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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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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해병대 채 해병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의 법적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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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30일 저녁부터 8월 2일까지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있는 용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야권이 5월 국회에서 특검 통과를 벼르고 있는 이른바 '해병대 채 해병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의 핵심 질문이다.

규명해야 할 사실관계는 간명하다. 대통령(실)의 관여 여부다. 이첩 보류 지시, 사건 기록 회수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관여 나아가 압력이 있었던 건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해 7월 31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이첩 보류 지시 직전 대통령 내지 대통령실 관계자와의 통화 여부, 8월 2일 기록 회수 당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의 통화 이유 등이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할 사실 관계다.

그런데 이번 사건과 관련된 법적 쟁점은 간단치 않다. 법조계에서 까다롭기로 소문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공수처 고발 사건의 주된 죄명이다. 법 적용이 까다로운 만큼, 향후 규명되어야 할 사실 관계를 해석하기 위해서라도 법적 쟁점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언론과 정치권은 6개월여 전의 자신들과 경쟁하고 있다. 이종섭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 이 전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 직전 대통령실 유선 번호와의 통화 내역 등 새롭게 추가된 의혹들이 있지만, 법적 쟁점은 이미 6개월여 전에 국회 등에서 이미 논의됐다. 국회 회의록을 중심으로 6개월여 전 기억을 되짚어 보자.

2022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개정 군사법원법



<군사법원법>

제2조 (신분적 재판권)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범죄 및 그 경합범 관계에 있는 죄에 대하여 재판권을 가진다. 다만,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성범죄
2. 군인 등이 사망하거나 사망에 이른 경우 그 원인이 되는 범죄
3. 군인 등이 신분취득 전에 범한 죄

④ 국방부장관은 제2항에 해당하는 죄의 경우에도 국가안전보장, 군사기밀보호,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정이 있는 때에는 해당 사건을 군사법원에 기소하도록 결정할 수 있다. 다만, 해당 사건이 법원에 기소된 이후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7조(사건 이첩) ① 군 검사 또는 군 사법경찰관은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범죄에 대한 고소ㆍ고발ㆍ진정ㆍ신고 등을 접수하거나 해당 범죄가 발생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을 발견하는 등 범죄를 인지한 경우 법 제228조 제3항에 따라 지체 없이 대검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또는 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이종섭 전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는 장관의 정당한 권한 행사라는 이 전 장관 측과 여권, 불법적 지시라는 야권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항명죄 성립 여부도 장관의 권한 유무와 연관된다.

이에 대한 판단을 위해 우리는 위 2개 법 조항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위 2개 법 조항은 이른바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의 시작이자 끝이다.

2022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개정 군사법원법은 성범죄 등 이른바 3대 범죄에 대한 관할권을 군이 아닌 민간에 맡기고 있다. 성범죄, 입대 전의 범죄는 판단이 용이하다. 논란이 되는 건 제2조 2항 2호에 규정된 '사망의 원인이 된 범죄'다.

군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사건은 무조건 민간으로 이첩될까. 그렇지 않다. 가정사 내지는 연인 관계와 관련된 신변 비관으로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민간으로 이첩되지 않는다. 그런데 자살의 배경에 군내 가혹 행위 등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된다면 어떨까. 사망 원인에 다른 범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에 민간으로 이첩된다.

"'사망의 원인이 된 범죄' 이첩에 국방장관은 권한 없다"



사망의 배경에 다른 범죄가 있었던 건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선 초동 조사가 필요하다. 해병대 수사단이 진행했던 게 이 작업이다. 그런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를 확인했다면 언제, 어떻게 사건을 이첩해야 할까.

이것을 규정한 게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이다. 군사법원법과 마찬가지로 2022년 7월 1일부터 개정 법령이 시행됐다. 규정은 조사와 이첩의 주체를 군 검사 또는 군 사법경찰관으로 정하고, 이첩 시기는 '범죄를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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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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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의 의미가 불명확하다.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고 조문 심사 과정에 참여한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수사기관이 사실을 알면 바로 딱 신속하게 (2023년 9월 4일 국회 예결특위)" 이첩하라는 의미라며, "장관이든 부대장이든 관여하지 마라'라고 판단하고 정리하고 만든 조문(2023년 9월 4일 국회 예결특위)"이라고 설명한다.

'인지'의 시기는 '법률적 인지'가 아닌 '사실적 인지'로 논의됐다고 박 의원은 말한다. 어떤 행위가 있었다는 걸 확인했을 때, 그것이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판단하지 말고 행위를 확인한 시점이 인지 시점이라는 것이다. '사실을 알면 바로 딱 신속하게'가 나온 배경이다. 다만, 박주민 의원의 '사실적 인지'라는 주장은 해병대 수사단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을 혐의자로 인지해 이첩하려 했던 것과 충돌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뒤에서 살펴보자.

