주택 예비입주자 모집' 공고문의 일부. ⓒLH청약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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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맞는 행정을 하려면 기존의 공공임대주택도 더 넓혔어야 했다. 박근혜 정부가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다면서 기획한 행복주택만 해도 좁기로 유명하다. 몇 년 전, 집값 폭등으로 지탄을 받던 시기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문했던 곳이 바로 동탄의 행복주택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41제곱미터 복층형 주택을 둘러본 후 신혼부부+아이 1명을 대상으로 지어진 44㎡ 주택에서 변창흠 당시 LH사장과 대화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아기자기한 공간이 많다"고 말했다. 아기자기하다? 좁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 집에는 2층 침대가 놓여 있었고, 변창흠 사장은 "방이 좁기는 합니다만 아이가 둘 있으면 위에 1명, 밑에 1명"에게 공간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날 방문을 마무리하면서 문 대통령은 "이런 기본적인 주택에서 조금 더 안락하고 살기 좋은 그런 중형 아파트로 옮겨갈 수 있는" 주거 사다리를 잘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김현미 당시 국토부장관도 공공임대주택 평수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현장을 찾았던 세 사람 모두 더 넓은 주택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그 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문 대통령의 공공임대주택 방문은 집값 폭등으로 민심이 폭발 직전이었던 시점에 국면 전환을 위한 정치적 의도로 이뤄졌기 때문에 냉소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다음 대통령인 윤석열 대통령은 공공임대주택을 방문하기는커녕 관심을 보인 적도 없다.

공공임대주택은 시혜가 아니다. 국민의 기본권인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마땅히 제공해야 하는 주택이고, 질과 양 모두가 중요하다. 그러나 역대 정부는 대부분 공공임대주택을 특정 계층에게 제공하는 시혜처럼 취급했다. 공공주택(공공임대주택+공공분양주택)이 어떤 유형으로, 어떤 면적과 품질로, 누구에게 제공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없었다. 그런 무관심이 조장되는 가운데 공공주택 정책도 큰 발전 없이 현상 유지만 해왔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번 일을 계기로 일부 언론에서 공공임대주택의 면적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 임대주택 실상은 5평..."최저 면적기준 높여야"(24.04.25 연합뉴스TV)
○ "1인 가구는 원룸만 된다?"...논란에 면적제한 재검토(24.04.25 SBS 모닝와이드)
○ [창] 1인 가구의 집(24.04.20 국민일보)

언론은 우리가 평소에 잊고 살던 '최저주거기준'이라는 개념을 상기시켰다. 한국의 최저주거기준 면적은 1인가구 14㎡(약 4.2평), 2인 가구 26㎡(약 7.8평), 3인 가구 36㎡(약 10.9평), 4인 가구 43㎡(약 13.03평)이다. 1인가구 14㎡라는 최저주거기준은 2011년 이후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그리고 행복주택은 이 최저주거기준과 거의 비슷한 면적으로 공급된다.

연합뉴스TV는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의 890세대가 거주하는 행복주택을 찾아갔다. 1인가구가 거주하는 주택은 전용면적 16㎡로 화장실과 작은 주방이 있는 원룸 형태였다. "현관에서 주방까지가 세 걸음, 또 주방에서 거실이자 방까지도 세 걸음이면 닿습니다." 취재 기자가 직접 걸어보고 말했다. 또 연합뉴스TV는 "현행 주거기준법상 최소 면적은 14㎡로, 가까운 일본이 25㎡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작"다고 지적했다.

SBS는 "청년 가구가 2인가구로 확장하고 출산까지 연결돼 3인 가로도 확장된다고 하면, 지금 1인가구 면적을 제한하는 것은 출산장려 정책하고는 배치될 수 있다"는 어느 부동산학과 교수의 의견을 소개했다. 상식적인 이야기다. 전문가든 일반인이든 간에 1인가구 주거 면적을 제한하는 것이 저출산 대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 뉴스에 달린 댓글 중에는 "1명도 겨우 사는 고시원 같은 곳에서 무슨 여유를 찾아서... 아 결혼해야겠다는 마음이 어디서 나오겠음? 보니까 결혼한 신혼부부도 1.5룸으로 제한을 해놓더니만..."이라는 한탄이 있었다. 다른 시청자는 "공공주택이 아니라 공공고시원이냐?"라고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남겼다.

윤석열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공공임대주택에 투입되는 전체 예산이나 가구수를 늘리지는 않았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공공임대주택 물량 중에서 상대적으로 넓은 주택을 자녀가 있는 가구에게 배정하려면 1인가구나 자녀가 없는 2인가구를 더 좁은 주택으로 보내야 했을 것이다. 이 돌 빼서 저 돌 괴고, 이쪽에서 빼앗아서 저쪽에 조금 더 주고. 이런 식으로는 주거 문제도 저출산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최저주거기준을 개정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의 면적 제한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달라진 시대에 맞게 면적을 확충할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서 만족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공공주택의 불모지인 미국에서도 얼마 전 공공주택에 예산을 투입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이 공동으로 제안한 '공공주택 그린 뉴딜(Green New Deal for Public Housing)'이다. 10년간 2340억 달러를 투입해서 공공주택 재고를 늘리고, 기존 공공주택은 난방과 전기 설비 개선 등을 통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탄소 제로 주택으로 만들자는 내용이다. 미국 전역의 공공주택에 살고 있는 미국인 200만 명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28만 개의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정치권에서는 이처럼 공공성 강화를 위한 대형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밀어붙이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한국에서는 상속세를 인하하자고 목소리 높이는 정치인이 많다. 상속세 인하는 기성세대가 가진 부동산 등의 각종 자산을 자기 자녀에게만 물려주기 위한 요구다. 이미 '최저'선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부모에게서 물려받을 자산이 없는 청년들은 어쩌란 말인가? 그들이 거주하는 집은 모두 돈벌이 수단이 되어 있는 실정인데 그들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구체적인 정책은 너무 빈약하다. 부동산이 아닌 주거라는 관점에서 다 같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우선 상반기 중에 국토부가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지켜봐야겠다.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livewith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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