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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특파원 리포트] ‘대미 로비’ 옥석 가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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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6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의회교류센터에서 현판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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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달 16일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했다. 총선을 마친 여야 의원 9명이 동행했는데 며칠 뒤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된 정진석 의원, 22대 국회 최다선이자 국무총리 후보로도 거론되는 주호영 의원, 5선 고지를 밟은 안규백·윤호중 의원 등 중량감이 상당한 구성이었다. 그런데 김 의장 카운터 파트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을 비롯한 미 정계 유력 인사들과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 처리를 목전에 둔 공화당과 민주당 지도부가 외부 일정에 틈을 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김 의장이 이번에 미국을 방문한 주요 목적은 대미 의원 외교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할 한미의회교류센터(KIPEC)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축하 리셉션이 의회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있는 한 로펌에서 열렸다. 하원 외교위원회 인도·태평양 소위원장인 한국계 영 김 의원을 비롯한 10여 명의 전현직 의원들이 얼굴을 비쳤다. 상원의원은 한 명도 없었고, 나머지 한국계 의원 3명도 불참했다. 그나마 제일 친숙한 얼굴은 하원 외교위원장 출신인 지한파 에드 로이스 전 의원이었는데, 그는 현재 우리 대사관이 계약을 맺은 한 로펌의 로비스트로 인생 2막을 보내고 있다.

백악관 지척에 있는 K스트리트엔 로펌, 컨설팅 회사 등 내로라하는 로비 회사들이 밀집해있다. 이 거리를 오갈 때마다 미국, 그리고 미국인이라서 갖는 ‘특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워싱턴이 세계 정치의 중심이고, 여기에 모든 사람과 정보가 모인다는 이유로 각국에서 몰려와 어떻게든 줄을 대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대목을 맞았는데, 실력자와 옷깃이라도 스친 인연이 있는 전관들은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 됐다고 한다. 한국도 여기서 ‘큰손’이다. 삼성·현대차·LG 같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 국회, 각종 협회 등 민관 할 것 없이 줄 대기를 하겠다며 문을 두들기고 있다. 로이터는 최근 “트럼프가 궁금한 한국인들로 로비 회사들이 북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선거 열기가 고조되면서 불확실성이 정점을 찍을 앞으로 6개월이 우리 정부와 기업에 특히 중요한 시간이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 대표가 미국을 방문해 하원 건물 안에서 리셉션을 열었는데 초청 규모에 비해 참석자 숫자가 많이 모자랐다고 한다. “한국 기업이 우리 지역에 투자해달라” “동맹은 철통같다”고 외치던 사람들이 막상 필요로 할 때는 부재 중인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대미 로비 전략을 한 번쯤 복기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이나 일본처럼 곳간이 넉넉해 여기저기 찔러볼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만인이 바이든·트럼프 측근을 자처하는 이 시기에 옥석을 가리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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