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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하루 5건 이상 재판하는 사또… 조선시대 소송 풍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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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웠던 소송, 노비·여성도 제기

수령 판결에 불복해 재심 요청도

좋은 묏자리 차지하기 위해 소송 잇따라

한국국학진흥원은 ‘조선시대 소송’을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5월호를 발행했다. 5월호는 좋은 묏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빈번하게 벌어졌던 산송(山訟)을 비롯한 여러 소송을 통해 오늘날의 모습을 비춰보고 있다.

세계일보

조선시대 동헌에서 열린 재판.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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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건 이상 재판하는 사또

‘소송을 통해 본 조선 사회’에서 심재우 교수는 조선시대 ‘호송(好訟)’에 대해 설명한다. 흔히 조선시대에는 소송이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19세기 지방 군현에서 접수된 민장(民狀)과 그 결과를 요약한 ‘민장치부책’을 분석해 보면 지역별 민장 접수 횟수에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기록에 남아 있는 9개 지역 평균 한 달 민장 접수는 156건에 달한다. 한 달 동안 수령이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하루에 5건 이상의 적지 않은 소송을 처리해야 했음을 말해준다.

심 교수는 당시 호송 풍속이 가능했던 이유를 개방적인 소송제도에 주목했다. 중앙과 지방의 구분 없이 관청 개좌일(開坐日)에는 상시로 소장(訴狀)을 제출할 수 있었다.

신분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라도 소송을 할 수 있었다는 점도 조선시대 소송제도의 큰 특징이다. 노비는 물론 여성도 소송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었다. ‘경국대전’ 사천조에는 수령의 판결에 불복하는 경우 재심 요청이 제도적으로 보장됐다.

소송은 재판관 역할을 하는 수령의 청렴함과 능력에 따라 결과에 대한 희비가 갈렸다. 백성은 수령이 주관 없이 판결을 내리면 무두질을 해서 이리저리 잘 늘어나는 ‘익힌 노루 가죽’으로 비유하거나, 무능한 재판관을 ‘반실태수(半失太守·시비를 가리기보다 양측에 절반씩 나눠 적당히 판결하는 것)’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재판에서 위세에 굴복하지 않고 약자의 편에 서서 많은 백성을 감화시킨 재판관을 명판관으로 꼽았다.

◆무덤 명당은 곧 후손들의 욕망

‘죽은 자의 안식처, 산 자의 소원 상자’에서 최진경 동국대 박사는 묘지를 죽은 자의 안식을 핑계로 현재의 우리가 잘살기를 희구하는 강한 욕망을 담고 있는 공간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잘살고 싶은 욕망으로 산 자가 살아가는 곳뿐 아니라 죽은 자가 안식하는 공간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곳을 ‘길지(吉地)’라고 칭했다. 그러나 길지는 한정돼 이를 차지하기 위한 갖가지 다툼이 일어나고, 이 다툼은 재판까지 이르게 된다.

조선 후기에는 특히 묏자리를 두고 각종 싸움이 벌어지고 송사를 통해 판결을 요하는 사례도 빈번해 ‘산송(山訟)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18세기 초에 일어났던 박효랑 사건과 같이 ‘투장(偸葬)’에서 비롯된 산송에 재판관의 정실이 개입하며 법정극은 생사가 걸린 복수극으로 치닫게 돼 조정에 알려지게 된다. 이 사건은 길지를 둘러싼 싸움이 왕실이나 유력가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싸워 쟁취해야 하는 실존적 차원이었음을 말해준다.

조선 후기 야담에 등장하는 묏자리를 소재로 한 이야기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알고 보니 아주 유능한 풍수가이거나 풍수가에게 작은 은혜를 베풀었더니 바로 길지라는 보답으로 이어지는 등 즉각적인 복으로 돌아오는 공통점을 보인다.

◆사건 너머를 꿰뚫는 솔로몬의 지혜

웹진 담에서는 조선시대 소송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칠석에 내리는 비’에서는 송사 너머에 노비의 부당한 삶을 살펴본다. ‘선인의 이야기, 무대와 만나다’의 ‘분필로 동그라미를 그릴 권한’에서는 솔로몬의 재판을 변주한 다양한 작품 중 연극 회란기와 창극 코카서스의 백묵원 이야기를 소개한다.

‘백이와 목금’의 ‘정 진사, 산송에 휘말리다’에서는 백이의 아버지인 정 진사 문중 땅에 범장(犯葬)을 한 김 생원이 외지부(外知部)를 내세워 묘 주인을 판결해달라는 소장을 내는 이야기를 담았다. 웹진 담 5월호는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동=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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