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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유수경의 무비시크릿] 세상에 '마석도' 같은 형사 한 명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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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시리즈 이끄는 주인공 마석도
강펀치로 범죄자 처단하는 카타르시스
악인이 강력히 처벌받는 세상을 꿈꾸며
한국일보

배우 마동석이 마석도 형사로 활약 중이다. '범죄도시4'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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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흉흉한 소식들이 전해진다. 뉴스를 접할 때마다 답답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때때로 사건보다 대중을 공분케 하는 건 죄에 비해 약한 처벌이 내려지는 순간이다. 유가족이나 피해자들에게 두 번 상처를 입히는 일이기도 하다.

10여 년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충격적인 한 사건을 접했다. 태국 파타야에서 앞날이 창창한 20대 프로그래머 청년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한 고급 리조트에서 발견된 그를 살해한 건 불법 도박 업체를 운영하던 사장이었고, 조직폭력배와 연관이 있었다. 이 청년은 "월 600만 원에 고급 숙박 시설을 제공한다"는 구인글을 보고 태국으로 향하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맡겨진 일은 불법 도박 사이트 설계와 운영이었고, 프로그램 개발이 지연될 때마다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생전에 찍힌 CCTV 영상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참혹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두 눈이 선글라스를 낀 것처럼 검게 멍든 그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다뤘지만 기자 개인에게 가장 아프게 와닿았던 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비슷한 또래의 남동생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근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4'를 보면서 그날의 눈물이 다시 떠올랐다. 이 작품은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일당과 그 돈을 불법 환전하는 코인 사이트를 운영하는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배경이 태국 파타야가 아닌 필리핀으로 설정됐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이 그 사건과 너무도 닮아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실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 작업이 진행된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많은 부분들이 각색되지만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영감을 얻기에 스토리가 허무맹랑하지 않다. 총 4편의 영화가 개봉됐는데, 2편과 3편은 천만 관객을 달성했고 현재 상영 중인 4편은 9일 만에 600만을 넘기고 천만 고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범죄도시'는 매번 다른 배우들을 빌런으로 캐스팅해왔다. 1편의 장첸(윤계상), 2편의 강해상(손석구), 3편의 주성철(이준혁)에 이어 4편에선 백창기(김무열)가 빌런으로 등장한다. '다음 편에선 누가 빌런으로 나올까' 하는 관객들의 높은 기대감 역시 '범죄도시' 흥행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중이 '범죄도시'에 열광하는 이유는 큰 덩치로 범죄자를 때려잡는 마석도 형사(마동석)가 전하는 카타르시스 덕분이다. 1, 2편에서 서울금천경찰서 강력1반 부반장이었던 마석도는 3, 4편에선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1계 1팀 부팀장이 됐다. 무기도 필요없이 맨몸으로 싸우는 마석도는 탈인간급 파워를 지닌 '범죄도시' 세계관의 최강자다. 그가 악을 처단할 때 전해지는 쾌감이 강력하다.
한국일보

마석도(마동석)가 범죄자를 잡는 모습. '범죄도시4'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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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서도 마석도는 마약 유통 조직을 일망타진하던 중 도망치려는 조직원의 스쿠터를 한 손으로 잡아 멈추게 하는 어마어마한 힘을 뽐낸다. 철창을 힘으로 흔들어 통째로 뜯어내거나 주먹 한 방으로 범죄자를 제압하는 비범한 신체 능력이 놀라움을 선사한다. 때로는 단순무식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현장이든 겁 없이 돌진하고 범죄자를 알아보는 남다른 촉까지 갖춘 그는 형사로서의 자질이 차고 넘친다.

물론 용의자를 '진실의 방'으로 불러 가혹행위를 통해 자백을 받아내거나, 관할 내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불법 행위들은 적당히 눈감아주는 모습은 청렴하지 않다. 그러나 베테랑 형사가 나름대로 균형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지역 주민들과의 끈끈한 유대감을 과시하고 적당한 허당기와 재치를 지닌 마 형사는 강력반 형사들과도 형제처럼 지내며 인간미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는 죄질이 중한 이들을 다룰 때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공권력을 우습게 보는 범죄자들을 거칠게 다루며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참교육을 시전한다. 마 형사가 이렇게 직접 범죄자들을 엄하게 처단하는 데엔 과거의 숱한 경험과 아픔이 배경으로 작용했을 터다.

1편에서 장첸이 "혼자야?(혼자 왔냐는 의미)"라고 물을 때 "어, 아직 싱글이야"라고 답한 것이 두고두고 회자되며 재미를 선사했지만, 마석도 형사의 돌직구 대사는 시리즈 전 편에 걸쳐 계속 등장한다. "휴지를 이렇게 많이 쓰면 어떡하냐? 세금도 안 내는 새끼가" "이유가 어딨어, 사람 죽인 새끼 잡는데? 나쁜 놈은 그냥 잡는 거야" "넌 법대로 하면 안 되겠다. 진짜로 좀 맞아야겠다" 등 법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피해자의 울분까지 마 형사가 대신 풀어주려는 의지가 드러난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비슷한 틀에서 사건과 범죄자만 바뀌는 단순한 구조다. 그럼에도 꾸준히 관객몰이를 할 수 있는 비결은 진화하는 액션과 유머 덕도 있겠지만, 보다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은 관객들의 소망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라도 악인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싶다.

마석도 형사가 건재하는 이상 '범죄도시'는 계속될 전망이다. 제작과 기획, 주연을 맡은 마동석은 이미 8편까지 준비하고 있는 상태라고 귀띔했다. '현실 히어로'라 불리는 마석도 형사가 다음 작품에선 또 어떤 활약을 보여줄까. 5편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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