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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냉동김밥·라면·떡볶이, 수출 효자 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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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3년 11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코엑스 푸드위크’(제18회 서울국제식품산업전)에서 바이어가 냉동김밥 부스에서 상담하고 있다. 미국 대형 유통업체 트레이더조가 한국에서 수입한 냉동김밥은 소셜미디어에서 1천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예상치 못한 관심을 받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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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시내에 즐비한 노점상에는 차가운 음료수를 담아 파는 아이스박스가 있다. 어느 노점상에 가든지 아이스박스에 구비된 최고의 인기 제품은 ‘빠까’, 한국의 박카스다. 박카스는 2011년 처음 진출해 캄보디아 음료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한다. 한국에서는 박카스를 피로회복제로 팔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에너지드링크로 판매한다. 용량도 한국보다 2배(250㎖)나 많다. 한국 사람은 1년에 박카스를 3병 정도 마시는데, 캄보디아 사람은 13캔을 마신다.

러시아에서는 ‘팔도 도시락’이 인기다. 러시아 시장점유율이 1위로, 연간 5천억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린다. 얼마 전 팔도 도시락이 러시아에서 어떤 위상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일이 발생했다. 반부패재단을 이끄는 알렉세이 나발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유일한 정적으로 꼽혔다. 나발니는 흑해 인근 해안에 있는 저택이 푸틴 대통령 소유라는 의혹을 담은 다큐멘터리 <푸틴의 궁전>을 만들어 전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나발니는 서슬 퍼런 정권에 맞서다 얼마 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시베리아 감옥에서 사망했다.

나발니도 좋아한 ‘팔도 도시락’

생전에 나발니는 교도소 식사 시간제한을 풀어달라고 지적하며 “교도소 매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도시락’이다. 뜨거운 물로 만든 라면을 빨리 먹느라 혀를 데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나발니가 언급한 ‘도시락’은, 우리가 아는 팔도 도시락이다.

세계여행을 하다보면 의외로 한국 식품이 현지에서 인기를 얻는 상황을 목격할 때가 있다. 한국 신도시 경기도 화성 동탄을 똑 닮은 몽골의 신도시는 ‘몽탄’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몽골에서 어린이음료 1위는 한국 팔도가 만든 뽀로로 음료다. 몽골 라면 시장의 절반은 한국 농심이 차지한다. 베트남 프랜차이즈 1위는 롯데리아이고, 베트남 사람들의 제사상에는 초코파이가 올라간다. 우리는 이를 ‘한류’ 혹은 ‘한식 세계화’ 등으로 부르며 자랑스러워한다.

한국 식품을 수출하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떡볶이 산업을 육성하겠다며 정부가 나서서 ‘떡볶이 연구소’를 만들고 미국에서 수천 명을 모아 무료 시식 행사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 주도형 한식 세계화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 외국 유명인들을 만날 때마다 ‘두 유 노 김치?’를 묻는 한국 기자들은 국내에서조차 조롱거리가 됐다.

사실 캄보디아에서 박카스, 러시아에서 도시락의 성공은 한국의 성공이라 보기 어렵다. 캄보디아에 처음 박카스를 들고 간 사람은 박카스 제조사인 동아제약이 아니라 캄보디아 수입회사 캠골드(CAMGOLD)의 속삼랑 대표다. 속삼랑 대표는 한국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박카스를 맛보았고 그것을 캄보디아에서 팔기로 했다. 그는 캄보디아 구석구석을 돌며 박카스를 홍보하고 현지 유통업체들과 함께 박카스를 캄보디아 국민 음료로 키웠다. 캄보디아 박카스에는 한국이 없다. 박카스의 성공을 보고 광동제약도 비타500을 들고 캄보디아에 진출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철수했다.

팔도 도시락 역시 마찬가지다. 도시락은 1990년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부산항을 오가는 러시아 선원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현지에 진출했다. 현지인이 현지에 맞는 상품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지 ‘한국’이란 키워드는 강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류’의 헛된 희망을 품고 국외로 진출한 업체들은 손실만 보고 철수했다.

식품산업은 문화적 성격이 강하게 작용한다. 음식은 기후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다. 기후에 맞춰 작물이 자라고, 이를 수확해 만든 음식을 기반으로 식문화가 형성된다. 덥고 건조한 서유럽에서는 포도를 원료로 한 와인 산업이 발달했다. 강수량이 풍부한 한국에서는 쌀을 원료로 한 청주를 마신다. 목축업이 발달한 지역은 치즈를 먹고, 음식이 잘 상하는 지역에서는 절인 음식을 먹는다. 나고 자란 지역의 음식이, 현지 음식을 기반으로 형성된 식문화가 각자의 입맛에 익숙하다.

