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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헌재도 ‘갸우뚱’ 했다…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 충분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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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4월28일 대구 달성군 국립대구과학관을 찾은 시민들이 올해 기후 예상을 보여주는 SOS(Science On a Sphere) 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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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2340여건의 기후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 23일 한국 헌법재판소에서도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 공개변론이 열렸다.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소송으로, 헌재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이례적으로 공개변론을 두 차례(2차 5월21일) 잡았다. 공개변론 현장에서 헌법 재판관들이 한 실제 질문을 중심으로 기후소송 주요 쟁점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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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쪽은) 파리협정이 각국의 자발적 목표 설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에 관한 법령이 위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죠?”



지난달 2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기후소송 1차 공개변론에서 나온 김형두 재판관의 질문이다. 파리협정도 각국이 알아서 하라는데, 제조업 중심인 우리의 산업구조를 보면 지금 목표도 충분한 것 아니냐는 게 정부 쪽 주장이다. 한국의 현재 국가 목표는 2030년까지 직전 배출 정점이었던 2018년 배출량의 40%를 감축하는 것이다. 반면 청구인들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해 시민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이 목표가 충분한가, 아닌가를 따지려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 파리협정은 인류가 기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체결한 국제 조약이고, 그 방법은 지구 기온의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과 견줘 1.5도 이내로 묶어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2050년 이전 탄소 중립을 이뤄야 한다. 개별 국가의 목표가 충분한지를 따지려면 이 목표가 인류 전체 목표에 부합하는지를 봐야 한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는 한 번 배출되면 수백 년 동안 대기 중에 머문다. 때문에 탄소 중립만 달성해선 안 되고 그 이전까지 쌓이게 될 누적 배출량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개념화한 것이 ‘탄소예산’이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백만분의 1 단위(ppm)로 표기하는데, 지난해 전 지구 평균 온실가스 농도는 419ppm이었다. 지구 대기 기체 분자 100만개 가운데 419개가 온실가스라는 뜻이다. 이 수치는 2015년 처음 400을 넘어섰고, 이대로 450을 넘어가면 회복 불가능한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탄소 예산은 이 수치가 450이 될 때까지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지난해 발간한 6차 평가보고서(AR6)를 보면, 2020년 1월1일을 기준으로 한 탄소 예산은 3천억~2조3천억톤(이산화탄소환산톤)이다. 목표 온도와 달성 확률에 따라 이 구간 내에서 숫자가 달라진다.



1.5도 목표를 50% 확률로 달성할 때, 탄소예산은 5천억톤(500Gt)이 되고, 1.7도를 67% 확률로 달성할 때의 양은 7천억톤(700Gt)이다. 최근 전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이 한 해에 370억톤가량이니, 탄소예산 5천억톤일 경우 아무 감축 없이 이대로 가면 2033년에 탄소예산이 다 소진된다. 즉 9년 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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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예산을 국가별로 어떻게 나누느냐다. 몇 가지 방안이 논의됐다. ‘기후변화에 관한 유럽과학자문위원회’는 파리협정의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DR·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 원칙에 따라 남은 탄소 예산에 대해 인류가 모두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관점에서 인구 비례로 먼저 나누고, 선진국과 개도국, 과거 누적 배출량과 현재 소득수준(감축 비용 부담 능력)을 고려해 조정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은 단순 인구 비례로 했을 때보다 할당량이 적어진다. 온실가스 배출량 13위, 누적 배출량 17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인당 배출량 7위의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먼저 단순 인구 비례로 계산해보면 한국은 전체 탄소 예산 5천억톤의 0.67%(2019년 세계 인구 기준)인 33억5천만톤을 할당받는다. 7천억톤으로 계산하면 46억9천만톤이다. 최근 한국의 한 해 배출량이 6억5천만톤가량이니 계산하면 소진 시기가 각각 5년, 7년 뒤로 나온다. 단순 인구 비례만으로도 이러하니 우리의 책임까지 고려하면 남은 탄소 예산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당장 획기적인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우리는 미래세대가 사용할 탄소 예산까지 지금 당장 소진해버리는 셈이다.



한국의 감축 목표가 기후위기 대응에 충분치 않다는 건 비슷한 수준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확연하다. 각국의 2030년 배출량 목표는 기준 시점과 목표 감축률이 제각각이다. 한국이 공식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필요성을 인식하고 각종 목표를 설정한 2010년을 기준으로 각국 목표 감축률을 계산하면, 한국의 목표 감축률은 27%다. 반면, 미국 47%, 유럽연합 45%, 독일 52%, 영국 58%, 일본 38%, 호주 43%, 캐나다 41% 등이다. 이를 연간으로 보면 한국은 3.7%지만 독일 5%, 미국 3.8%, 프랑스 4.8%, 영국 4.7%, 캐나다 4.2%, 이탈리아 4.1% 등이다. 우리보다 먼저 감축을 시작한 나라들이 우리보다 더 빨리 줄여가고 있다. 청구인 쪽은 “한국은 2010년 이후에도 2018년까지 꾸준히 온실가스 배출을 늘려왔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대였던 2018년 기준으로 감축 목표를 비교한다고 하더라도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부 쪽은 오히려 파리협정의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원칙을 ‘각자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아 “한국이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도 불구, 대단히 도전적인 목표를 잡아놓고 있다”며 위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청구인 쪽 대리인인 이병주 기독법률가회 공동대표는 “유엔이 각국의 감축 목표를 종합한 뒤 이를 파리협정의 1.5도 목표와 비교해 펴낸 ‘배출량 격차 보고서’를 보면, ‘현재 각국 목표대로 감축이 이뤄져도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2.9도 상승할 것이며, 모든 국가가 지금보다 목표를 36~40% 현격히 상향해야 한다’고 했다. 목표 상향 없이 이대로 가면 기후파국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다음회에선 ‘2030년 이후에도 감축 목표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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