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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죽느냐 사느냐…‘마지막 본회의’에 목 맨 법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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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특별법 등 4개 법안 촉각…차별금지·노란봉투법은 무산될 처지

경향신문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5월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이 상정되자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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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간호법안 재의의 건은 총투표수 289표 중 가 178표, 부 107표, 무효 4표로서 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여야가 한 걸음씩 양보해서 간호법안에 대한 조정안을 마련할 것을 여러 차례 당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치적 대립으로 법률안이 재의 끝에 부결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서 매우 유감입니다.”

간호사법 기사회생은 ‘드라마’

1년 전인 2023년 5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이 간호법 재의안이 부결됐음을 선포했다. 간호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간호법 제정안의 운명은 이렇게 21대 국회에서 끝난 듯했다.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와 통과라는 과정을 밟아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 법안은 이해 4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률안 공포를 하지 않고,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다시 국회로 돌아온 간호법은 이날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재의 처리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것이 ‘21대 국회 드라마’의 끝이 아니었다. 총선을 앞두고 불거진 의·정(醫政)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만들었다. 간호법 통과 때 이를 반대한 의사들의 편을 들었던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증원 확대를 놓고 의사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자, 양측의 갈등은 감정적인 싸움으로 번졌다. 이런 이유로 간호법 제정안이 불사조처럼 되살아났다. 의사들과 대치하면서, 여당이 중심이 돼 간호법 재발의에 나섰다. 간호사 출신인 최연숙 국민의힘이 대표발의한 간호법안에는 여야 의원이 모두 참여해 21대 국회 막바지의 통과 가능성을 크게 했다. 그동안 의사협회 등에서 반대해온 일부 조항을 수정해 논란의 소지를 줄여놓았다. 국회 보건복지위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이미 국민의힘이나 보건복지부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서 5월 초 상임위를 통과하면 21대 국회가 폐원하는 5월 29일 전 마지막 본회의에서 간호법이 통과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여야 합의로 간호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윤 대통령이 공포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발의→국회 본회의 통과→대통령 법률안 거부→국회 재의 처리 부결→재발의→국회 본회의 통과→대통령 공포’라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 제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법률안 거부권 행사가 번복되는 우여곡절을 보여주는 독특한 사건이다. 그 때문에 간호법 제정안의 ‘기승전결’은 21대 국회의 파란만장한 운영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간호법처럼 21대 국회 막바지에 천신만고 끝에 되살아난 법안이 있다. 올해 1월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태원참사특별법이다. 지난 1월 30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국회에서 재의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당이 반대하면 3분의 2 이상을 넘지 못해 간호법처럼 본회의 재의가 부결될 운명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지난 5월 1일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을 계기로 여야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합의 처리했다. 국민의힘이 ‘독소조항’이라며 주장해온 진상조사 방식을 민주당에서 수용해 수정한 결과다. 이 법률안이 공포되면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된다. 21대 국회에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성과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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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5월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재옥 국민의힘,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 채 상병 특별법 처리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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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꿈꾸는 양곡관리법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간호법·이태원참사특별법처럼 부활을 꿈꾸는 법안이 있다. 쌀값의 시장격리 조치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에서 안건조정위를 거친 후 지난해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으나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1호 법안이 됐다. 이후 민주당이 지난해 4월 본회의 재의 처리를 시도했으나 부결됐다. 민주당은 4·10 총선 이후에도 이 법안의 처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4월 18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에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빠진 채 ‘제2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새 개정안은 이전 법안의 3% 초과 생산이나 가격 5% 하락이라는 구체적인 조건을 달지 않고 양곡수급관리위원회가 이 기준을 정하도록 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임기만료일인 5월 29일 이전에 마지막 본회의를 열어 새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결국 폐기되는 순서를 밟게 된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관련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은 여야가 첨예한 갈등으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21대 국회 마지막까지 정쟁으로 얼룩졌다. 여당은 현재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특검을 허용할 수 없다고 버텼고, 야권은 특검을 통해 대통령실의 수사 외압 의혹을 철저히 밝히겠다며 법안 통과를 강행했다. 지난 5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은 퇴장으로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야권만의 찬성으로 통과되긴 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된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거부권 행사 반대 여론이 60%를 넘어설 정도로 만만치 않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지지율 부정 평가와 비슷한 수치다. 민주당은 재의 요구 시 21대 국회 막바지에 재표결을 시도할 기세다. 만약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나온다면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국민의힘에서 반대하고 있는 전세사기특별법은 지난 5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의의 건만 통과됐다.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는 이 법안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임차보증금을 먼저 돌려준 뒤 나중에 회수하는 ‘선구제 후회수’ 방안에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채 상병 특검법처럼 전세사기특별법에 대해서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토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특별법을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정부의 경제·재정·조세 정책에 관한 법안을 야당이 밀어붙이는 것은 채 상병 특검법과는 다른 양상을 띨 수 있다”고 보았다. 야당 주도의 전세사기특별법 통과 강행이 무리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1대 국회의 마지막 논란이 되는 법안은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이다. 야권은 지난 4월 23일 이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안건을 단독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21대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국가보훈부는 이 법안의 유공자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반대하면서, 국회 통과 후 정부에 이송되면 윤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했다. 김철현 정치평론가는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마지막 국회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려 할 것이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 자신이 언급했듯이 수용할 수 없는 법은 끝까지 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야 단독처리 후 대통령 거부권 가능성

