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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그림자 전쟁’의 종말…중동이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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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아라드시 인근 사막에 떨어진 요격 미사일의 잔해를 초정통파 유대인들이 살펴보고 있다. 요격 미사일은 이란의 공격에 대응한 것이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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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스라엘 서로 본토 공격
이스라엘, 서방 지지 끌어냈지만
이란 추가 반격에 대처 가능할지
사우디는 균형…미국은 발목 잡혀



지난해 10월7일 발발한 가자 전쟁은 4월 들어서 이란과 이스라엘의 상대 영토 직접 공격으로 중동의 지정학적 대결 구도를 더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가자 전쟁의 지정학적 배경의 하나로는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수교가 목표인 아브라함협정의 진전이 거론된다. 사우디-이스라엘 수교로 고립될 것을 우려해 하마스가 이스라엘 공격을 감행했다고 분석된다.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일방적 공격인 가자 전쟁은 이슬람권의 분노를 촉발해 사우디-이스라엘 수교를 당분간 물건너가게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정부는 올해 들어서 이란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면서 가자 전쟁 이후 심화된 국제적 비난에 따른 고립을 타개하려 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란 때리고 지지율 회복한 네타냐후





이스라엘은 올해 4월1일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격했고 이란은 4월13일 300개의 드론과 미사일을 동원해 이스라엘 영토에 전례 없는 보복에 나섰다. 4월19일엔 이스라엘이 이란의 이스파한을 드론 등으로 반격했다. 이스라엘은 이런 대결 국면에서 미국 등 서방의 지지와 이란에 대한 비난을 끌어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방어를 약속했다. 미국은 이스라엘로 넘어오는 이란 드론과 미사일 요격에 자국군과 영국군뿐만 아니라 요르단 등 아랍 국가도 동원해줬다.



특히 네타냐후 정부는 가자 전쟁 이후 바닥이던 지지율을 이란과의 대결 국면 속에서 회복했다. 20%대에 머물던 네타냐후 지지율은 이란과 공격이 오가던 지난달 17~19일 조사된 여론조사에서 37%로 올랐고, 경쟁자인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와의 지지도 격차는 5%포인트로 줄었다. 당장 총선이 실시되면 현 연립정부의 예상 의석은 120석 중 50석으로 올랐다.



무엇보다도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로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다시 잡았다고 평가된다. 사우디는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을 막은 이스라엘-미국-요르단-영국-프랑스의 군사협력에 도움을 줬다고 예루살렘포스트가 사우디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사우디는 이란 드론이 자국의 영공을 통과하며 주권 침해가 발생했다며 미국 등과 협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사태에서 이란의 위협을 다시 실감한 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세력균형 필요성을 다시 느꼈고, 이는 아브라함협정의 재추진 동력이 되고 있다고 미국 등 서방 언론들은 보도한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가 호전되면서 가자 전쟁의 배경이 된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태가 사우디와 가까워지려는 이스라엘과 서방 쪽의 희망사항을 다시 소생시킬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란-이스라엘의 직접 공격은 중동의 기존 분쟁 문법을 바꾸어, 이스라엘에도 비싼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40여년간 진행된 양국 분쟁에서 이스라엘이 직접 나서서 이란의 요인을 암살하고 시설물들을 사보타주하는데도, 이란은 직접 대응을 삼가고 대리세력을 통해 간접적으로 공격했다. 이란의 피해가 직접적이고 가시적으로 보이지만, 이스라엘은 이란을 때릴수록 헤즈볼라나 하마스, 이라크·시리아 내의 친이란 무장세력과 상시적으로 비대칭적 저강도 분쟁에 휘말렸다. 이스라엘의 대차대조표가 이란보다도 양호하다고 할 수 없다. 이란이 직접 나서서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은 배경은 이스라엘의 우월한 안보 능력을 의식한 측면도 있으나, ‘친이란-반이스라엘’ 방식으로 시아파 벨트 세력을 확고히 묶으려는 전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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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스라엘 위협 역량 과시





이란은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 공격이라는 레드라인을 넘어설 계기를 잡았다. 특히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 있는 역량을 과시했다. 이란은 72시간 전에 공격을 통보해, 이스라엘과 서방에 미리 대비할 여지를 줬다. 이란이 발사한 300여개의 드론과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미국의 주도로 영국·프랑스·요르단이 직접 가담했고, 튀르키예·사우디·이라크 등이 정보 협력을 했다. 대부분이 이스라엘에 도달하기 전에 요격됐으나 이란의 위협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미국이나 주변국들의 전례 없는 군사·정보 협력에 의탁한 셈이 됐다.



이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던 지난달 19일 이스라엘의 반격에 이란은 대응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추가 반격 때에는 사전 통보 없이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이 실제로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 공격을 사전 경고 없이 실행할 경우, 이스라엘과 서방이 효과적으로 대처할지는 의문이다.



미국이 구상하는 아브라함협정은 △이스라엘-사우디 수교 △미-사우디 방위협정 △하마스를 배제한 팔레스타인 자치국가라는 세 축으로 구성된다. 이란으로서는 동지중해·페르시아만·홍해에서 자신을 몰아내려는 봉쇄가 아닐 수 없다. 가자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시리아-이라크 내의 친이란 무장세력에 더해 예멘의 후티 반군에다가 이란의 직접 공격에 노출된 셈이 됐다. 이란으로서는 동지중해·페르시아만·홍해에서의 친이스라엘 진영의 봉쇄를 역으로 봉쇄하려는 모양새다. 이란에는 동쪽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파키스탄, 이란 본토,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까지 이어지는 인구 2억5천만의 시아파 벨트를 연결하고, 바다로 나가는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 지정학적 과제다.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직접 충돌로 단기적인 성과를 올렸으나, 장기적인 지정학적 우위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이란은 서방과의 관계 개선이 더욱 멀어지는 고립에 처했으나, 전투로 단련된 16만명의 무장세력이 산재한 시아파 벨트를 더욱 활성화해 연대시키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려고 하고, 미국은 중동에서 더욱 발목이 잡히고 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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