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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의대 증원 막판 변수된 법원의 '근거 요구'... 정부 '증원 중단될라'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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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원 결정 과정 회의록 등 요구
각하 릴레이와 다른 항고심 판단에
교육부 등 부처 긴장감 속 자료 준비
한국일보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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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 속에 2일 정부가 각 대학의 입시 전형계획을 취합해 내년도 의대 신입생 증원 규모(최소 1,489명·최대 1,509명)를 발표했음에도, 의대 증원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의료계가 제기한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사건을 맡은 법원이 정부에 증원 결정 근거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이달 중순으로 결정을 미뤘기 때문이다.

법원 판결 여하에 따라 의대 증원 규모, 심지어는 증원 여부까지 갈릴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 것.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법원의 '정책 검증'이 바람직한지를 두고 전망과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27년 만에 이뤄질 의대 증원 정책의 성패도 당분간 안갯속에 머물게 됐다.

2일 의료계 소송 대리인 이병철 변호사와 교육부·보건복지부 측 설명을 종합하면,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 구회근)는 지난달 30일 의대 교수와 의대생 등이 낸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정부가 내년부터 5년간 매년 의대생 2,000명 증원을 추진하는 근거와 정원 배분 절차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이달 10일까지 제출해달라고 정부에 주문했다. 아울러 재판부 결정이 있기 전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대학별 전형계획 변경안을 승인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복지부는 증원의 핵심 근거로 삼은 세 가지 연구보고서(서울대 홍윤철 교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를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법원에 제출된 정부 측 답변서에는 세 보고서의 요약본만 포함됐다. 의료계 일각에서 "재판부가 보고서 (원문)을 다 보고서 '과학적 근거가 없으니 다른 걸 내달라'고 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아직 보고서가 (원문 형태로) 제출되지 않았다. 오해 소지를 낳는 주장"이라 반박했다.

정부는 또 증원이 논의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록, 대학별 의대 정원 수요조사 후 진행된 각 대학 교육 여건(인적·물적) 현장실사 자료 등을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의대 정원 배분을 위해 구성한 배정위원회 회의록도 제출 대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배정위는 올해 3월 정원 배분 작업을 진행했는데, 의료계는 배정위가 그달 15일 첫 회의 후 5일 만에 배분 결과를 발표한 점을 들어 "졸속 결정"이라고 주장해왔다.

관련 부처 "자칫 증원 올스톱 될라" 긴장감


복지부와 교육부는 이들 자료를 법원에 제출할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날 "재판부가 납득할 수 있도록 복지부와 함께 기한 내 요청받은 자료를 내려고 성실히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의대 증원 정책을 되돌리려는 의료계의 줄소송에 대해 재판부의 각하(소 청구 요건·자격 미비로 본안 심리 없이 종결) 결정이 줄잇던 것과 달리, 이번 항고심 재판부는 증원 산출 근거 자료를 대거 요구하면서 소관 부처의 긴장감은 고조된 분위기다. 한 교육부 관계자는 "자칫 (증원이) '올스톱' 될 수 있으니 편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달 13~18일 중 결론을 내겠다는 재판부가 인용 판단을 한다면 그 내용에 따라 이달 말 의대들의 내년 모집인원 확정 공고를 앞두고 의대 증원에 중대한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이날 법원 결정에 관한 질문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2,000명 증원이 정지되고 기존 정원으로 입학전형을 하는 것"이라며 "대학은 물론 수험생과 부모도 본안소송 판단 전까지 혼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재판부가 "모든 행정행위는 사법 통제를 받아야 한다"며 소송 당사자 적격을 넓게 본 것이나, 정책 결정 근거를 검증하려는 듯이 언급한 것을 두고 '월권'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의료계에선 이번 항고심에서 신청인(의대교수 등) 측이 유리해진 거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법조계에선 증원 근거를 제시하라는 재판부 주문을 두고 "정책 결정 근거를 한번 보겠다는 걸 넘어 특정 결론을 내리려는 뜻으로 보기는 아직 어렵다"고 했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법원 결정까지 증원 확정을 말아달라는 재판부 요구는 강제력은 없다"며 "다만 증원했다가 집행정지가 되면 곤란해지니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의료계는 내심 자료 확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한 사립대 의대 교수는 "정부 정책을 완전히 무력화할 사법부 판단이 나오긴 어려울 거라 본다"면서 "과학적 근거 없이 날림 결정된 정황을 자료로 확인하는 데 무게를 둔다"고 했다. 정부가 거부해온 증원 결정 자료 확인을 통해 여론전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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