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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野 압박에 밀린 김진표 '신속 안건' 상정… 일사천리 가결 ['채 상병 특검법' 본회의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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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野 단독처리 안팎

野 ‘여야 합의 고수’ 김 의장 거센 비난

“임기종료 후 민주 복당 불허” 주장도

與 “의장이 입법폭주 가담 유감” 반발

전원 퇴장 속 김웅만 남아서 ‘찬성표’

정진석 "진상규명보다 정치적 의도"

또 대치 국회… 고준위 폐기법 등 난망

“이 안건은 21대 국회 임기 내 어떤 절차를 거치든지 마무리돼야 하기 때문에 여러 고려를 한 끝에 오늘 의사일정 변경동의의 건을 표결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세계일보

與, 野 단독표결 규탄 윤재옥 원내대표(앞줄 왼쪽 네 번째)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채 상병 특검법’을 강행 처리한 야당을 규탄하고 있다. 윤 원내대표는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제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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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국회의장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같이 선언하자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 항의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당이 그간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았던 ‘채 상병 특검법’ 상정·표결 처리를 확정지은 순간이었다. 김 의장은 “21대 국회 임기가 5월29일까지이기에 60일 이후를 기다릴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라며 이 법안 상정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60일’은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으로 본회의 부의된 경우 자동 상정에 소요되는 기간이다. 채 상병 특검법은 4월3일 부의됐다.

김 의장의 선언 직후 민주당 주도로 채 상병 특검법 상정·표결·가결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웅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 의장 선언 직후 본회의장을 빠져나와 표결에 불참했다. 그간 채 상병 특검에 찬성 의사를 밝혀온 김 의원은 특검법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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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국회의장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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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평행선 끝에 김진표의 ‘결단’

김 의장은 그간 여야 합의 없이는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이 어렵단 뜻을 고수해 오던 터였다. 이날 본회의 2시간여 전 김 의장 주재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도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양당 입장이 엇갈렸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회동 종료 직후 기자들을 만나 채 상병 특검법 상정 등에 합의하지 못했다고 전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권한을 활용해서 핵심 쟁점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저희는 의사 일정에 합의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의장의 채 상병 특검법 상정 결정은 결국 야권의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 내에서는 김 의장 임기 종료 후 민주당 복당을 불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본회의 직전 진보당 강성희 의원도 의장실을 찾아 상정을 촉구했고, 그 과정에서 김 의장이 “알아들었다”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 산회 후 규탄대회를 열고 김 의장과 민주당에 대해 “반민주적, 반의회적, 입법폭주”라고 비판했다. 윤 원내대표는 대회 종료 후 기자들을 만나 “(김 의장이) 여야 간 법안 내용에 대해 숙의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오늘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본회의장에서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가담하고 의사일정을 독단적으로 운영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홍 원내대표는 이런 비판에 대해 “국회 내 협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국민의 시선, 국민의 원칙, 국민의 기준에 따라 국회가 일해야 한다”며 “오늘 국민의 원칙이란 취지에 따라 법안을 처리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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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보이콧” ‘채 상병 특검법’이 2일 국회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을 거부하며 퇴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통과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제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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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즉각 거부권 행사 시사

이날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 강행 처리에 대통령실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회견을 열고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임에도 야당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는 것은 진상 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 “협치 첫장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민주당이 입법 폭주를 강행한 것은 여야가 힘을 합쳐 민생을 챙기라는 총선 민의와 국민들의 준엄한 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실장은 “사고의 원인과 과정 조사, 그리고 책임자 처벌은 당연하다”며 “따라서 법률에 보장된 대로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특별검사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오늘 일방 처리된 특검법이 대한민국의 혼란에 빠뜨리는 사례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고 했다.

그동안 대통령실이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야당이 강행 처리한 다른 쟁점 법안에도 대부분 거부권 행사 전까진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신중히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점을 감안하면 이날 회견은 사실상 거부권 예고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은 그만큼 이번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와 협치 국면에서 야당의 일방처리에 대한 문제 의식이 큰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후 15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지난 2년간 9개 법안에 대해 5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반면 민주당 홍 원내대표는 대통령실의 거부권 행사 시사에 MBC라디오에 나와 “전국민적인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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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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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형성된 협치 정국은 급속히 얼어붙는 모양새다. 이태원참사특별법 합의로 협치의 물꼬를 튼 지 단 하루 만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채 상병 특검법 일방 처리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21대 국회 남은 임기 중 모든 의사일정에 협조하지 않기로 했다. 덩달아 여야가 거의 의견이 근접한 것으로 전해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의 21대 국회 임기 내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여야가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연금개혁 또한 합의가 더욱 난망해진 모습이다. 김 의장은 이날 본회의에서 “무엇보다 연금개혁을 이뤄내야 하는 역사적 책임이 21대 국회에 있다”며 “이번 임기 내 연금개혁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현행 연금 재정 건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국회가 무려 17년간 미루다 또다시 미룬다는 국민의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승환·조병욱·김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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