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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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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50년간 ‘고도를 기다리며’…한국 연극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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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5년 산울림 소극장 개관 20주년 당시의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오른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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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산울림을 현대연극 산실로 키워낸 연극계 대부 임영웅 대표가 4일 별세했다. 89세. 산울림에 따르면 임 대표는 노환으로 입원 중이던 서울대병원에서 이날 새벽 3시 23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34년 서울에서 태어나 1955년 연극 ‘사육신’ 연출로 데뷔 이래 70년 무대 인생 외길을 걸었다.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단하고, 1985년 서울 홍대 인근에 산울림 소극장을 개관해 완성도 높은 작품을 올리며 연극적 실험을 쉬지 않았다. 최근 폐관한 김민기의 ‘학전’과 더불어 한국 소극장 양대 성지로 꼽혔다.

연극 ‘비쉬에서 일어난 일’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등 해외 작품을 소개하고, ‘부정병동’ ‘하늘만큼 먼 나라’ ‘가위·바위·보!’ ‘숲속의 방’ 등 국내 창작극을 발굴했다. 1966년 한국 최초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비롯해 ‘꽃님이! 꽃님이!’ ‘지붕위의 바이올린’ ‘키스 미 케이트’ ‘갬블러’ 등 뮤지컬 연출도 했다. 이런 공로로 2016년 문화예술 공로자에게 주는 최고 훈장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부조리극 대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가 한국 무대에 깊이 뿌리내린 것도 고인의 공로다. 1969년부터 50년간 1500회 이상 직접 연출을 맡아 공연하며 22만명 넘는 관객을 만났다. 고인의 충실한 해석과 부인인 불문학자 오증자 서울여대 명예교수의 번역이 공연 첫해 베케트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맞물려 화제를 모으며, 유럽에서도 호평받았다.

고인은 삶을 연극에 다 바쳤다. 신문기자, 방송사 PD 등을 하며 배고픈 연극판을 지켰다. 산울림 소극장도 안정적인 공연장 확보를 위해 집 대신 마련한 것이다. 여섯 살 때부터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자란 장녀 임수진씨는 파리 유학 후 산울림 극장장, 아들 임수현 서울여대 교수는 산울림 예술감독을 맡아 남매가 ‘산울림 2기’를 물려받았다.

2014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고인은 “힘들 때도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바보처럼 죽기 살기로 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처럼”이라며 “‘나만의 고도’를 꼽는다면 갈등과 투쟁이 없는, 고루 여유 있게 사는 세상이다. 숱한 좌절과 무력감 속에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사회를 향한 예술의 소임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극을 100살까지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은 지켜지지 못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7일 오전 8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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