민주당과 야권은 법조문 해석과 입법 취지를 근거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사건 이첩 보류 지시를 내린 건 '직권남용'이라고 주장한다. 사건 이첩 권한은 군 검사나 군 사법경찰관에게 있고, 지체 없이 이첩해야 하는 만큼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는 위법하다는 것이다. 장관에게 지휘 권한이 없으니 '이첩 보류 지시'는 부당한 지시라 따를 필요가 없고, 때문에 박정훈 전 수사단장의 항명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권한을 포괄적으로 위임했을 뿐, 최종 권한은 국방장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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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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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종섭 장관 측이나 국방부, 그리고 여권은 <군사법원법> 제2조 4항을 근거로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는 정당한 지휘권 행사라는 입장이다.
◯국방부 법무관리관 유재은 : 저희가 군사법원법 2조 4항에 따라서 이첩을 하지 않고 기소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그 이첩 여부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는 기본 규정입니다. (2023년 9월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방부 등 대상 국정감사)


이종섭 장관 측 주장도 마찬가지다. 3대 범죄와 관련된 사건은 기본적으로 군 검사나 군 사법 경찰관에 이첩 권한을 위임해 놓고 있지만, 군사법원법 제2조 4항 규정을 볼 때 3대 범죄 이첩의 최종 권한은 국방부 장관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이첩 시기와 관련해서는 '지체 없이'에 대한 해석을 두고 맞선다. 채 해병 사건 이전에 민간으로 이첩된 '사망의 원인이 된 범죄'는 6건 있었다. 사건 발생과 이첩까지 평균 65일 정도 걸렸다. 반면, 채 해병 사건은 사회적 관심 때문인지 10일 정도가 소요됐다. 그럼 기존에 6건은 '지체없이' 이첩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것일까. '지체 없이'의 기준을 뭘까. 여권은 이 부분을 부각한다.
◯장동혁 위원 : '지체 없이'라고 하는 것이 법문에 의해서 명확하게 언제쯤이라고 다 우리가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장관이 복귀하기 하루 전날 굳이 그렇게 성급하게 이첩해야 될 이유를 저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해병대 수사단장은) 명령 체계가 잘못돼 있다든지 이것은 제가 명령을 받을 사안이 아닙니다라든지 이첩 보류 지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 장관이 복귀한 이후에 정당한 절차와 계통을 따라서 따지면 될 문제입니다.
(2023년 8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박형수 위원 : '지체 없이'라는 표현 자체가 불명확한 개념이기 때문에 군 사법경찰관이 인지한 때로부터 바로 이첩을 안 하고 장관이 보류를 하라, 좀 더 검토를 해 보자 이렇게 한 것 자체가 '지체 없이'라는 이 규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개념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할 수 없다라는 겁니다.
(2023년 9월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권의 주장은 장관이 사건 이첩과 관련해 최종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 이첩 보류 지시 역시 장관의 권한 범위 내에 있다는 것이다. 정당한 권한 행사였기 때문에 '직권남용'은 성립될 수 없고, 장관의 정당한 지시를 어겨 사건을 이첩한 건 항명죄에 해당된다는 주장이다.

'채 해병 사건'은 장관에 보고된 첫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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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해병 사건'은 기존의 6건과 달리 장관에게 보고된 첫 사건이었다. 앞선 6건은 군 수사단이 자체적으로 이첩했고, 장관에게 보고된 적은 없었다. 당연히 '장관 결재'를 받은 문서도 없었다.
◯국방부장관 이종섭 : 이것은, 이 문서는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한테 결재하고 보고해야 될 의무가 있는 문건이 아닙니다. 이첩할 때는 관할 수사단장이, 수사 책임자가 이첩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지금까지 군에서 여섯 건이 있었지만 한 건도 국방부에 보고된 것이 없었습니다. (2023년 8월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이번 사건만 장관에게 보고돼 '결재'까지 이뤄진 이유는 뭘까. 윤석열 대통령이 엄정 수사를 지시하고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으니 그렇다고 추정할 수 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도 같은 이유라고 국회에서 설명했다. 다만, 당시 보고는 언론 브리핑 계획 보고를 위한 것으로 전달돼 장관의 법무 관련 참모는 동석하지 않았다는 게 이종섭 전 장관의 설명이다.

