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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박정희가 죽고서야 아버지도 눈을 감았다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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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순화동천에서 열린 조성기 작가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광시곡’ 출간 기자간담회. 한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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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광시곡
조성기 지음 l 한길사 l 1만7000원



“대낮에 술 마시고/ 우리 아버지/ 흐린 하늘/ 해를 치어다본다// 해를 술잔으로 삼아/ 하늘을 다 따라 마시고 싶다// 난층운/ 권적운/ 구름이 층층이 쌓여 있듯/ 우리 아버지/ 마음 골짜기마다/ 역사가 토해놓은 구토물 흥건하고// 그 악취 견디느라/ 대낮부터 술 마시고/ 흐린 하늘/ 해를 치어다본다”



한겨레

소설가가 지은 이 시에 소설가는 시작 노트를 첨부한다. “대낮에 술을 마신 어느 날, 5·16 쿠데타 직후 용공분자 혐의로 잡혀갔던 아버지를 기리며. 1995. 7. 10.”



소설가의 아버지는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암살 두달여 뒤 눈을 감는다. 장편 ‘아버지의 광시곡’은 이 시의 행과 행, 연과 연 사이를 모두 들추고 복원한 시대 인물사이자 사부곡이다. 다만 힘 빼고 웹소설 쓰듯 “술술” 썼으니, 아버지의 원한은 아들의 그리움으로, 분노는 넉살로 갈마쥐고 뒤섞인다. 이런 부류라면 작가 정지아(59)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빼놓을 수 없는데, 바통을 원로 작가 조성기(73)가 이은 셈이라 더 눈길이 간다. 그의 직전 작품이 박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의 사형일까지 “김재규의 생애와 내면을 통관해” “김재규 개인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 박정희를 죽인 셈”임을 문학적으로 증명해 보이고자 했던 정통 역사소설(‘1980년 5월24일’)인 때문이거니와 전작들에 조각조각 흩어놓았던 아버지의 삶을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합장하려는 절실함이 고스란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광시곡’은 작가 말마따나 “소설 양식을 빌린 실제 자서전”이다.



1920년대 초 태어난 주인공은 4·19 혁명 직후 부산지부 초등학교 교원노조 위원장을 맡았다가 박정희 군부 들어 용공분자로 내몰린다. 1952년부터 20년가량 고시에 응시했던 고집과 미련, 인절미를 몰래 가져온 가족들 외면한 채 노조 합법화 단식투쟁을 벌이던 결기, 복직을 동료에게 양보하는 배포가 모두 그의 성품이었다. 하지만 “검은 점퍼의 사나이들”에게 붙들려 육군형무소, 영도경찰서, 서대문형무소를 전전하고, 실직자 되어 삶을 전전하면서 가족의 운명도 위태로워진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작가는 아버지에게 채워진 수갑을 두고 “우리 집과 우리나라의 모가지를 옭아매는 ‘칼’처럼 여겨졌다”고 쓴다. 즈음해 그가 쓴 수박에 관한 일기를 6학년 담임이 보고 운다.



소설은 페이스북에 46일간 하루 20매 분량으로 꼬박 연재되었다. 각 장이 완결성을 지닌다. 가령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작가가 사법시험도 문학도 포기한 채 기독교에 심취하자 차라리 그럼 문학이라도 하라고 눈물로 호소했다는 아버지의 사연이 두 번째 꼭지인데, 당시 아버지에게 조언하던 친구의 딸을 작가가 전도하면서 그가 도로 아버지에게 상담을 구해오더란 이야기로 끝을 맺으니, 이 소설의 온도를 알 만하고 어느 장을 먼저 펼치든 그 정취가 바뀌지 않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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