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7 (금)

“‘인생의 가을’엔 속도 줄이고 건강 지키는 게 최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⑳ 시장조사 회사 퇴사하고 경영지도사 활동하는 김석원씨

한겨레

김석원 경영지도사. 김석원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화학 분야에서 ‘성공적 사회생활’ 시작

1990년 도장 기계로 창업했다가 ‘폭망’

다시 회사 들어가 성공 경험도 했지만

2014년 경영지도사 합격한 뒤에 퇴직

책 펴내고 큰 기업 일구는 꿈도 꿨지만

너무 무리한 탓인지 몸에 이상 나타나

이후 창업 계획 포기하고 컨설팅 지속

“직장 경험 살려 사회 도움 길 찾길” 조언


경영지도사 김석원(62)씨는 9년 전 리서치회사인 에이시(AC)닐슨에서 퇴사했다. 경영지도사는 중소기업 경영에 대해 종합적인 진단과 지도를 수행할 능력을 갖춘 이를 말한다. 김씨가 이 자격증을 취득했을 땐 포부가 컸다. 큰 회사를 차려서 돈도 많이 벌 생각이었는데 그는 지금 그런 계획을 다 수정했다.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경험과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다.

김씨는 1987년에 첫 회사 동양화학공업에 입사했다. 동양화학공업은 ‘인쇄회로기판’ 제작에 필요한 약품을 만드는 기술을 미국에서 들여왔다. 인쇄회로기판은 전자제품에 들어 있는 초록색 기판을 말한다. 당시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약품인데 동양화학공업에서 국내 생산에 성공하면서 김씨는 자기 일에 큰 보람을 느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회사에 쏟는 열정으로 창업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1990년 마침 성능 좋은 도장 기계를 파는 사람을 만났다. 도장 뚜껑을 열 때 ‘빡’ 소리가 나게 도장을 파려면 숙련공이 필요한데, 기계를 쓰면 인건비를 줄여 큰돈을 벌 듯싶었다. 잠실 아파트가 3천만원이던 시절에 퇴직금을 모아 1200만원을 만들어 기계를 사고, 1500만원을 빌려 공장을 차렸다. 3개월 지나니 ‘망했다’ 싶었다. 무엇보다 도장 기계가 허술했다.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 빚을 갚고 나니 살 집을 마련할 돈이 없었다.

한겨레

중소기업 강의 모습. 김석원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시 동양화학공업의 문을 두드렸더니, 특수관계사 옥시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줬다. 그는 옥시에서 ‘하마로이드’ ‘물먹는 하마’를 개발하고 마케팅까지 담당했다. 남들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해 제품 개발을 고민하고 효과적인 마케팅을 연구했다. 7년을 일한 뒤 이왕이면 1등 회사에서 일해보자 싶어 ㄱ사로 이직했다.

1997년 ㄱ사에서 매출이 안 좋은 5개 품목을 그에게 맡겼다. 그중 경쟁력이 없어 보이는 제품들의 철수보고서를 썼다. 마지막으로 남은 제품이 방향제였다.

“방향제마저 철수하면 나는 뭘 하지? 고민한 거예요.”

해결책을 찾으려 매장을 계속 방문했다. 시범 매장을 선정해 아크릴 케이스를 예쁘게 만들어 방향제 뚜껑을 열어놓고 한 달을 살폈다. 그랬더니 매출이 5배가 올랐다. 아크릴 케이스를 전국 매장으로 확대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는 1년 동안 전국 곳곳에 있는 3천 개 매장을 방문했다. “아침 7시에 대리점에서 배송트럭을 탔어요. 슈퍼에 도착해 물건 내릴 때 방향제 아크릴 케이스를 설치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방향제 1년 매출을 5억원에서 24억원으로 올렸다. 그룹사에서 발행한 특별지에 ‘파르텔의 아버지 김 과장의 하루’라는 제목의 기사로 김씨 이야기가 실렸다. 다음해 그는 ㄱ사의 주력품인 세탁세제의 브랜드 매니저로 발탁된다. 영입 인사인 그가 파격 승진한 것에 대해 부러워하거나 질시하는 이도 있었다.

