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6 (목)

이슈 윤석열 정부 출범

방위비 협상 판뒤집기 예고? 트럼프 "韓 해볼만한 상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보도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한국은 부자 나라"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자 한국의 방위비 분담 규모가 "아무것도 아닌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주장했다. 그가 재집권하면 주한미군 유지 여부를 지렛대 삼아 한국으로부터 더 많은 방위비를 받아내려 할 것이란 우려가 한층 커지고 있다.

중앙일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성 추문 입막음' 혐의 관련 재판에 출석한 모습. 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韓, 해볼 만한 상대였다"



이날 공개된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이냐'는 질문에 "한국은 사실상 아무 비용도 내지 않는다"며 "한국이 적절한 대우를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주한미군은 위험한 위치에 있다"며 "나와는 잘 지냈지만 나름의 비전을 가진 한 사람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주한미군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한국이 더 많이 분담해야 한다는 재임 시절 주장을 이어갔다. "한국은 내가 이미 만들어둔 거래(deal)를 바이든 행정부와 다시 협상했다"며 "원래는 한국이 수십억 달러를 내기로 했지만, 재협상을 하면서 (분담금이) 전과 비교해 아무것도 아닌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재 적용되고 있는 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이 트럼프 재임 시기인 2019년 8월에 협상을 시작했지만 결국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인 2021년 3월에 타결됐다는 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트럼프는 기존 분담금의 5배가 넘는 50억 달러를 요구했다.

중앙일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당시인 2019년 6월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열린 장병 격려 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또 이날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벌였던 방위비 협상에 대해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결국은 즐겁게 해볼 만한 상대였다"며 자신이 한국을 상대로 큰 폭의 분담금을 '뜯어낼 능력'이 있다는 걸 과시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부자 나라' 프레임 또 꺼내



트럼프는 재임 시절에도 여러 차례 한국을 "부자 나라"로 칭했다. 그는 2019년 8월 트위터에 "한국은 매우 부유한 나라"라며 "한국은 북한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에 상당히 더 많은 돈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11차 SMA 협상이 시작하기도 전이었는데 일종의 '블러핑'을 한 셈이다.

트럼프가 2017년 6월 백악관 회의에서 미국을 '모두가 털고 싶어하는 돼지저금통'에 비유하며 "미국은 한국을 지키려 3만명의 병력 주둔 비용을 낸다. 한국에서 정말 떠나고 싶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전언도 있다(2020년 9월, 밥 우드워드의 저서 '격노').

주한미군의 실제 규모는 2만 8500명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당시 이를 3만명으로 일컬었고 이날 타임 인터뷰에선 4만명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자주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문제 삼는 데에 대해 더 많은 분담금을 얻어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과 실제 철수를 염두에 둔 거란 관측이 함께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 마지막 국방 장관을 지냈던 마크 에스퍼 전 장관은 "트럼프가 주한미군 완전 철수를 제안했다"며 "2018년 1월에는 주한미군 가족과 비전투 인원을 대피하라는 방침을 발표하려 했지만 무산됐다"고 지난해 5월 회고록을 통해 밝혔다. 직전 해인 2017년 말은 북한의 무력시위가 거셌던 상황이다. "실제 대피했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했을 것"이라는 맥락이다.

중앙일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당시인 2017년 11월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빈센트 브룩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과 악수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국방수권법(NDAA)에 따르면 미 의회의 동의 없이 대통령의 뜻만으로 주한미군을 일방적으로 철수하거나 감축하는 게 불가능하다. 2019년 이후 국방수권법에는 매년 주한미군 감축을 제한하거나 유지하는 내용이 포함됐으며, 지난해 12월 의회를 통과한 올해 국방수권법에도 '주한미군 유지'가 명시됐다.

이날 외교부 당국자도 "미 의회에서도 현 수준의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초당적 지지가 계속 확인되고 있다"며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은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이 꾸준히 높아지는 가운데 중국 견제의 목적도 가지고 있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건 미국의 국익에 반한다는 지적이다. 조남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위원은 "아무리 트럼프에 충성하는 참모라도 전쟁 위협을 감수하고 주한미군을 완전히 빼는 모험을 할 리는 없으며 트럼프를 굉장히 말릴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면 트럼프는 어떻게든 돈을 많이 받아내는 데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 개시' 무색해지나



트럼프가 더 많은 방위비를 받아내기 위해 '부자 나라' 프레임과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또 꺼내던 것이라면 현재 진행되는 12차 SMA 협상을 조기에 개시한 의미가 자칫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미는 2026년부터 적용될 12차 SMA 체결을 위한 첫 회의를 지난달 23~25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했다. 11차 SMA의 유효 기간이 내년 말이기 때문에 전례대로면 내년 초쯤 협상이 시작돼야 하는데,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유독 일찍 협상을 시작했다는 게 외교가의 공통된 견해다.

중앙일보

이태우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 협상 대표가 지난 3월 임명 뒤 서울 종로구 외교부 기자실을 찾아 취재진을 만나는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1기 행정부에서 구체적인 결과를 내더라도 트럼프가 돌아올 경우 이를 번복하거나 추가 비용을 요구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가 간의 모든 협정과 조약은 한 국가의 주권 사항으로 간주해 이론적으로 대통령의 뜻에 따라 파기가 가능하다. 방위비 협상 타결 시 한국은 국회의 비준을 거쳐 효력이 발생하고 미국은 행정 협정으로 분류돼 의회 비준을 거치지 않는데, 이와 별개로 협정의 궁극적인 체결·파기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그의 뜻에 따라 협정의 명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미 컨설팅업체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트럼프가 재협상을 하지 않으리라 믿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대선 국면에서 진행되는 협상이다 보니 아무리 동맹 존중을 앞세우는 바이든 행정부라도 국내적으로 과시할만한 성과를 얻으려 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타결된 현 11차 SMA도 한국의 국방비 증가율을 방위비 인상률에 무리하게 연동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중앙일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AFP.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국방비 지출과 관련해서 바이든을 공격할 포인트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도 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트럼프는 이날 타임 인터뷰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를 향해서도 "돈을 내지 않는다면,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당장은 한국·나토를 향한 트럼프의 압박성 발언은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한 목적이 다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트럼프가 실제 귀환에 성공하면 말로만 그치던 방위비 인상과 주한미군 철수 압박이 가시화하는 것은 물론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확대 등 한·미의 최근 확장 억제 강화 움직임에도 일일이 청구서를 내밀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