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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단독]상표권 있는 ‘멍때리기 대회’···알고도 무단 개최한 지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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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 참가자들이 지난해 5월 21일 서울 한강 잠수교에서 안정적인 심박수를 유지하며 경연에 열중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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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북 익산시에서 개최됐던 멍때리기 대회가 원작자와의 협의 없이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원작자에게 개최 방식을 문의해 놓고는 계약을 맺거나 양해를 구하지 않고 개최한 것이다. 지자체 축제가 많이 열리는 계절이 돌아오면서 인기 행사나 프로그램이 원작자 허락 없이 도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문화계에서 나온다.

5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익산시 상권활성화사업단’(사업단)이 지난해 10월 익산시 지원을 받아 개최한 축제에 포함된 멍때리기 대회가 원작자의 협의 없이 열린 것으로 나타났다. 멍때리기 대회는 바쁜 현대인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시간 낭비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참여형 퍼포먼스다. 2014년 서울광장에서 처음 열렸으며 해외에서도 열리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도 오는 12일 한강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 행사를 처음 기획한 사람은 웁쓰양(활동명) 작가이며 상표권도 그가 갖고 있다.

웁쓰양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익산청년협동조합 측에서 멍때리기 대회를 개최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웁쓰양컴퍼니는 대회 진행을 직접 맡는 방식과 저작권료만 받고 대회를 허락하는 방식이 있다고 안내했지만 논의가 진척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업단은 지난해 10월 ‘멍때리기 페스티벌’을 열었다. ‘대회’를 ‘페스티벌’로 바꿨지만 심박 수를 측정하고 시민 투표를 통해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 등은 멍때리기 대회와 판박이였다. 홍보물에 앞서 열린 멍때리기 대회 우승자 사진이 사용됐고, 세부 프로그램 내용과 행사 뒤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 ‘멍때리기 대회’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경향신문

전북 익산시 멍때리기 페스티벌 홍보물. 문화연대 제공


웁쓰양컴퍼니는 지난해 11월 익산시와 사업단에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청하는 내용 증명을 보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이에 문화운동단체 문화연대가 양측에 저작권 침해 공개 사과와 저작권료 등을 요구하는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익산시는 지난달 “익산시가 승인한 사업계획에는 ‘멍때리기 페스티벌’이라는 세부 내용이 계획된 적 없고 사업에 관여한 적 없다”는 답변서를 보내왔다. 사업단에 따질 일이라고 떠넘긴 것이다. 사업단은 “멍때리기 대회가 상표공보 게재된 것은 확인했으나 대회 형식은 찾을 수 없었다”고 답했다. 멍때리기 대회 명칭의 상표권을 인정하면서도 행사 내용은 그렇지 않다는 취지로 답한 것이다.

하희봉 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방송 형식의 저작권이 인정되듯이 멍때리기 대회의 형식도 보호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현진 미술평론가는 “멍때리기 대회를 만든 원작자를 이미 알고도 상표권으로 보호받는 표현을 쓴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웁쓰양 작가는 “많이 알려진 멍때리기 대회 기획이 이렇게 쉽게 도용된다면 젊은 기획자들은 이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행사나 프로젝트가 민간의 인기 기획을 도용한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공동체 활성화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는 기업 ‘공장공장’은 2018년 행정안전부의 시민 주도 공간 활성화 사업에 청년이 지역에 체류하도록 돕는 ‘괜찮아마을 프로젝트’를 제안해 채택됐고 사업을 수행했다. 이듬해에도 행안부 용역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사정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이 용역 수탁자 선정 업체가 괜찮아마을 프로젝트 기획 아이디어를 도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공장공장은 행안부가 2018년 공장공장이 제출한 사업 계획서까지 이 업체에 넘겨준 사실을 확인해 문제를 제기했으나 행안부는 사과 등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 2019년 11월 충북 청주시에서 열린 멍때리기 대회도 원작자 측과 협의 없이 진행됐다.

김재상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공공이 민간의 지식재산권을 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도용한 것”이라며 “민간에서 기획한 예술 작품의 지식재산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업단 측에서 축제를 기획했던 관계자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프로그램도 그대로 사용했다면 문제가 커지겠지만 상권 활성화 차원에서 페스티벌의 한 프로그램으로 힐링 멍때리기를 활용했고, 도의적으로 사과하는 것 외에는 어떤 내용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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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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