당시 해병대 측은 다음날 있을 언론 브리핑을 위해 장관 보고 일정을 잡았다. 국방부는 조사 결과를 보고하는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때문에 장관에게 법률적 조언을 할 국방부 법무관리관이나 국방부 조사본부장, 국방부 검찰단장 등은 보고 자리에 동석하지 않았다.
◯안규백 위원 : 그러면 그런 중요 결정을 할 때 법무관리관이나 조사본부장이나 이를테면 배석을 해 가지고 자문을 받지 왜 자문 안 받고 그랬습니까?
◯국방부장관 이종섭 :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날은 언론 홍보 계획을 보고한다고 해서 그래서 대변인하고 정책실장만 배석했던 거고요.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까 해병대 사령부에서는 이게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라고 설명을 하긴 했습니다.
(2023년 8월 21일, 국회 국방위원회)


"보고 기화로 지휘 권한 생겨" vs "없던 게 어떻게 갑자기 생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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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보고 때문에 국방장관에게 사건 이첩 보류 지시 권한이 생겼다는 주장이 국방부 측에서 나온다. 장관은 사건 이첩 권한을 개별 군 경찰 등에 위임해 놓고 있지만 해병대 수사단의 보고로 사건 이첩 예정 사실을 인지하게 됐고, 그에 따라 장관이 지휘 권한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국방부 법무관리관 유재은 : 일단 해병대 수사단장이 자신의 수사 결과를 장관에게 와서 보고를 하고 결재를 받았기 때문에 그를 기화로 장관이 이 사건의 이첩 내용 및 그 내용을 알게 된 것이고 그에 따라서 해병대 사령관을 통해서 사건에 대해서 의문점이 생긴 것에 대해서 지휘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2023년 8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이에 대해선 그렇다면 채 해병 사건 이전 6건은 장관을 패싱한 것이냐, 원래 없던 권한이 보고를 받았다고 갑자기 생기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탄희 위원 : 이 사건의 경우에도 국방부장관이 이첩 보류 지시할 권한이 있습니까?
◯국방부 법무관리관 유재은 :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탄희 위원 : 왜요? 원래 없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생깁니까?
◯국방부 법무관리관 유재은 : 저희가 군사법원법에서 2조 4항에 따라서 이첩을 하지 않고 기소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그 이첩 여부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는 기본 규정입니다.
◯이탄희 위원 : 말이 안 되는 게 그렇다면 앞에는 다 장관 패싱한 위법적인 행위를 한 겁니다, 다른 사건들에서.
(2023년 10월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그런데 '결재'의 일반적 의미를 고려할 때 국방부 측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결재'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상관이 부하가 제출한 안건을 검토하여 허가하거나 승인함'으로 정의하고 있다. 결정할 권한이 있다면, 보류할 권한도 있다고 볼 수 있는 만큼 이첩 보류 지시 권한도 장관에게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시 결재의 의미는 뭐였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7월 30일 장관 결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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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건 '결재'를 했으니 권한이 있고, 권한이 있으니 보류 권한도 있다는 주장의 전제를 이종섭 전 장관이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장관 이종섭 : 위원님, 이게 이첩하기 위한 과정, 절차로서 장관 서명이 있는 게 아닙니다. 원래 이첩할 때는 장관 서명 안 받습니다. 그런데 그걸 오해하시면 안 되고요.
(2023년 8월 21일, 국회 국방위원회)


'결재 보류' 또는 '결재 번복'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되는데, 지난해 7월 30일 결재는 '정상적 형태의 결재가 아니었고, 사실을 확인했다는 공람적 성격의 결재였다'는 취지다. '장관 결재'의 무게감을 감안했을 때 궁색한 답변이다.

그럼 공람적 성격의 결재였다면 결재를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재를 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야권에서는 이종섭 장관의 '확신을 가지고 결재를 한 것은 아니었다'는 취지의 답변에, 그랬다면 결재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동민 위원 : 오늘 보여 줬던 단호함에 근거하면 장관께서는 그날 결재하셨으면 안 됐습니다. 들어와서 보고를 받아 보니까 '그게 아니네?', 이게 법리적인 지식을 요청하는 것이고 내가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군 전체가 요동칠 수도 있는, 해병대의 명예가 근본적으로 실추될 수도 있는 이런 사건이라고 판단했다면 당연히 법무관리관을 호출하셔야지요. (2023년 8월 21일, 국회 국방위원회)


그런데 이런 주장은 사건 이첩과 관련해 국방부 장관에겐 아무런 권한도 없다는 주장과 부딪힌다. 장관의 결재 여부가 사건 이첩과 관련이 없다면 결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소용일까. 장관의 하루 만의 결재 보류와 함께 장관에 대한 첫 보고라는 사안의 특수성은 법적 논쟁을 증폭시키고 있다.