음식이 국경을 넘으려면 문화 수출이 뒷받침돼야 한다. 동경하면 경험하고 싶고, 이런 다수의 경험이 반복되면서 식품산업은 현지에 뿌리를 내린다. 우리가 대중적으로 먹는 돈가스도 과거에는 유럽풍 경양식 집에서 고급스럽게 소비되던 음식이다. 문화 수출의 뒷받침이 없으면 우연히 현지에서 이른바 대박이 나더라도 일회성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농수산식품 수출 사상 최고치

최근 한국 식품을 향한 외국 현지의 열기가 심상치 않다.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로 한국 콘텐츠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면서 한국 선호도가 높아졌고, 말 그대로 ‘한국’ 식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대형 유통업체 트레이더조가 한국에서 수입한 냉동김밥은 소셜미디어에서 1천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예상치 못한 관심을 받았다. 경북 안동에 있는 소규모 업체 ‘올곧’에서 만든 냉동김밥을 사기 위해 미국 사람들은 트레이더조 매장 앞에 장사진을 이뤘다. 상하기 쉬운 김밥이 수출에 성공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다. 방탄소년단(BTS) 지민이 먹는 떡볶이, 블랙핑크 로제가 먹는 불닭소스를 먹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유통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간장게장을 미국에서 담가 먹는 일이 유행이었다니, 실감하기 힘들다.

한겨레

전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매운맛’을 수출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2023년 국외 매출액만 8천억원이 넘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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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도 만만치 않다. 2023년 한국 농수산식품 수출은 120억2천만달러(약 16조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품목별로 보면 라면이 전년보다 24.4% 증가한 것을 비롯해 과자(6%), 음료(11.5%), 김(22.2%) 등 다양한 한국 식품의 수출 성장세가 가파르다. 특히 일본 라멘의 싸구려 버전으로 인식되던 한국 라면은 이제 고유의 영역을 가진 인기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2015년 2억달러에 불과하던 라면 수출액은 2023년 9억5240만달러(약 1조2900억원)에 이르렀다.

전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매운맛’을 수출한 불닭볶음면은 2023년 국외 매출액만 8천억원이 넘는다. 삼양식품은 밀려드는 수요를 소화하기 위해 1600억원을 들여 밀양2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라면 명가 농심은 2023년 3조4천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 중 국외 매출 비중이 30%에 달한다. 과자를 만드는 오리온은 전체 매출 2조9천억원 중 63%가 국외에서 발생한다. 만두를 만드는 CJ제일제당도 2023년 4분기 처음으로 국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앞섰다.

문화 기반 상품의 국외 진출 약진은 화장품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화장품 산업은 중국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하며 ‘케이(K)-뷰티’의 성공 신화를 이뤘다. 하지만 중국 현지 업체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고사 위기에 빠졌다. 유럽·미국 등 서구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방향은 누구나 알지만 전통적인 럭셔리 브랜드가 즐비한 서구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기 어려웠다.

개척자는 잘나가는 대기업이 만든 설화수, 후가 아니다. 조선미녀·스킨1004·믹순 등 한국에서조차 낯선, 신생 브랜드들이 소리 소문 없이 미국 시장에 퍼지고 있다. 2023년 한국 중소기업의 수출 품목 1위는 화장품이다. 중국이 14.4% 줄어드는 동안 미국은 47.2% 늘었다. 미국 무역통계에 따르면 2023년 7월 미국 화장품 수입국 중 한국이 1위(20.1%)를 차지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를 타고 아마존을 통해 난공불락 미국 시장의 문이 열린 것이다.

변곡점 위에 선 한국 경제

문화상품의 선전은 수출 규모 증가 이상의 의미가 있다. 1960년대 한국의 5대 수출 품목은 어패류(12%), 합판(10.6%), 면직물(9.3%), 철광석(5.8%), 의류(5.3%)였다. 2023년 한국의 5대 수출 품목은 반도체(15%), 자동차(11.2%), 기계(8.5%), 정유(8.3%), 화학(7.3%)으로 변했다. 수출 품목 변화는 고도화된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보여준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6천달러에서 3만2천달러로 두 배나 성장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전세계적인 모범 사례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변곡점 위에 있다. 한국 수출은 품목별로는 중간재, 지역별로는 중국 의존도가 높다. 한국 중간재의 경쟁력은 전세계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주요 수출국인 중국이 국산화를 추진함에 따라 점차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품목이 아주 중요한 시점이다. 문화는 다른 나라에 자리잡기 어렵지만 한번 자리를 잡으면 쉽사리 꺼지지 않는다. 어렵게 찾아온 기회에서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실마리를 마련해야 한다.

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 soon@3pro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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