한겨레

경영지도사 등록증과 자격증. 강정민 작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 ㄴ사에서 식품 개발과 마케팅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회사를 옮기고 성과가 좋았는데, 회사가 외국계로 넘어가면서 그는 젊은 외국인 상사를 대하는 게 힘들었다. 3년 뒤 퇴사해서 서울시설공단을 거쳐서 시장조사 전문회사인 AC닐슨에 들어갔다. 그는 2014년에 경영지도사 공부를 시작해서 객관식 1차 시험에 쉽게 통과했다. 2차 시험은 주관식 논술이라 주말에 학원을 다니며 동료들과 함께 예상 문제를 풀었다. 합격한 뒤 논술 공부한 종이를 쌓아보니 그의 허리까지 올 정도였다. 1년 뒤 AC닐슨에서 퇴사했다.

“나름대로 화려했던 거 같아요. 교만함도 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해요. 일보다 인간관계가 힘들었죠. 덕분에 실력은 늘었지만요.”

2016년 그는 호서대 글로벌창업대학원에 들어가고, 다음해 <성공해놓고 시작하는 창업>(박영사 펴냄, 2017년)을 펴냈다. 이 책은 지금도 꾸준히 팔린다. 다음해 호서대 벤처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갔고, 여러 곳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와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완치가 힘든 병이라 했다. 공부를 너무 무리해서 한 탓 같았다. 그는 큰 회사를 차리겠다는 계획도 다 접었다.

“병을 얻으면서 겸손해졌어요. 병이 저를 구해준 거죠. 그렇지 않았으면 죽는 줄도 모르고 지금도 달려갔을 거예요. 뇌는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지금은 경영지도사 서울 중부지회 부회장을 맡아 신입 후배들 대상으로 특강도 한다. 그런데 후배들 모습을 보면 건강을 해칠 정도로 달려온 자신의 과거 모습이 보여 안타깝다.

한겨레

저서 <성공해놓고 시작하는 창업>. 강정민 작가


김씨가 지금 하는 일은 세 가지로 나뉜다. 그는 창업 관련해 강의도 하면서 ‘예비창업’과 ‘신사업 패키지’에 지원한 신청자를 심사하고 심사에 통과한 이들을 멘토링해준다. 그리고 중소기업을 컨설팅해주는 일도 한다. 중소기업에 가서 정부의 지원 정책을 설명하고, 그 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고자 하면 컨설팅 계약을 체결해 경영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는 경영지도사들의 주 활동 분야다. 마지막으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세우고, 이러한 능력을 키우기 위한 학습 모듈을 만들고 있다. 해마다 관련된 분야 책을 한 권씩 낸다.

기업 운영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무엇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을까? “중소벤처기업청에서 운영하는 ‘왔다’앱이 있는데, 이걸 보면 어떤 지원이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어요.”

경영지도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제가 상대하는 중소기업 실무자들이 젊은 사람들이라 절 어려워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좀 더 빨리 퇴사할걸’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해요. 보통 은퇴자들이 전 직장에서 했던 일을 보기 싫다며 버리는 분이 많은데, 그보다는 회사에 다니며 쌓은 경험을 잘 살려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길을 찾으시면 좋겠어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한 김석원씨는 어느 회사에 가든 좋은 성과를 냈다. 자신만만하게 준비한 인생 2막에서도 여전히 그런 행보를 이어갈 계획이었지만 건강에 무리가 와서 목표를 수정했다. 인생의 가을에는 속도를 줄여야 건강도 지키면서 우리의 삶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거 같다. 그의 느린 발걸음이 원하는 바를 이루길 바란다.

강정민 작가 ho089@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한겨레 금요 섹션 서울앤 [누리집] [페이스북] | [커버스토리] [자치소식] [사람&]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