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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해적이자 자선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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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7세기 말과 18세기 초는 이른바 해적의 황금시대. 검은 수염이며 캡틴 키드며 캘리코 잭이며 앤 보니 같은 유명한 해적이 카리브해를 무대로 활약했다. 1678년 5월3일에 태어난 아마로 파르고 역시 전설의 해적이었다. 그의 삶은 해적을 그만둔 다음이 더욱 특이하다.



한때 유럽 나라들은 ‘해적 면허’를 내줬다. 사략선이라고 했다. 자기 나라의 면허장을 받고 지나가는 적 나라의 상선을 털었다. 아마로 파르고는 젊어서 에스파냐 해군에 있다가 면허를 따고 해적의 길로 나섰다. 가위표로 엇갈린 뼈 앞에서 오른쪽 눈을 윙크하는 해골이 그의 문장이었다. 1712년에 영국 상선 세인트조지프호를, 1722년에 네덜란드 상선 다위벨란트호를 습격해 엄청난 화물을 가로챘다. 튀르키예 해적과도 전투를 벌였다.



에스파냐 정부가 밀어줬다. 1719년에는 58문의 대포가 달린 큰 군함을 짓는 일도 허락해줬다. 아마로 파르고는 적국의 배를 털고 그 수익을 정부와 나눴다. 나라에 큰 이익을 안겼다. 마침내 1727년에 귀족 작위를 받았다. 고향인 카나리아제도에 큰 영지를 얻었다. 해적이 귀족이 됐다.



해적을 그만둔 다음에는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마리아 데헤수스 수녀와의 우정 때문이라고 한다. 도적질로 모은 막대한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다. 고아원과 수도원에 기부를 했다. 기근이 들자 배로 곡식을 실어와 나누어줬다. 서민들의 경제 활동을 편리하게 해줄 동전 주조 사업을 지방정부에 제안했다. 고향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아마로 파르고의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좋은 일에 쓰고 남은 엄청난 보물을 유산으로 남겼다고 한다. 금은보화 가득한 해적의 보물 상자! 하지만 아무도 위치를 모른다. 보물 상자에 관한 정보를 적었다는 양피지도 행방이 묘연하다. 상자를 찾기 위해 수백년 동안 보물 사냥꾼이 저택과 동굴 등 아마로 파르고와 관련된 장소를 찾아 헤맸지만 아직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나(그러니 독자님도 도전을!). 그의 생애도 그가 남겼다는 보물도 후세 사람의 상상을 자극한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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