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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인류가 태고부터 바란 '인공강우'…국내선 '산불예방'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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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올 것 같은 날씨'에 비 쏟아내는 인공강우…각국 경쟁적 추진

국내선 2018년부터 본격화…올해부터 비행기 여러 대 동원한 실험 진행

연합뉴스

'구름씨' 뿌리는 드론
(평창=연합뉴스) 2일 강원 평창군 기상청 구름물리선도관측소에서 비행 중인 드론이 인공강우에 사용되는 구름씨를 뿌리고 있다. 2024.5.2. [기상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강릉=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날씨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일은 하늘 아래 사는 인간의 오랜 소망이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올 때 데려온 신하가 바람을 관장하는 풍백(風伯), 비를 관장하는 우사(雨師), 구름을 관장하는 운사(雲師)였다는 것은 날씨를 다스리려는 욕망이 태고부터 인간과 함께했음을 보여준다.

현대에 와서 인공강우와 같은 기상 조절은 과학 또는 국가의 권능을 보여주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국내에선 1962년 인공강우가 국가사업으로 추진됐는데 기상관측망이 전국에 확충되기도 전에 인공강우와 같은 '첨단사업'에 정부가 거액을 투자한 배경엔 그해 가뭄이 유독 심했고 당시 출범 1년 된 박정희 정부로서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필요했다는 점이 있었다.

기후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현재에 인공강우 등 기상 조절 기술은 생존에 필수인 기술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 '비 올 듯 말 듯 할 때' 비 내리는 게 인공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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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강우 모식도. [기상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2일 찾은 강원 평창군 기상청 구름물리선도관측소.

관측소 앞마당에서 붕 떠오른 드론 한 대가 파란 하늘에 흰 연기를 내뿜었다.

이 연기는 곧 산산이 흩어졌지만 만약 이때 날씨가 습하고 낮은 고도에 구름이 낀 상태였다면 연기가 '씨앗'이 돼 비구름이 만들어지고 비가 내렸을 것이다.

인공강우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마른하늘에 비를 내리는 기술'이란 생각이다.

인공강우는 구름에 응결핵이나 빙정핵 역할을 할 미세한 입자, '구름씨'를 뿌려서 비를 늘리는 기술이다. 인공강우와 '인공증우'나 '인공증설'이라는 용어가 함께 사용되는 이유다.

기상청이 지난달 24일 대관령 쪽에서 인공강우 실험을 실시했을 때 해당 지역은 하늘 90%가 구름으로 덮였고 지상의 습도는 95%에 달했다.

이처럼 '비가 올 듯 말 듯 할 때' 비를 내리는 기술인 만큼 큰불이 났을 때 비를 내려 끈다든가, 가뭄이 심한 지역에 비로 물을 공급한다든가, 비로 대기 중 미세먼지를 씻어낸다든가 하는 희망은 인공강우로 실현되기 어렵다.

◇ 국내 인공강우 2018년 본격화…2022년부터 기술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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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강우 실험 계획 설명하는 기상청장
(강릉=연합뉴스) 유희동 기상청장이 2일 강릉기상레이더관측소에서 인공강우 실험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2024.5.2. [기상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내 인공강우 실험은 2017년 다목적 기상항공기가 도입되면서 2018년부터 본격화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첫 인공증설 실험이 실시됐으며 이후 2020년 가뭄과 산불 예방 등 '목적별 실험'이 시작됐고 같은 해 '인공강우 기술 개발 기본계획'도 마련됐다.

2020년까지 국내 인공강우 기술은 최선진국인 미국의 80% 수준으로 평가됐다.

이후 실험이 거듭되고 구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모의하고 인공강우 구름씨로 사용할 신물질을 찾는 데 필요한 대형 구름물리실험챔버가 2022년 국내기술로 제작돼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기술 수준이 대폭 향상됐다.

2022년부터 유희동 기상청장 주도로 미국 노스다코타주에서 인공강우 전 과정 기술을 연수받는 교육프로그램이 운영 중인 점도 기술 향상을 이끌었다.

