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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민원 전화 이제는 ‘녹음’됩니다”…민원공무원 보호대책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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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김포시 9급 공무원 A씨는 포트홀(도로 파임) 보수 공사와 관련해 차량이 정체되자 주민들로부터 여러 차례 항의성 민원을 받았다. 한 누리꾼이 지역 온라인 카페에 A씨가 공사를 승인했다는 글을 올리며 소속 부서, 직통 전화번호를 공개하자 A씨를 비난하는 글이 빗발쳤다. 민원전화에 시달리던 A씨는 결국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달 24일 강서구 화곡동 주민센터에서 공무원 B씨가 민원인에게 머리를 두 차례 가격당했다. 악성 민원인은 이사비와 통신비 160여 만원을 달라고 B씨에게 요구했으나 B씨가 정당한 지급 사유가 없다며 거절하자 폭행을 저지른 것이다. 민원인은 행정기관이 아닌 전국공무노동조합(전공노)에 의해 고발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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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공무원 A씨에 애도의 뜻을 전하는 문구가 경기 김포시청 본관 앞 전광판에 적혀있다. 김지호 기자


앞으로는 행정기관에 걸려 오는 모든 민원 전화가 자동으로 녹음되고 악성 민원으로 피해를 입은 공무원들은 6일 이내 공무상 병가를 받을 수 있다. 악성 민원인에게 폭언·욕설 등으로부터 민원 공무원을 보호하려는 조치다.

2일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 등 17개 부처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민원공무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정부가 각 행정기관 민원실에 폐쇄회로(CC)TV와 비상벨을 설치하고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등 민원 공무원 보호조치를 실행했지만. 악성 민원이 줄어들지 않자 이번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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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사망한 김포시 9급 공무원 A씨를 애도하기 위해 지난 달 김포시청 앞에 차려진 분향소 모습.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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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언하거나 통화 권장시간 넘으면 통화 종료…통화내용 ‘자동 녹음’

앞으로는 민원인이 욕설·협박·성희롱 등 폭언을 하면 공무원이 1차로 경고한다. 그럼에도 폭언이 이어지면 통화를 바로 종료할 수 있다. 그동안 민원 담당 공무원은 전화로 민원인이 욕설하거나 민원과 상관없는 내용을 장시간 얘기해도 그대로 듣고 있어야 했다.

온라인 민원창구에 대량의 민원을 신청해 업무 처리에 의도적으로 큰 지장을 주었을 때 민원 신청에 제한을 둘 계획이다. 민원실 방문도 산전예약제 등으로 1회 권장시간을 설정한다.

민원 종결이 가능한 경우도 확대한다. 통화와 같이 문서로 신청된 민원에 욕설과 협박, 성희롱 등이 포함돼있으면 공무원이 자체 종결할 수 있다. 현재도 같은 내용의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했을 때 공무원이 자체 종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때 민원 취지와 업무방해도 등도 함께 고려해 내용 동일성의 인정 범위를 확대한다.

부당하거나 과다하게 제기되는 정보공개 청구는 심의회를 거쳐 종결 처리할 수 있게 법령에 근거를 마련한다.

민원 통화는 시작부터 종료까지 내용 전체가 자동으로 녹음될 방침이다. 현재 종전에는 공무원이 통화 도중 민원인에게 ‘녹음을 시작하겠다’고 구두로 미리 알려야 녹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자동으로 통화 내용이 녹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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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지난 3월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공무원 악성민원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악성민원 희생자 추모 다잉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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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민원 피해 공무원, 6일 내 공무상 병가

악성 민원으로 피해를 입은 공무원들은 앞으로 6일 이내 공무상 병가를 받을 수 있다. 정부는 6일 이내의 공무상 병가 사유에 ‘악성 민원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를 추가하고 피해 공무원을 일시적으로 업무에서 제외하고 휴식시간을 부여하도록 지침에도 명시할 계획이다.

피해 공무원에게 심리상담, 정서안정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공무원 마음건강센터도 확충하고 민원 공무원을 위한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 밖에 정부는 관련 법령·규정·판례·통계 정보를 정리해서 제공하는 인공지능(AI)을 도입해 민원 공무 업무 처리를 돕고 민원창구에는 경력자를 우선 배치할 예정이다. 민원 부서의 고질적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기별 수요를 고려해 민원 분야에 인력도 재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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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 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민원공무원 보호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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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담당 공무원의 사기 진작책도 마련된다. 민원공무원이 승진 관련 가점을 받을 수 있게 민원 업무를 직무특성 관련 가점항목으로 명시한다. 난이도, 처리량 등 담당한 민원 업무 특성에 따라 민원 수당 가산금도 추가로 지급한다.

악성 민원 대응 과정에서 징계가 요구된 경우 민원인의 위법행위 여부 등 경위를 참작하고 악성 민원 피해 공무원은 필수 보직 기간 내라도 전보가 가능하게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악성 민원으로부터 민원 공무원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라며 “이번 종합대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국민이 안정적으로 민원 서비스를 제공받고 우리 사회에 민원 공무원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지호 기자 kimja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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