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7 (금)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5·18성범죄 상당수 피해자 사망·치매로 진실규명 불가능…보상 심의 조사 허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44년, 가슴에 묻은 진실③]

지난 7차례 보상 심의서 성범죄 보상 심의 대상 아니었지만 최소 26명 피해 언급

5·18조사위 살핀 52건 중 사망·치매·정신분열 등 미규명·불가능 사례만 10건

前 5·18보상심의 관계자 "과거 미흡한 부분 다음 조사에 반영하자는 안일한 인식 있어"

5·18조사위 "일부 피해자는 유의미한 진술 불가능해 조사 멈출 수밖에"

편집자 주
올해로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44년. 5·18 당시 계엄군 등이 저지른 성범죄가 조금씩 규명되고 있지만 일부 피해자가 사망하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입증이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광주CBS 취재를 통해 일부 5·18 성범죄가 출산이나 유산 등 2차 피해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또 남성들 역시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많은 5·18 성범죄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거나 인정받지 못한 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숨기며 지내고 있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알린 뒤 인정받은 극히 일부만 트라우마 관련 치료를 받았을 뿐이다. 광주CBS는 성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나 그들의 자료를 직접 듣고 보며 5·18 성범죄의 진실에 더 다가가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5·18 민주화운동 성범죄 피해 관련 첫 보상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5·18 성범죄 피해와 조사, 보상 등 전반에 대해 짚어본다.
노컷뉴스

5·18 당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하고 있는 계엄군. 5·18기념재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글 싣는 순서
①5·18 당시 성범죄로 임신→출산→입양?
②44년 만에 고백 5·18 성범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 겪어"
③5·18성범죄 상당수 피해자 사망·치매로 진실규명 불가능…보상 심의 조사 허점
(계속)

지난 7차에 걸친 5·18보상심의 과정에서 5·18성범죄 피해를 언급한 이들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상당수가 사망하거나 치매에 걸려 사실상 억울함을 풀지 못하게 됐다. 광주CBS의 5·18 44년 연속기획보도. 5·18민주화운동 44년, 가슴에 묻은 진실. 2일은 세 번째 순서로 5·18성범죄에 대한 조사의 허점으로 한계에 부딪힌 진실 규명에 대해 보도한다.

2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5·18조사위') 등에 따르면 5·18조사위가 성범죄 피해 의혹 사건으로 규정한 52건 가운데 피해자의 사망이나 치매 등 정신병 발병으로 미규명·불가능한 사례는 10건이었다.

5·18조사위 보고서가 5·18성범죄에 대한 조사 등이 누적된 가장 최근 성과이자 마지막 조사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적지 않다.

앞서 5·18보상심의 등에 참여했던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미규명 사례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씨는 앞서 정신질환을 호소한 대부분의 5·18피해자를 직접 찾아가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여성 피해자 다수가 성폭행으로 인한 후천적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며 "하지만 정신질환으로 판정을 받은 상태여서 진술에 대한 입증을 추가로 진행하거나 따로 피해 보상을 할 방안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성범죄 피해를 언급한 사람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최소 2건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씨는 "당시 정신병원에 있었던 일부 피해자가 숨지면서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며 "가정이 있는 상황에서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면 말하기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씨는 지난 5·18성범죄 조사 과정에서 가장 미흡했던 점으로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꼽았다. 정씨는 "정확하게 모든 내용을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조사 방식은 더 세부적으로 이뤄졌을 것"이라며 "미흡한 부분은 다음에 조사하면 된다고 안일한 인식 속에 넘어가는 일도 반복돼 답답했다"라고 설명했다.

제1~7차 보상 심의서 성폭력 고백 최소 '26건'…조사·방식 등 미흡

이 같은 상황에서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44년 지났지만 5·18 당시 발생한 성범죄에 대한 보상은 아직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5·18보상법 개정을 토대로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제8차 피해 보상 신청 대상에 성폭력이 포함돼 26건이 접수됐을 뿐이다.

성폭력이 5·18보상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해서 피해자들이 성범죄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5·18조사위는 지난 1~7차 피해 보상 심의자료에서 성폭력 피해 사례 26건을 추출했다. 최소 26명이 보상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성범죄 피해 사실을 언급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지난 7번의 보상 심의에서 성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성범죄의 특성상 가해자(가해자들)와 피해자만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5·18성범죄 피해자의 경우 준전시 상황에 준하는 환경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당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의료 기록 등 피해 사실을 입증하거나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상당수 피해자가 참고인 진술 등을 근거로 피해 사실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보상 심의 과정에서 5·18성범죄 피해를 주장한 피해자들의 경우 복수의 참고인이나 보증인을 내세웠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위해서는 성범죄 피해 사실을 타인에게 알리고 일부 피해자는 참고인이 조사에 응해주도록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현재의 성범죄 과정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조사가 이뤄진 셈이다.

노컷뉴스

1998년 3차 보상 당시 ㄱ씨의 현지 확인 조사서의 참고인 진술 내용. 독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피해자와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던 참고인이 참고인 조사를 받기도 했고 조사 문항도 몇 문항밖에 되지 않는 데다 구체적이지 않았다. 참고인들의 답변이 구체성이 떨어지거나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명확한 근거 없이 부인하는 상황이 발생한 이유다. 결과적으로 사건과 관련성이 낮은 참고인의 진술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게 하거나 규명을 더디게 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신상숙 연구원은 "5·18 당시 발생한 성폭력은 다른 목격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이루어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피해자뿐인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 교수는 "당시 성폭력 피해를 조사하는 단계에서 상담이나 피해자 지원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아 의료적 진단으로 증빙할 수 없는 피해는 논의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8차 보상 대상에 성폭력 포함됐지만…조사·보상 한계 여전 '우려'


노컷뉴스

1998년 3차 보상 당시 ㄴ씨의 현지 확인 조사서의 참고인 진술 내용. 독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이뤄진 5·18성범죄 조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조사위 보고서의 한계도 분명하다. 무엇보다 5·18성폭력 공동조사단 등을 통해 추려진 피해 의혹 사건 52건 중 19건에 대한 조사만 이뤄졌으며 이 중 16건만 규명했다. 제8차 보상 신청을 신청한 사례 중 최대 11건이 보고서에 담기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아쉬움으로 지목된다.

5·18조사위는 일부 피해자는 치매 등으로 기억을 명확하게 하지 못해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5·18조사위 관계자는 "치매를 있는 피해자 가운데 조사 과정에서 유의미한 진술을 받을 수 없고, 오랜 기간이 흘러 과거 의료 기록도 남지 않아 결국 조사를 멈춘 사례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과거 행정안전부의 5·18피해자 보상 판정 기준에 성범죄에 대한 별도의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일부 5·18성범죄 피해자가 상이 등으로 피해 보상을 받은 상황에서 성폭력의 5·18보상법 포함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기준과 조사 방식 등이 마련돼야 한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 이메일 : jebo@cbs.co.kr
  • 카카오톡 : @노컷뉴스
  • 사이트 : https://url.kr/b71afn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