지난해 기준 인공강우 효과 확인율, 즉 인공강우 실험으로 실제 비나 눈이 온 것이 확인된 비율은 86%로, 2020년 65%에 견줘 21%포인트 올랐다.

2020~2023년 인공강우 실험 평균 증우량(늘어난 강우량)은 1.3㎜, 평균 영향 면적은 서울의 1.5배인 약 930㎢이다.

서울 1.5배 면적에 1.3㎜면 120만t의 비가 더 내렸다는 의미이다.

기상청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항공기 여러 대를 동원해 구름씨를 연속해서 뿌리면서 증우량을 증가시키는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미국 민간업체에서 임대한 항공기 2대가 6월 국내에 들어온다.

항공기 3대로 총 6회 비행하면서 구름씨를 이어서 뿌리면 평균 증우량이 2.5~5.0㎜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인공강우 실험 횟수도 연간 22회에서 40~50회로 늘릴 수 있을 전망이다.

◇ "인공강우로 땅 습도 높여 산불 예방"…올해 본격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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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항공기 구름씨 살포 장치
(양양=연합뉴스) 3일 양양국제공항에 주기된 기상항공기에 장착된 구름씨 살포 장치. 2024.5.3 [기상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기상청은 올해부터 인공강우 실험의 초점을 '산불 예방'으로 전환하고 있다.

지난겨울과 올봄 강수가 잦아 땅이 촉촉하게 유지되면서 올해 산불이 비교적 덜 발생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성해보겠다는 것이다.

유희동 청장은 2일 강릉기상레이더관측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산불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 인공강우를 추진할 것"이라면서 "메마른 지역에 (인공강우로) 물을 공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인공강우 실험을 하면서 땅 습도를 꾸준히 높여줘 산불을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현재 43개국에서 인공강우 등 기상 조절 프로젝트가 150개 이상 진행되고 있다.

각국의 인공강우 목적은 다양하다.

미국 서부 로키산맥 쪽에서는 거울에 인공강우로 산에 눈을 내려 쌓이게 한 다음 봄에 눈이 녹으면 식수로 활용하고 있으며 노스다코타주에서는 우박이 내릴 것으로 예상되면 비를 내려 우박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우박을 억제하는 인공강우가 실시되고 있으며 태국에선 왕실의 전폭적 지원 아래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인공강우가 진행되고 있다.

◇ '기후공학'의 시작점…"꿈의 기술, 계속 도전해야"

연합뉴스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인공강우 관련 장비 설치하는 작업자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인공강우 등 기상 조절 기술은 기후를 조절하고 통제하는 '기후공학'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기후공학은 아직 가능성만 논의되는 정도이고 실행 시 사전에 파악되지 않은 어마어마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실행해도 되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황이지만 기후변화가 날로 심해지는 만큼 인류가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카드'로 평가된다.

다른 나라의 기상 조절에 맞서 우리도 관련 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현재 일본은 집중호우·태풍·강풍의 강도를 조절하는 '문샷 골 8'이라는 프로젝트를 2050년까지 장기 국가연구사업으로 진행 중인데 일본에서 태풍 등의 강도를 약화하면 그 부작용이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어 국내에서 대응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간이 '자연의 영역'에 손을 대는 데 대한 불안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인공강우와 관련해 구름씨로 뿌리는 물질이 자연과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구름 내부 온도가 영하면 요오드화은과 드라이아이스, 영상이면 염화칼슘과 염화나트륨을 구름씨로 주로 쓴다.

기상청은 인공강우로 내린 빗물을 받아 한국환경공단에 맡겨 성분을 분석하는데 화학물질이 관련 기준치에 한참 못 미치게 나온다고 설명했다.

유 청장은 "현재 수준 실험에서는 (인공강우 부작용에 대해) 크게 걱정할 부분은 없다"라면서 "사용하는 화학물질도 안전하다고 판명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공강우와 같은 기상 조절 기술은 기상현상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꿈의 기술이자 최종적인 기술"이라면서 "계속 도전하고 연구해야만 한다"라고 강조했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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