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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헬스 프리즘] 그럴거면 웃어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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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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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사회 속 일터에서 일상적으로 감정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간호사, 민원 창구 공무원, 판매원, 콜센터 직원들이 대표적이지만, 사실 거의 모든 직업, 모든 직급 사람들이 윗사람, 손님 등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을 파는 대가로 급여를 받고 사는 것 같다.

거의 모든 직장에서 서비스 향상과 이미지 관리를 목적으로 전 직원 대상 친절교육과 대화법 교육을 한다. 정작 이들은 전문성과 능숙함에 기반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끊임없이 웃음과 미소를 지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 지식이나 기술로 이루어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의사는 장기간의 학습과 훈련에 기반한 진료를 제공하고, 공무원은 잘 짜인 시스템을 이용한 행정 서비스를, 회사원은 품질과 숙련도에 기반한 고객 서비스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친절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나 의사 등을 만나면서 다소 딱딱한 서비스를 받은 소비자들은 돌아가면서 하다못해 간호사와 접수 직원들에게 잔소리를 해서라도 마음을 채우려 하기도 하니 말이다.

공감 피로는 번아웃의 시작


문제는 장시간 지속되는 감정 노동의 부작용이다. 미소와 친절이 필수적 서비스의 일부로 당연시되면서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건강하고 만사 편안한 상태라면 문제없을 수 있겠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은 별로 없다. 직장이나 가정 등에서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거나 신체적으로 약해지면 회복력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반응하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것이 공감 피로, 번아웃의 시작인 것이다.

스스로 얼굴 근육의 어색함을 느끼는 수준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면 이는 친절에 대한 강박일 수 있다. 사실 일을 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어주는 것에 대해서 집착할 필요는 없다.

신입 사원 시절 윗사람이 하는 말에 비실비실 미소를 지으면서 쑥스러운 듯 말하는 태도가 그리 신뢰를 주지 않았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인공적인 미소 대신 진정성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서비스는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충족시키는 것에서 비롯된다. 억지로 웃어주는 미소나 매뉴얼에 쓰인 친절은 단기적으로는 좋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해당 직원들의 심리적 부담을 증가시키고 진정성을 잃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필요 이상의 미소와 친절을 강조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진정한 전문성과 서비스로 승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나친 웃음보다 진지함으로


사장이나 점주, 병원장은 내원객에게 일단 웃어주는 게 친절의 시작이라고 얘기를 하지만, 실은 중립적이고 진지한 표정으로 잘 설명하면서 보여주는 전문가적 태도가 상대방에게 더 큰 신뢰를 준다.

지나친 미소는 자칫 상대방에게 비굴함으로 해석돼 마치 본인이 주인이라도 된 듯 함부로 해도 되는 상대로 취급받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직장 상사들도 그저 잘 웃는 부하 직원보다는 진지하게 본인 일을 설명해 주는 사람을 더 신뢰한다.

또한 만성적 스트레스는 마음 회복력을 약화시키므로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기 관리에 힘쓰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을 관리하는 CEO들의 책임 영역이기도 한 것이다.

내 마음이 편치 않고 불편함이 남아 있을 때는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일하는 시간에는 개인생활을 접어 두라고 하지만 불편한 감정은 늘 우리 옆에 남아 있는 것이다. 친절하게 웃어주면서 내 마음이 너무 힘들고 상처받고 있다면 차라리 웃어주려 하지 마라. 그저 내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한국일보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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