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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내수회복에 찬물 붓는 고금리 …"통화정책 타이밍 놓쳐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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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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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가격 고공행진에도 4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3개월 만에 2%대로 낮아졌다. 금리 정책의 핵심 지표인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고, 가까스로 경기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 만큼 완화적 통화 정책을 고민할 때라는 주문도 나온다. 고금리 고통이 내수 회복에 부담을 준다는 시각이다. 특히 금리 민감도가 산업 분야와 계층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주고 있어 보다 정교한 경기 전망과 통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소비·투자에 영향을 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통화당국이 경기 변곡점을 더 예민하게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금리 변환기 경제주체들이 금리 풍향을 보다 정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현재 3개월만 전망하고 있는 '한국형 점도표'의 시야를 대폭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9(2020년 100 기준)로 전년 동기 대비 2.9% 올랐다. 올해 1월 2.8%에서 2월과 3월 3.1%를 기록했다가 2%대로 다시 낮아진 것이다. 사과(80.8%), 배(102.9%)를 비롯한 농축수산물이 10.6% 오르며 가격 상승세가 가팔랐지만,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석유류 상승폭(1.3%)이 제한적이었고, 원료값 하락에 라면(5.1%)을 비롯한 일부 가공식품 가격이 내려가며 선방했다.

경기 개선 전망도 슬슬 늘어나고 있다. 이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2%에서 2.6%로 올렸다. 국제통화기금(IMF·2.3%), 정부(2.2%), 한국은행(2.1%)의 전망치보다 높은 수치다. OECD는 올 하반기 이후 내수가 금리 인하와 함께 회복될 것이라고 봤다.

오는 23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1번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현 수준(3.5%)으로 동결할 것이 유력하다. 한은의 하반기 물가 전망(2.3%)과 현재 물가 사이에 괴리가 큰 데다 미국의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약해졌고, 국제유가와 원화값 변동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이 계속 뒤로 밀리는데, 이 때문에 올해 한국은 금리 인하가 힘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고금리 충격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내수와 투자 위축도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이날 '최근 내수 부진 요인 분석'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최근 수출이 비교적 빠르게 회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수 회복이 지체되고 있다"며 그 원인으로 고금리 장기화를 지목했다. 수출이 현재의 흐름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소비·투자도 크게 개선돼야 하지만, 앞으로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진다면 올해 내수가 충분히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연구진은 전망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정책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민간소비는 3개 분기 후 최대 0.7%포인트 감소하고, 그 영향은 인상 후 9개 분기까지 지속됐다. 설비투자는 금리 1%포인트 인상 시 3개 분기 후 2.9%포인트까지 위축되며 인상 후 8개 분기까지 파장이 이어졌다.

고금리는 당장 올해 내수 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수출 회복세는 올해 소비를 0.3%포인트, 설비투자를 0.7%포인트 늘릴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고금리는 올해 소비를 0.4%포인트, 설비투자를 1.4%포인트 줄일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따라 올해 소비는 0.1%포인트, 투자는 0.7%포인트 감소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고금리 충격이 서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직접적이다. 한은에 따르면 자영업자 314만명의 대출 잔액은 1043조원인데, 대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이들의 이자 부담은 7조2000억원이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1인당 평균 이자 부담이 230만원 뛰어오르는 것이다.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은 "한은이 금리 인하를 고려하면서 서민층 지원을 위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초저금리로 대출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태수 KAIST 금융전문대학원 교수는 "고금리가 장기화할 경우 서민 부담이 커진다"면서 "금융당국이 가동 중인 대출 플랫폼과 대부금융을 모두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야당의 총선 압승으로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주는 민생지원금 등 막대한 재원이 들어가는 공약 이행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도 악재다. 물가와 금리를 동시에 자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 국민 지원금 등 재정 정책 확대→국채 발행→채권 가격 하락(금리 상승)→은행 조달 비용 증가→대출 금리 상승→서민 원리금 부담 가중'의 흐름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대규모 재정이 풀리면서 물가가 재차 올라갈 공산도 크다.

김 위원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의 재정 정책은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물가를 교란시킬 수 있는 대규모 내수 진작 정책은 자제하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한은이 예상한 향후 3개월 뒤 기준금리 전망치(한국형 점도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은 출신의 한 경제학자는 "금리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한국형 점도표 전망이 3개월에 그쳐 시장에 주는 정보가 크게 부족하다"며 "지금처럼 금리 전환기와 맞물려 있을 때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처럼 금리 전망을 3년 이상으로 넓혀 시장이 통화 정책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환 기자 /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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