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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미국 대학생이 끌려갈 때 한국 대학생은 릴스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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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intro] 팔레스타인 국기는 빨간색 삼각형과 검정, 초록, 흰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박을 연상케 합니다. 때문에 해외에서 수박은 팔레스타인의 상징이자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과일로 통용됩니다.
노컷뉴스

한국 대학생들이 미국 대학생들의 캠퍼스 점거 시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SNS 화면 캡처



서울대학교에도 '수박'이라는 동아리가 있습니다. 국내 정치와는 상관 없는 팔레스타인 연대 동아리죠. 지난 15일 학생들이 학내에 붙인 팔레스타인 지지 포스터를 이스라엘 국적 유명 피아니스트인 서울대 음대 A교수가 스프레이로 훼손해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습니다. 동아리 '수박'은 해당 교수의 징계를 요구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 계획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지 성명과 집회는 비단 서울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연세대, 고려대 등에서도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거나 학내에서 홍보전도 서너 차례 진행했습니다.

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김태양(25)씨는 "이르면 다음주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를 진행하기 위해 학생들과 논의중"이라고 전해왔습니다. 연세대는 서울대와 달리 팔레스타인 연대 동아리는 없는데요, 대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의견을 나누고 팔레스타인 지지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난민촌 공습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김씨는 "미국 학생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고 있다"며 "미국에서 온 친구들도 있어서 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은 미국 대학생들의 캠퍼스 시위에 연대한다는 SNS 글을 올리거나 '릴스' 등 짧은 영상을 올려 지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해외 뉴스에서 연일 보도되고 있죠. 미국은 지금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로 들끓고 있습니다. 반전시위의 진앙지인 컬럼비아대학교를 비롯해 서부까지 최소 30여개의 캠퍼스가 가자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학교측은 경찰을 투입해 반전 시위 해산에 나섰고 2000여명이 체포됐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와 이탈리아, 영국, 호주 등에서도 반전 시위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시위뿐 아니라 친이스라엘 기업에게는 '지갑'도 닫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커피가 이스라엘 전쟁 자금을 지원한다는 '소문'을 계기로 스타벅스의 불매 운동이 시작되면서 스타벅스는 올해 1분기 실적이 예상치에 미치지 못한 어닝 쇼크를 기록했습니다. 매출이 떨어지면서 주가도 15% 넘게 급락했죠.

팔레스타인 지지를 선언한 스타벅스 노조를 스타벅스 본사가 고소하면서 불매 운동에 더욱 불을 지폈습니다. 가자전쟁 직후 스타벅스 노조가 SNS에 '팔레스타인과 연대한다'는 글과 함께 사이렌 로고를 활용했는데, 사측이 이를 상표권 침해를 이유로 노조를 고소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권과 일부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스타벅스 CEO는 "우리는 인류를 지지한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거세진 불매 운동을 가라앉히긴 역부족이었죠.

미국과 유럽에 반전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면, 우리나라는 촛불과도 같은 모양입니다. 규모나 강도는 훨씬 적지만, 분명히 불꽃은 타오르고 있지요.

지난 4일 서울 청계천 SK 서린빌딩 앞에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14차 긴급행동이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은 "사망자의 3분의 2가 여성과 어린이이며 유니세프(UNICEF)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 10분마다 어린이 한 명이 죽거나 다치고 있다"며 "'하마스 제거'를 빌미로 한 모든 공격은 실상 가자지구 민간인을 향한 인종청소이자 명백한 전쟁범죄"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스라엘은 집단학살을 중단하고 즉각적이고 완전한 휴전에 당장 돌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사람들 최영준 간사는 "10차례 넘게 진행된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는 많게는 500명, 적게는 300여명이 참여한다"고 소개했습니다. 절반은 한국인, 절반은 팔레스타인 출신이고요.

수천, 수만이 모이는 집회에 비하면 아주 작은 수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국제사회에 '우리'의 관심과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진심입니다.

아산정책연구원 장지향 중동연구센터장은 "일주일에 한 번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데 학교에 벽보도 붙이고 학생들이 모여서 집회도 진행했다"며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가 늘어날 때 학생들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행동해 달라며 한국 정부에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장 센터장은 "미국과 영국은 무슬림과 중동 이민자 출신이 많이 거주하지만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적고 접점도 거의 없어서 미국처럼 큰 규모의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내 가족, 친구 일도 아닌데도 머나먼 중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 모여 의견을 나누는 '원동력'은 뭘까요? 어쩌면 지난달 우리 정부가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권고하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표결에 '찬성표'를 던진 데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달 18일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 투표에서 우리 정부는 거부권을 행사한 미국과 정반대로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팔레스타인 정회원국 가입안은 결과적으로 부결됐지만 이례적으로 찬성표를 던진 배경에 관심이 쏠렸죠.

외교부 당국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 열망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국가"라며 "이번 찬성표는 역사 속에서 같은 열망을 공유했던 국가로서의 공감대가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고요.

우리나라는 1949년 유엔 가입을 신청한 이후 안보리에서 구(舊)소련의 거부권 행사 등으로 수차례 가입이 좌절된 끝에 40년이 넘는 1991년에서야 유엔 가입이 이뤄졌지요.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합의해 독립국을 상호 인정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게 한다는 '두 국가 해법'에 기반을 둔 정치적 프로세스를 촉진해 항구적 평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할 거라고 판단했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 결의안 찬성표를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평가한 조태열 외교부장관의 말처럼, 어렵지만 '관심'과 '연대'를 이뤄내는 것, 그것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라는 작은 불꽃들이 타오르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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