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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청계광장]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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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예술분야에서 발전이 그 어떤 분야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앞선 자들의 업적을 공부하고 종합해 그것을 이어나가는 것이 발전인 대부분 학문분야와 달리 예술가는 그 이전의 모든 실천과 달라지기 위해 공부하고 훈련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쌓으려면 필연적으로 이러한 '단절'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예술가는 쉬이 이중불안에 시달리곤 한다. 자신이 떠올린 것, 만들고자 하는 것이 그 예술의 역사 속, 수많은 스승과 선배에게 온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영향에의 불안'(The Anxiety of Influence)을 느끼기도 하고 창조를 위해 다가오는 미지의 것에 자신을 열어놓아야 하는 탓에 항시적으로 존재의 불안정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이렇게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어느 쪽에서도 편하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존재가 된다.

예술가 개인의 차원에서도 이러한 단절은 중요하다. 위대한 예술가는 예술적 전통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로부터도 벗어나야만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끊어내며 발전할 수 있는 예술가를 키워내는 일이 쉽지 않음은 당연하다.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예술교육은 이미 정해진 기술을 기계적으로 반복학습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예술가는 타고나는 것이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도 한다.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를 키워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예술 교육자들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예술실기의 반복훈련은 단절과 도약을 위한 준비과정일 뿐이다. 자기 자신을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 삼는 다양한 예술에서 창의적 예술의 실천은 그 도구의 사용법을 완전히 익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스스로를 기계에 가깝게 여길 정도로 연습을 반복하는 것은 예술적 표현에서 그 도구나 방법에 대한 의식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완벽한 표현의 역량은 그 자체로 예술적 관념과 분리가 불가능해짐으로써 예술가를 기존 예술의 종합 너머로 도약하게 한다. 춤이나 노래, 연기와 같이 특별히 신체기관의 역량이 중요한 예술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악기나 붓, 카메라 같은 추가적인 표현도구를 갖는 분야도 그것들을 활용하는 신체의 감각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러한 훈련은 모든 예술에 필요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는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비로소 만들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예술적 능력과 소질은 타고나는 것일 수 있지만 예술의 과거나 자신의 과거와 떨어져 한 단계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스스로를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객관화할 수 있는 통찰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시대에 대한 진정한 통찰은 '시대를 벗어남'(반시대성)으로써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를 이어받은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은 진정한 동시대(同時代)란 그것의 불가능성을 끌어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시대의 흐름(유행·fashion) '안에' 있음 아닌가. 그러나 '유행'이라는 것은 앞서가거나 따라가는 것이지 그것과 완벽히 일치할 수 없다. 사실 우리가 보통 유행 '안에' 있기 위해서는 이미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 그렇다면 예술가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다. 시대의 흐름이나 유행을 따라가서는 진정한 창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투적으로 앞서가며 시대를 이끌고자 한 아방가르드 예술을 떠올려 보자. 예술교육이 앞선 것을 따라가는 방법만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AI예술의 기교와 경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의 발전을 위해 인문학과 역사 같은 이론교육이 강화돼야 하는 이유다. 인간의 예술교육은 시대를 앞서갈 수 있는 깊이를 가져야 한다.

AI가 아니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예술, 그것은 바로 시대를 앞서가는 데 있다.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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