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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오비추어리] '맥아더 장군 통역관' 이종연 변호사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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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장진호전투 등 참전…美 대통령 훈장도 받아

4일 오전 10시 애틀랜타 잔스크릭 한인교회서 장례예배

아주경제

지난 1월말 미국 애틀란타 고려대교우회 행사때 승명호 고려대 교우회장(오른쪽)과 건강한 모습으로 담소하는 이종연변호사.(사진=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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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5일. 6·25전쟁의 전세를 단숨에 뒤집은 ‘인천상륙작전’. 작전을 진두지휘한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의 통역관으로 같은 배를 타고 인천에 상륙했던 군인.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겨울 전투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영웅.

여러 공적으로 미국에서 트루먼 대통령 훈장까지 수여받은 이종연 변호사가 지난 1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1928년 11월 23일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로 이사해 1948년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서 공부했다. 재학 중이던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피란 행렬에 몸을 맡겼다.

피란길에서 미8군이 통역관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은 고인은 자원 입대했다. 고인은 당시 중위 계급으로 미 제1임시해병여단 5연대 수송중대에 소속돼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참가했다. 이후 미 제1해병사단에 배속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다.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의 전세를 반전시킨 작전으로 평가된다. 전쟁 발발 이후 연패하며 석 달도 안돼 낙동강까지 후퇴한 뒤 패전 위기까지 몰렸던 유엔군은 맥아더 사령관의 지휘 아래 북한군의 허를 찌르는 과감한 작전을 수행해 성공시켰다. 현장에서 고인은 맥아더 사령관의 지근거리에서 통역을 맡았다.

고인은 6·25전쟁 전체의 물줄기를 가르는 분수령 중 하나인 장진호전투에서도 활약했다. 장진호전투는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1일까지 함경남도 장진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유엔군 3만명과 중공군 12만명이 전투를 벌여 유엔군 약 1만7000명, 중공군 약 4만8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전투로 중공군의 남진이 지연되면서 주민 10만여명이 흥남부두를 통해 남한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공적을 인정받아 고인은 1952년 4월 미국 대통령이 참전용사에게 수여하는 ‘리전 오브 메리트’를 수상했다. 지난해 베테랑스데이에는 전미보병협회로부터 성 모리스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 시기 전후 진해 육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했던 고인은 1954년 대위로 전역한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예일대학교 학부와 로스쿨을 졸업했다. 이어 뉴욕주와 버지니아주 및 워싱턴DC 변호사로 활동했다.

1967년부터 1987년까지는 연방 국방부 및 연방 법무부 선임 변호사로 활동했다. 서울대와 고려대 및 사법연수원 등에서 미국법을 강의하기도 했다. 고인은 1999년 인천공항 건설 공사 상임고문을 지냈으며 미국 정부 출간 한국법 및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고, 마틴텔-허벨 미 변호사 인명사전에도 기재됐다. 고인은 장진호전투 참가 생존자 모임(The Chosin Few) 창립 멤버이자 이사, 법률고문, 회계 등으로 봉사하기도 했다.

고인의 장례예배는 오는 4일 오전 10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위치한 잔스크릭 한인교회에서 열린다.

아주경제=조재형 기자 grind@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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