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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부부가 집 가서 보면 되지"…인천공항의 '부부 강제발령' 논란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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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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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리와 B 사원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내 커플입니다. 전산 직렬로 입사해 같은 팀에서 함께 일했고, 2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공사 정기 인사일인 1월 26일을 하루 앞둔 25일. 문득 A 대리와 B 사원은 부부가 한 팀에 있어도 괜찮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본인들의 팀장에게 찾아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잠시 뒤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 돌아왔습니다. 인사팀이 둘을 떨어뜨려 놓는 강제 발령을 내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사내 부부는 같은 팀에서 근무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인사팀은 부부가 팀을 떠나 같은 '처'에 있어도 안 된다는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편제는 본부-처-팀 순으로 이뤄지는데, 팀을 넘어 처 단위까지 달라야 한다고 한 겁니다. 마침 해당 팀에서 일한 지 4년째였던 아내인 B 사원이 팀을 떠나는 것으로 정리가 됩니다. 그렇게 B 사원은 인사 발령 직전 희망 부서 3곳을 적어서 제출했고, 공사의 사이버 보안을 담당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30년 다닐 회사인데…아내가 저 때문에 원하는 일을 못합니다"



부부는 강제 발령 조치가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부부가 같은 처에서 일해선 안된다는 규정이나 기준, 관행이 기존엔 없었다는 것입니다. 공사 노조에 따르면 공사 내 사내 부부는 61쌍이 있는데, 이중 같은 처에 몸담고 있는 부부는 8쌍, 그중에도 같은 팀에서 일하는 부부는 6쌍에 달합니다.

부부가 부당함을 알리고 나선 데에는 부부가 모두 전산 직렬로 입사한 이유도 큽니다. 전산 직렬은 공사의 운영 및 경영과 연관된 업무가 많다보니 경영본부 산하에 관련 팀이 많습니다. 노조가 조사한 결과, 전산직렬 직원 70% 이상이 경영본부 특정 처 내에서 근무 중입니다. 인사팀 기준대로 부부가 같은 처에서 근무하지 못한다면, 부부 중 한 명만 해당 처에 있어도 다른 한 명은 해당 처 관련 업무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B 사원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해도, 전산 직렬 70% 이상이 몸담고 있는 해당 처 바깥에서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만일 B 사원이 해당 처 내 팀에 들어가려면, A 대리가 그 처를 떠나야 하는 겁니다.

A 대리는 "앞으로 이 회사를 30년 다닐 거고, 아내(B 사원)도 본인이 원하는 분야가 있어서 입사를 했을 건데, 제가 여기 있는 이유만으로 인사 이동이 안 되는 거지 않냐"며 "그마저도 인사팀 주관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라면 없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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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언급한 적 없다"했지만…통화 내용은 달랐다



B 사원 전보 조치에 대해 공사는 ▲B 사원이 정기 전보 대상자였고 ▲팀 내에서 이뤄지는 상호평가에서 발생하는 이해상충 등의 문제를 고려한 조치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B 사원이 새로이 간 곳도 공사 내에서 전산 직렬 직원들에게 인기 있는 부서라는 설명입니다.

관련 조치를 내린 인사팀 관계자는 취재진에 "동일 직무에서 2년 이상 근무하면 전보를 하게끔 되어있다"며 "두 사람에게 결혼 관련 문제는 언급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인사팀 관계자도 "결혼이 이유가 아니라, 해당 여성이 팀에서 근무를 오래 한 전보 대상자였고, 본인의 희망 부서를 받아 인사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입수한 B 사원 전보 조치 직전 인사팀 관계자와 노조 직원과의 통화 내용은 달랐습니다. 통화 내용 중 인사팀 관계자의 주요 발언입니다.
2024년 1월 25일 / 인사팀 관계자 - 노조 직원 간 통화
노조 직원: "부부가 떨어져서 근무해야 하는 법이 있는 겁니까?"
인사팀 관계자: "법은 없지만 인사 관리 원칙인 거죠. 그런 걸 규칙에 넣는 회사가 어디 있어요, 세상에."
노조 직원: "어쨌든 너무 급작스럽고 하니까 시간을 더 달라는 거 같아요."
인사팀 관계자: "부부가 집에 가서 보면 되지 꼭 같이 있어야 되나요?"
노조 직원: "보고 싶다는 게 아니라, 업무 연속성 때문이잖아요."
인사팀 관계자: "고민해 볼게요. 그런데 원칙은 부부의 경우 같은 처에 두지 않는다는 걸 명확히 하겠습니다."


이 인사팀 관계자는 내부 규정에 쓰여 있진 않지만, 부부가 다른 처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뜻을 명확히 합니다. B 사원 이동조치의 큰 이유가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결혼이 직장에서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공사 노조는 지난달 2일 남녀 성별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6조와 노동자의 배치에서 남녀를 차별해선 안 된다는 남녀고용평등법 10조 등 위반 혐의로 이학재 공사 사장을 고소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다른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임득균 공인노무사는 "근로기준법 제23조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전직이나 전보 등 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이 경우 '정당함'이 부족해 보인다"라고 말합니다. 임 노무사는 "회사 운영상 필요가 아닌 그저 사내 부부라는 이유로 다른 부서로 발령 낸 점은 부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부부가 같은 회사, 그것도 같은 팀에 있다 보면 여러 불편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상호 평가나 연차 사용 등에서도 부서 운영의 어려움과 다른 팀원들의 불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사팀 관계자의 말처럼 많은 기업과 기관 등에는 부부를 다른 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관행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신혼부부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결혼을 이유로 명문화 된 규정도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반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인사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 회사를 30년 다닐 거다"라고 말하는 이들 사내 부부는 결혼이 부서를 선택하고 지원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했습니다.

배성재 기자 ship@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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