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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정부는 정말 어린이 기본권 침해하고 있을까? 기후소송이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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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름 기자]

2020년 3월 우리나라에서 '기후소송'이 제기됐다.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이었다. 이를 제기한 기후운동단체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2010년 제정)과 탄소중립기본법(2021년 제정)이 탄소 감축에 유효하지 않고 미래세대에 탄소 감축량을 더 떠넘기고 있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의 첫번째 변론이 4년 만에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정부는 정말 미래세대인 어린이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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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3일 기후환경시민단체의 어린이 회원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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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감축량을 미래에 더 떠넘긴 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요구하는 '기후소송'의 첫번째 공개 변론이 4월 23일에 열렸습니다. 2020년 기후운동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이 관련 소송을 청구한 지 4년 만입니다.

공개 변론을 시작하기 전 헌법재판소 앞에는 기후소송의 당사자인 청소년기후행동, 기후위기긴급행동 등 기후운동단체와 시민ㆍ어린이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이 제기한 소송의 핵심은 하나로 수렴됩니다.

우리나라의 '기후위기대응을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 탄소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ㆍNDC)를 지나치게 적게 설정한 탓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참고: 기후운동단체가 2020년 기후소송을 제기할 때 문제로 삼은 근거법은 2010년 제정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2021년 정부는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ㆍ공포했다. 이에 따라 기후운동단체는 기후소송에 탄소중립기본법의 내용을 추가했다. 독자 편의상 이 기사에선 탄소중립기본법만 기술했다.]

왜 이런 문제를 제기했는지를 파악하려면 '파리협정'의 의미와 우리나라의 감축목표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현재 탄소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큰 그림은 2015년 12월 채택한 '파리협정'입니다.

이를 근거로 파리협정 당사국들은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1850~1990년) 이전 대비 섭씨 2도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해야 합니다. 나아가 2050년까진 탄소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2050년이 탄소중립의 원년이란 얘기죠.

파리협정의 당사국인 우리나라도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탄소중립기본법을 공포했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르면, 국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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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기후운동단체 등이 기후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뭘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탄소중립기본법에 허점이 숱해서입니다. 파리협정에 따르면, 탄소중립의 원년인 2050년엔 배출량이 '제로'여야 하는데, 정작 탄소중립기본법엔 2031년 이후 계획이 없습니다.

게다가 탄소중립기본법을 그대로 따를 경우 우리나라의 탄소예산은 2030년 이전에 모두 소진됩니다. 탄소예산이란 지구 평균 기온상승폭을 1.5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허용 가능한 탄소 배출량(전세계 대비 국내 인구 기준)을 말합니다. 2030년 이전에 탄소예산이 사라진다는 건 원칙적으론 탄소를 더 이상 배출할 수 없다는 겁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형평성입니다. 2030년까지 우리나라의 목표 탄소감축량은 해마다 늘어납니다. 시간이 갈수록 미래세대에게 탄소감축량을 더 떠넘기는 구조라는 겁니다.

이날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한국 정부의 기후 대응 목표는 국민의 기본권, 특히 본격적인 기후 위기 속에서 살아남아야 할 미래 세대를 차별하고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명확하고 빠른 판결을 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기후소송' 당사자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탄소배출량 자체는 인구가 아니라 산업구조가 좌우하기 때문에 탄소예산을 계산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주장입니다. 미래세대에게 탄소감축량을 더 떠넘긴다는 주장엔 이같은 반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피해를 계산할 수 없기 때문에 기본권을 침해한 게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양쪽 주장 중 어느 쪽의 의견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참고할 수 있는 의견은 있습니다. 202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전원위원회를 통해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과 같은법 시행령 3조 1항을 '위헌'으로 봤습니다. 이 법과 시행령에서 잡은 탄소감축목표가 파리협정 목표에 미달해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한다는 게 이유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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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소송이 청구된 지 4년 만에 첫번째 공개변론이 진행됐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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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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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도 국가인권위와 같은 판단을 내린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네덜란드ㆍ독일 대법원은 각각 우르헨다 소송, 노이바우어 소송에서 국가인권위와 같은 논리를 수용하고 "정부가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의 윤세종 변호사는 "국회와 정부의 기후대응 실패는 국민 특히 다음 세대의 기본권 침해로 이어지는 만큼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전세계 각국의 최고 법원들이 과학이 요구하는 탄소배출 감축목표를 세우지 못하는 건 국가의 의무 위반이라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2차 공개변론은 5월 21일 다시 헌법재판소에서 진행합니다. 정부는 올해 안에 파리협정에 따라 2035년까지의 탄소 감축량을 결정해야 합니다.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은 이 목표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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