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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PC 네트워크’ 같은 효과, 개원의 중심 연구망에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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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한국한의약진흥원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단장


유난히도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따뜻해진 날씨를 즐긴 순간도 잠시, 날리는 꽃가루에 눈은 가렵고, 코는 훌쩍이게 된다. 봄의 불청객, 알레르기 비염이다.

알레르기 비염은 한국에서 유병률이 20%에 달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같은 면역 질환인 아토피 피부염이나 천식에 비해서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질환 중 하나이다.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증상을 완화시키는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 등의 대증요법 외에 현대의학에서도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는 점에서 한방병의원에서도 자주 보게 되는 질환 중 하나이다.

최근 한국한의학연구원 손미주 박사 연구팀은 한방병의원에서 알레르기 비염 치료제로 활용하는 첩약의 치료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한방병의원에서 많이 처방하는 첩약의 임상적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개원의 중심 연구망’을 구성해 알레르기 비염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했다.

2021년 1월1일부터 지난해 3월31일까지 전국 17개 한의원에서 진행된 이번 연구에서는 알레르기 비염 환자 144명의 치료 전후 증상·삶의 질 평가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비염의 4대 증상인 재채기, 콧물, 코막힘, 가려움증이 의미 있는 감소를 보였다는 점을 확인했다.

알레르기 비염 환자들에게 하나의 치료 선택지가 주어졌다는 점도 희소식이지만, 한의약 연구·개발(R&D) 분야에 종사하는 필자 입장에서는 개원의 중심 연구망을 통한 연구 성과가 점차 나오기 시작한다는 점이 중요해 보인다.

개원의 중심 연구망을 영문 약자로는 ‘PBRN(Practice-Based Research Network)’이라고 한다. PBRN이란 개원의 중 주로 의원급 1차 의료기관에 종사하면서 진료 중 맞닥뜨리는 임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자 하는 의사들과 연구자들의 네트워크를 말한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여러 대의 개인용 컴퓨터(PC)가 네트워크로 연결돼 개별 PC로는 처리할 수 없는 대용량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는 연방정부 산하 의료연구품질기구(AHRQ) 등록 기준으로 2020년 186개의 PBRN이 운영되면서 연구를 수행 중이다. 반면 1차 의료 기반이 취약한 한국의 경우에는 한의과와 의과 모두 PBRN은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한의원이 대부분인 한의 의료 환경에서 개원의 중심 연결망은 한의약 임상연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줄 것으로 생각된다.

한의학 임상 연구에는 몇 가지 제약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좋은 임상 근거 자료 확보를 위해서는 대규모 연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큰 병원과 제약회사가 있는 의료계와 달리 의원급 중심의 의료체계에서는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환자를 모집할 수 있는 자원과 시설이 없다.

이로 인해 좋은 치료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근거를 확보하는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개원의 중심 연구망을 활용한 이번 연구는 앞으로 추구할 한의약 임상연구의 방향을 제시해 준 것으로 보인다.

알레르기 비염뿐만 아니라 한의원에서 자주 접하는 여러 질환에 대한 개원의 중심 연구망이 구성돼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길 바란다. 그렇게 나온 연구 결과가 국민들에게 의료의 선택지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한국한의약진흥원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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