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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김치찌개는 죄가 없다, 그럼 누구?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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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2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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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이제 확실해졌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격렬하고 열정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드디어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났으나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야당의 협조 없이 단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형국이 되었지만, 협조를 구하는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렵사리 갖게 된 야당 대표와의 자리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했는지 쉽게 알 만한 것이었다. 총선 뒤 ‘이제는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소리가 나왔던 것도, 이후 국면에 대한 당연한 상황 인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야당 대표와의 첫 만남에서 역시나 대통령실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고 국면 전환을 위한 어떠한 정치도 없었다.



대통령의 발언 비율이 70인지 85였는지 모르지만, 후속 보도에 의하면 대부분은 ‘이태원 특별법’이건 ‘채 상병 특검’이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열정적 변호로 가득했던 것 같다. 새삼스럽지 않다. 현 정부의 거부권 행사만 9번일 정도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 데는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는가. 특히, 그중에는 간호법과 같이 당신들이 필요를 인정하고 이제는 국민의힘이 공동발의까지 하는 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 행사에 거리낌이 없었다. 또한 거부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직면한 여러 시급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 정부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하다. 교육, 연금, 노동개혁이라는 현 정부가 제시한 3대 과제는 물론이고, 지역경제의 붕괴, 소멸점을 향해가고 있는 출산율, 시한이 다가오고 있는 ‘알이100’(RE100) 등에 대해서 해답을 찾기 위한 어떤 ‘진지한’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어렵게 집권을 했으면서도 왜 번듯한 성과 하나 없이 끝내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도 현 정부의 선택이자 능력일 것이다.



다만,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는 이 정부의 반사적 반응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궁금했다. 어쩌면 김치찌개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실은 집권 2주기를 맞아 기자회견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통령과 언론인의 ‘김치찌개 환담’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김치찌개가 기자들의 취향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반복되는 대통령의 김치찌개 레토릭에서 어느 순간부터 언론에 대한 환대가 아니라 그저 쉽게 때울 수 있다는 간편함만 느껴진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국정 내용을 보고하고 앞으로 비전을 직접 설명하는 것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책임이고, 국민을 대신해서 이를 묻는 언론에 답하는 것은 회피할 수 없는 국정의 일부다. 그런데 김치찌개는 이 모든 공식적 책임으로서의 진지함과 껄끄러움은 사라져버리고 사적 관계로서의 용이함만을 담고자 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국회가 윤 대통령에겐 회피하고자 하는 공식적 책임과 엄중함의 상징이라면, 김치찌개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끔 인간에게 내어주기도 하는 ‘신의 음식’ 암브로시아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영수회담에서 대통령은 ‘언론 장악의 방법을 잘 알고 있지만 관여하지 않고 있고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설마 보고받지 못해서 나온 발언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문화방송과 같은 특정 언론사에 행정제재를 쏟아내고 있고, 대통령 가족 보도에 대해서는 더욱 심의제재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도 보고되었을 것이다. 심의 결정이 행정법원에서 번번이 뒤집혀 효력정지 되는 상황이라는 점 또한 보고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관여하지 않고 있고 관여하지 않을 것’이란 말은 심의기관들의 반헌법적 운영을 격렬하게 우두커니 지켜보고만 있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누군가 칼럼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정부가 언론을 김치찌개나 주면 군소리 없을 대상 정도로 여기는 모습은 서글프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김치찌개 얘기를 하며 자신에 대한 조롱인 줄도 모르고 시시덕거리는 몇몇 언론의 모습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다. 그래도 그것이 신이 내준 암브로시아라고 생각한다면 누가 말리겠는가? 다만, 언론들이여, 김치찌개 먹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들이 먹는 게 김치찌개인지 아니면 ‘물 먹고 있는 건지’ 정도는 아시면서 드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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