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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거짓말의 추억 [말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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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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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짓말쟁이다. 선생이란 직업이 주는 허명에 속아 고매한 성품의 소유자로 추켜세우기도 하지만, 헛짚었다. 밤낮없는 거짓말! ‘사실과 다르게 꾸민 말’이라고 하지만, 먹물들의 거짓말은 성격이 다르다.



보통의 거짓말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벌어진 일과 다르게 말하는 것이다. 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은 걸 했다고 한다. 진위가 가려지면 비난과 처벌을 받거나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화끈하다. 물건을 훔치고도 안 훔쳤다고 말하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비리를 저지르고도 그러지 않았다고 우기는 사람은 법적 처벌과 사회적 몰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저러는 걸 테고.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은 얄궂다. 남들은 모르니 비난을 받지도 않는다. 잘만 하면 오히려 감탄과 찬사를 받는다. 그 말이 진실이라고 스스로 믿게 되기도 한다. 대학에 입학한 첫 주에 한국어학을 공부하는 모임에 들어갔다. 강의실 의자에 둘러앉아 상견례를 하는데, 선배가 물었다. “왜 우리 학회에 들어왔는고?” 우리는 돌아가면서 대답을 했다. ‘나는 뭐라고 답해야 그럴듯한 인간처럼 보일까?’



생을 바쳐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었다. 고향에서 ‘선생질’이나 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살지 뭐, 하는 희뿌연 희망 정도. 그렇게만 말할 수 없어 내뱉은 거짓말. “문학보다 어학이 더 어려워 보입니다. 저는 더 어려운 공부를 해 보고 싶습니다.” 문학이 어학보다 쉽지도 않거니와, 나는 ‘어려운’ 공부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내가 하는 공부의 출발은 거짓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름을 얻을수록, 나이가 들수록, 손에 쥔 게 많을수록, 별생각이 없는데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더 잦아진다. 없으면 없다고 하는 게 좋으련만, 쉽지가 않다. 가증스럽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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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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