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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밸류업 큰손' 나선 연기금, 총선 후 7000억 폭풍 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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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매도에도 나홀로 '사자'

반도체·2차전지·車·저PBR주 등

선거 끝나자 하루 빼곤 매일 사들여

4년간 국내 주식 축소 기조와 딴판

2일 '밸류업 프로그램' 초안 공개

정부와 증시 부양 발맞춰 나갈 듯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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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올 초까지 코스피 주식을 내다 팔던 연기금이 지난달 총선 직후부터는 쉬지 않고 국내 증시를 순매수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연기금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민연금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가이드라인(지침) 초안 공개를 앞두고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과 궤를 맞춘 효과로 분석했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총선 직후인 지난달 11일부터 30일까지 코스피와 코스닥을 각각 7038억 원, 576억 원 사들였다. 특히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지난달 17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13거래일 내내 순매수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달 22일에는 코스피시장에서 1473억 원어치를 사들여 올 들어 가장 큰 순매수 규모를 기록했다.

연기금의 국내 증시 매수는 다른 기관투자가들과 상반된 행보다. 기관은 같은 기간 코스피를 1조 4196억 원 팔아치우며 차익 실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융투자(1조 8752억 원), 보험(350억 원), 은행(49억 원), 기타금융(607억 원), 기타법인(761억 원) 등이 모두 매도 우위를 보인 가운데 투신의 순매수액도 423억 원에 그쳤다.

연기금은 이 기간 삼성전자(005930)(1381억 원), LG에너지솔루션(373220)(666억 원), 포스코홀딩스(646억 원), SK하이닉스(000660)(441억 원) 등 반도체·2차전지주는 물론 기아(000270)(1223억 원), 신한지주(055550)(457억 원), 현대차(005380)(369억 원), KB금융(105560)(323억 원) 등 저주가순자산비율(PBR) 종목까지 전방위로 주식을 매집했다. 대신 하이브(352820)(296억 원)를 비롯해 HD현대일렉트릭(267260)(800억 원), 포스코퓨처엠(003670)(447억 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442억 원) 등은 팔아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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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최근 연기금이 대규모로 국내 증시 매수에 나선 점을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 국민연금이 국내외 자산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꾀하면서 국내 주식 비중을 최근 몇 년 사이 계속 줄이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중기 자산 배분 계획에 따르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국내 증시 투자 비중을 지난해 15.9%에서 올해 15.4%, 내년 15.0%로 줄일 방침이다. 투자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을 올 1월 말 기준으로 이미 13.2% 정도까지 낮춘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로 연기금은 2020년 2조 1835억 원 순매도를 시작으로 2021년 24조 1439억 원, 2022년 2조 7488억 원, 지난해 2조 9468억 원 등 4년 연속 코스피 주식을 대거 처분했다. 올 들어서도 1월까지는 유가증권시장에서 7151억 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매매 패턴 변화를 두고 여당의 총선 참패 이후에도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 등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에 속도를 내자 이에 발을 맞춘 행보로 해석했다. 연기금은 정부가 올 1월 하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의지를 내비치자 2월과 3월 2581억 원, 2493억 원씩 코스피를 순매수한 바 있다. 지난달에는 총선 당일까지 뚜렷한 매매 방향성을 보이지 않다가 그 직후부터 순매수 규모를 7000억 원 이상 늘렸다. 코스피가 지난달 11~30일 2500포인트 후반~2700포인트 초반의 박스권 흐름을 보인 점을 감안하면 연기금이 전략적으로 저가 매수에 나섰다고 보기도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1분기 때 밸류업 프로그램의 장세를 주도했던 투자 주체는 외국인이었으나 앞으로는 연기금의 움직임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며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이 올해 목표치인 15.4%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에 추가 매수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국민연금이 정책 초기 주요 수급원이 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당분간 연기금이 외국인과 함께 국내 증시를 주도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현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후임 인사 후보군 중 한 명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금융위와 거래소는 2일 서울 여의도 거래소 사옥에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 2차 세미나’를 개최하고 밸류업 프로그램 가이드라인 제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국내 투자 비중은 49%로 추정된다”며 “최근 달러 자산 강세로 해외 자산 수익률이 이미 올라간 점을 감안하면 국내 투자 비중을 56%까지 늘리는 게 적정하다”고 밝혔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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