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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슈 미술의 세계

‘범죄도시4’ 허명행 감독 “스턴트 후배들에 다른 길 보여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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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4’ 허명행(45) 감독은 27년간 ‘영화일’을 했다고 한다. 공식 필모그래피만 따지면 1999년 영화 ‘쉬리’의 무술팀부터 시작하니 25년이다.

그가 올해 ‘황야’ ‘범죄도시4’로 잇따라 영화감독으로서 대중과 만났다. 한국에서는 드문 일이다. 보통 20년 넘게 하던 일을 바꾸는 자체가 쉽지 않고, 영화 감독 데뷔는 특히 바늘구멍 통과만큼이나 어렵다. ‘스펙 사회’인 국내에서 무술감독 출신 영화감독이라는 이름표는 굳이 유불리를 따지자면 ‘불리’에 가깝기도 하다.

무술감독은 왜 영화를 만들려 했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지난달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허 감독을 만났다. 그는 대중이 가질 수도 있을 선입견에 대해 묻자 탄탄한 내공을 담아 답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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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무술감독 출신 영화감독이라 하면, 대중이 일단 실력이나 작품색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볼 수도 있다.

“제가 영화를 만드는 건 제 인생 때문이에요. 제작사를 10년 정도 운영했는데 작품이 많이 엎어졌어요. 돈도 많이 썼고. (과거) 감독 제안이 가끔 들어왔어요. 저는 안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가 그간 기라성 같은 감독들과 작업했잖아요. 감독이라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니 (제가 생각하는 감독에 대한) 벽이 높았죠. 그래서 ‘나는 저렇게 될 수 있는 (싹을 가진) 감독님들을 초빙해서 영화를 제작해보자’ 했어요. 우리 (스턴트계) 후배들에게도 무술감독 외에도 열심히 하면 제작자도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 다른 길을 뚫어주고 싶었지요. 그렇게 10년 지냈는데 잘 안 됐어요. 어리기도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고 여러 모로 부족했겠죠.”

-후배들에게 왜 대안적인 길을 보여주고 싶었나.

“후배 스턴트맨들이 가끔 찾아와서 상담하거든요. 생활 얘기도 하고. 제가 ‘최종적으로 뭐가 되고 싶어서 왔냐’ 물어봐요. ‘훌륭한 무술감독이 되고 싶다. 감독님같은’. 그런데 훌륭한 무술감독은 많았잖아요. 후배들은 무술감독이 끝인 줄 알고 달려가는데 사실 거기가 끝이 아니에요. 무술감독은 50대, 진짜 하이클래스는 더 하겠지만 50대 정도에서 생명력이 끝난다고 봐요. 그럼 은퇴해야 하는데, 영화일을 계속 하고 싶으면 어쩌지? 그래서 제작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후배들이 저같은 선배들이 가는 길을 보고 따라올 수 있으니까. 제가 좀더 많은 작품에 도전하고 다른 장르에서 인정 받고 힘이 좀 생기면 후배들 중 잘하는 친구들을 저처럼 영화감독으로 데뷔시켜볼 생각은 있어요.”

-‘범죄도시4’ 감독은 어떻게 하게 됐나.

“(영화예술에 대한 목표를) 그렇게 높게 보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하던 타이밍에 ‘황야’를 맡게 됐어요. ‘범죄도시4’는 재작년 2, 3월쯤 의뢰 받았다. ‘황야’ 찍고 있을 때 현장에서 얘기 들었다. 아직 ‘황야’ 촬영을 마치지 않았는데 같은 해에 (범죄도시를) 들어가야하니 어리둥절했다. 당시는 ‘범죄도시’ 1, 2만 개봉했던 상태라 (1000만 영화를 맡는) 감독으로서의 부담감은 지금과는 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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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1∼3편 무술감독을 할 때와 감독을 할 때 차이가 있나.

“무술감독을 할 때는 캐릭터가 80∼90% 완성된 상태에서 저한테 일이 와요. 저는 거기에 살을 좀 붙이는 액션 설정을 하죠. 감독으로 일하면 처음부터 캐릭터를 만듭니다. 액션 자체도 같이 만들어요. 훨씬 더 디테일하고 깊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범죄도시4’에서 전작과 비교해 좀더 강조하고 싶던 점은

“좀 무겁게 찍고 싶었어요. 초고가 나온 상태에서 함께하게 돼서 작품의 구조나 캐릭터는 나온 상태였어요. 전반적 상황을 어떻게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제가 선택한 건 빌런이 나올 때 느와르적으로 무겁게 가는 거였습니다. 마석도는 이미 잘 알려진 캐릭터라, 형사들의 팀웍과 동료애도 좀더 넣고 싶었어요. 장이수는 원래 그런 설정이 아니었는데 성공한 사업가로 만들고 싶었구요. 불법적이고 남루한 면이 있고 마석도에게 끌려가긴 해도 ‘장이수 출세했네’ 하는 인상을 주고 싶었습니다.”

-액션을 차별화한 점이 있다면

“빌런인 백창기가 나올 때 카메라 움직임이나 음악은 느와르풍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를 특수요원으로 설정한 건, 4편까지 전편 빌런처럼 악과 깡으로 싸우면 액션의 변별력을 만들기 어렵겠다 싶어서였어요. 4편 백창기는 테크닉적으로 강한 설정을 넣었습니다. 그와 맞붙었을 때 마석도가 좀 힘겹게 싸우도록. (그간) 1대 1 상황에서 마석도가 린치 당하는 신이 없었어요. 마석도와 비슷한 거구가 나오지 않는 이상 그렇게 만들기 힘듭니다. 그래서 이번에 치고 받는 액션을 많이 넣었어요. 전편들보다 치고 받는 장면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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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들에 대해 설명해달라.

“백창기가 용병처럼 나오면 너무 일차원적이고 재미가 없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은 사업가로 성공한 사람. 그래서 평범하게 보여지도록 했어요. 마지막 결투에서는 ‘당연히 마석도가 때려잡겠지’에서 ‘어어, 백창기가 이길 수도 있겠네’ 하는 포인트를 주고 싶었어요. 백창기는 원래 있던 대사도 뺐어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인 게 더 무서워 보이죠. 화났을 때 화내는 건 1차원적 표현인 것 같아요. ‘쟤 뭐하는 애지,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있지’ 궁금해지는 빌런이면 어떨까에 집중했어요. 장동철은 피터팬 콤플렉스 있는 친구라 미술, 의상 면에서 좀 화려하고 알록달록하게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본인 초상화를 뒤에 걸 정도의 자기애를 갖고 있고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지만 양면성이 있는. 옷을 (브랜드) 톰 브라운만 입는다든지 하는 집착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

“실화 바탕으로 3개 정도 작품을 준비 중이에요. 기획하는 영화 중 액션이 아예 없는 것도 있어요. 글(시나리오)이 잘 나와서 투자 받고 촬영에 들어가고 여러 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게 되면 그때 얘기하고 싶어요. 제가 말로 ‘저 액션만 잘 찍지 않습니다, 드라마도 잘 찍을 수 있습니다’라고 해도 안 믿어주실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면 다시 평가받고 싶습니다. 제가 27년 정도 무술감독으로, 제작자로 영화일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이야기를 만드는 데 많이 훈련된 것 같아요. 건방을 떨려고 이런 얘기를 드리는 게 아니라, 27년 일했는데 이 정도 못하면 문제 있는 거잖아요. 그러다보니 많은 장르를 접했고,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 구조가 따로 있겠지요. 지금은 액션 전문가로 액션을 주로 하는 시기이지만, 앞으로 저를 더 보여드릴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무술감독도 계속 할 겁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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