'사망 원인이 된 범죄'는 어떻게 이첩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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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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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와 함께 논란이 되고 있는 건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외압행사 여부다. 지난해 7월 31일부터 이틀간 유재은 관리관과 박정훈 전 수사단장 사이에는 5번의 전화 통화가 있었다. 박 전 수사단장은 이 과정에서 유 관리관이 '혐의자나 혐의 사실을 빼라'는 취지로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유 관리관은 '혐의자나 혐의 사실을 빼라'고 이야기한 적은 없고, '사실 관계만 정리해 경찰에 이첩하는 방법도 있다'며 개정된 군사법원법의 취지를 설명했을 뿐이라고 반박한다. 군사법원법 개정 취지를 반영할 때 그렇게 사건을 이첩하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유 관리관의 이런 주장은 앞서 살펴본 박주민 의원의 '사실적 인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혐의자나 혐의 사실을 넣는 건 '법률적 인지'에 해당되기 때문에 '사실 관계'만 조사해서 이첩하는 게 '사실적 인지'에 더 부합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도 사건 이첩시 인지 통보서를 쓰게 되어 있는 규정을 비판하며, 유 관리관 입장에 부합하는 의견을 제시한 의원도 있었다.
◯정성호 의원 : 있는 사실관계만 판단해 가지고 관련자 1, 관련자 2, 관련자 3 그렇게 넘기면 되는 거예요. 이건 그랬으면 끝날 문제예요. ( 2023년 8월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채 해병 사건' 이전 6건은 대부분 혐의 사항 넣어서 이첩



그런데 유 관리관의 의견은 전례와 맞지 않다. 채 해병 사건 이전 6건은 대부분은 혐의 사항을 넣어서 이첩했다.
◯김의겸 위원 : 그 6건 중에 혐의를 제외한 경우, 혐의를 뺀 경우가 있었습니까?
◯국방부 법무관리관 유재은 : 혐의를 제외한 경우는 없고 민간 경찰과 군사경찰이 합의해서 혐의를 안 밝힌 경우는 있습니다.
◯김의겸 위원 : 6건 이첩한 것 중에서 혐의 사항을 빼고 이첩한 게 있었냐고요.
◯국방부 법무관리관 유재은 : 5건은 혐의를 넣어서 이첩했고요, 1건은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습니다.
(2023년 8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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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전 수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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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박정훈 전 수사단장을 항명죄를 입건한 뒤 진행된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검토 의견도 사실관계만 넣어서 이첩하는 것이 아닌 혐의자 특정 이첩이었다. 유재은 관리관이 이끌던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 의견 역시 사단장을 제외한 혐의자 2명 특정 이첩이었다.

자가당착적인 상황이 야기된 것이다. 상급 기관 고위 관계자가 수차례 연락해 '혐의자를 제외한 사실 관계만 이첩하는 방법을 안내한 것'은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기 위한 의도 아니었을까. 압력 행사 의도는 없었다는 유 관리관의 부인에도 혐의자에서 사단장이 제외된 재검토 결과 때문에 의혹은 꺼지지 않고 있다.

지나친 냉소로의 전환을 막기 위한 법적 논쟁 참고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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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해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은 의혹 제기를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방부 장관이 하루 만에 자신의 결재 내용을 보류한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그런데 보류 직전 대통령실에서는 수석비서관 회의가 있었고, 국방장관과 대통령(실)의 통화가 있었다. 대통령(실)의 전화가 이첩 보류 지시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닌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조건이다.

이른바 'VIP 격노설'은 드러난 사실 관계를 연결한다. 이종섭 전 장관이나 박정훈 전 수사단장이 발언자로 지목하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VIP 격노설'을 부인하지만, 이첩 보류 지시가 있었던 날 대통령 주재 회의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VIP 격노설'의 배경은 임성근 해병대 전 1사단장을 해병대 수사단이 혐의자로 포함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종적으로 임성근 전 1사단장은 혐의자에서 제외됐다. 의혹은 모두 대통령(실)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행여 의혹이 사실로 규명되더라도 그것이 죄가 될지는 미지수다. 대통령(실)의 관여 여부가 휘발성이 큰 사안이지만, 차후 지나친 흥분이 지나친 냉소로 바뀌는 걸 방지하기 위해선 앞서 소개한 법적 논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직권남용죄의 출발점인 '직무 권한의 유무'에서부터 논쟁이 벌어지고 있어 더욱 그렇다. 차제에 이런 논쟁이 벌어질 필요가 없도록 법 조항이 정비되길 기대한다.

(사진=연합뉴스)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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