홍 원내대표는 지난 5월 2일 “21대 국회가 마무리되기까지 20여 일 이상 남아 있어 중요한 민생법안을 처리해야 할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가 언급한 법안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특별법, 풍력발전보급촉진특별법, 연금개혁안 등이다. 그 때문에 여야가 큰 이견이 없는 민생법안은 마지막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연금개혁안은 여러 이견으로 인해 21대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5월 2일 본회의에서 “(연금개혁안을) 만약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국회가 무려 17년간 미루다가 또 미룬다는 국민의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며 법안 처리를 요청했다.

20대 국회가 ‘공수처 신설’ 등 검찰개혁 관련 법안의 통과로 상징된다면, 21대 국회에서는 무려 9번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법률안 거부가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짧은 시기에 이를 여러 차례 반복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상돈 전 의원은 “대통령의 권력과 입법 권력이 충돌하는 일은 레이건 미국 대통령 시절에도 비일비재했다”면서 “견제와 균형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법안 통과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우선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법, 양곡관리법은 여야 합의가 없다면 야당 단독 처리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철현 평론가는 “국민의힘에서도 채 상병 특검법까지 포함해 4개의 법안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미 9건의 법률안을 거부한 윤 대통령이 거대 야당을 상대로 사사건건 재의요구를 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4건까지 포함하면 모두 13건으로, 점차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대한 부담감이 가중되고 있다. 김상일 평론가는 “대통령실 역시 거부권만 남발할 것이 아니라 왜 거부권을 행사하는지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당의 부담도 마찬가지다. 김상일 평론가는 “야당도 채 상병 특검법 관철에 만족해야지, 입법권을 남발하는 것은 과유불급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 협치 없인 결국 ‘도돌이표’

여야 정쟁의 틈바구니에서 약자들을 위한 법인 차별금지법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끝내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차별금지법은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의하고, 시민단체가 법안 통과를 요구했지만, 거대 양당 내부에서 찬반 논란이 일면서 결국 발의에만 의미를 두게 됐다. 노란봉투법은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에 통과됐다가, 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로 12월 본회의 재의 표결에서 부결됐다. 이후 법안 통과의 동력을 상실해 버렸다.

21대 국회에서 턱걸이로 통과되는 법안도, 끝내 통과되지 못한 법안도 험로가 예정돼 있다. 야당 단독 통과 법안에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여야 협치가 없다면, 22대 국회에서도 똑같이 ‘야당 주도 통과→대통령 거부권 행사→재의 처리 부결’이라는 과정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21대 국회 법안 성적표


5월 2일 국회 본회의를 마친 시점(오후 5시 기준)에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모두 2만5828건이다. 발의 건수로는 역대 국회 중 최고치다. 20대 국회 발의법안 2만4141건과 비교하더라도 1700여건을 더 발의됐다. 처리(가결·대안반영·수정안 반영·부결·폐기·철회 등)된 법안은 모두 9454건으로, 36.5%에 불과하다. 올해 5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을 무더기로 처리하더라도 40%는 넘지 못할 상황이다. 19대 국회의 처리 비율은 41.7%였고, 20대 국회는 36.4%로, 21대 국회는 20대 국회의 처리비율과 비슷하다. 원안 가결 1789건, 수정 가결 1170건을 감안하면 21대 국회가 이룬 실제 성과는 매우 미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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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리(계류) 법안이 1만6374건에 이르러 10건 중 6건 이상은 5월 29일 21대 국회 폐원으로 폐기된다. 21대 국회 미처리 계류법안 숫자인 1만6354건과 거의 비슷하다. 과잉입법과 정쟁 국회 등이 낳은 21대 국회의 자화상이다. 실적 쌓기용으로 법안은 많이 발의했지만, 실제로는 ‘일하지 않는 국회’로 폐기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미처리(계류법안)는 행정안전위(2253건), 보건복지위(1805건), 법사위(1692건), 환경노동위(1492건), 기획재정위(1388건), 정무위원회(1339건), 국토교통위(1307건) 순으로 많았다.

21대 국회의 여야 정쟁이 낳은 상처는 유례없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횟수로는 다섯 번째, 법안으로는 아홉 번째 거부권을 행사하며 현행 헌법 이후 최다 기록을 세웠다. 거부권이 남발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노태우 대통령의 7건이 가장 많았다. 여당의 막무가내식 반대, 다수 야당의 단독 처리,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국회 재의 처리 부결로 이어지면서 여야 협치는 어디에서도 이뤄지지 못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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