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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재난 땐 '라인' 써라" 국민앱 키워놨더니…경영권 노리는 일본,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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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라인 침공전 (上)

[편집자주] 네이버가 공들여 키운 글로벌 메신저 '라인'이 일본 정부의 먹잇감이 될 위기에 놓였다. 미국의 틱톡 강제매각법처럼 각 나라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를 넘어 외국 플랫폼 사냥에 직접 뛰어드는 시대, 한국 IT산업이 처한 상황과 대처 방안을 짚어본다.



'라인' 강탈, 네이버 힘 빼놓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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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현지시간)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부인 유코 여사가 미 메릴랜드주 앤드류스 합동기지에서 워싱턴 일정을 마치고 전용기에 오르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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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라인야후(LY) 경영권 사냥에 나섰다. 네이버(NAVER)와 소프트뱅크가 50%씩 보유한 합작사 A홀딩스의 지분율을 조정해 사실상 소프트뱅크가 전권을 휘두르게 하려는 포석이다. 일본 정부가 나서서 네이버의 지배력을 줄이라고 저격하는 데 대해 최수연 네이버 대표조차도 "굉장히 이례적인 행정지도"라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라인야후에 대한 지배력 상실은 단순히 일본 국민 메신저 라인(LINE)을 빼앗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1억명 가까운 동남아지역 라인 이용자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보폭을 넓히려던 네이버의 발판 자체가 흔들리는 격이다. 라인야후가 보유한 일본 유수의 이커머스, 간편결제, 배달앱 시장에서도 네이버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될 전망이다.

◇온 생활이 '라인'에서 가능…韓 카톡 뛰어넘는 日 수퍼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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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라인은 일본의 '국민앱'이다. 월 1회 이상 쓰는 이들이 9600만명이다. 메신저 기능에 더해 라인에서 뉴스를 접하고, 라인페이로 결제와 송금도 할 수 있다. 만화(라인망가), 음악(라인뮤직), 동영상 스트리밍(라인 VOOM) 등의 콘텐츠도 라인을 통해 즐긴다. 한국의 카카오톡을 뛰어넘는 일본의 수퍼 플랫폼으로 꼽힌다.

2011년 출시 당시만 해도 라인은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기획하고, '첫눈' 출신 신중호 현 라인야후 대표가 개발을 총괄한 한국산 서비스였다. 일본 기업 소프트뱅크와 '반반 경영'이 시작된 건 2019년부터다. 당시 네이버 자회사 라인과 소프트뱅크 계열사 Z홀딩스(야후재팬 운영사)가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 구조는 몇차례 변경을 거쳐 지난해 10월부터는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지분을 가진 A홀딩스 아래 라인야후가 자리잡게 됐다.

널리 알려진 합작의 이유는 간편결제 시장 등에서 수천억원을 소모하며 출혈 경쟁하던 라인과 야후의 '휴전' 성격이었다. 여기에 더해 아이폰을 일본에 독점 공급하던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아이폰에 탑재할 킬러앱으로 라인을 눈여겨보던 중 적극적으로 합작을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지진 나 전화선 끊어져도 라인은 '쌩쌩' 고품질 서비스에 일본 정부 '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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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구마모토 지진. /사진=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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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이 진가를 발휘한 건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당시였다. 기존 전화망이 끊긴 상황에서 일본 사람들은 라인을 통해 구조를 요청하고 지인들의 안부를 물었다. 이후에도 지진이나 홍수 등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핫라인' 역할을 도맡았다. 일본의 IT전문 애널리스트 미카미 히로시는 "재난 상황에서 전화가 몰리면 연결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음성전화 대신 라인을 사용해야 한다"고 일본 언론에 기고했을 정도다.

업계에서는 라인이 일본의 주요 인프라처럼 작동하다보니, 일본 정부에서도 서서히 지배력을 일본에 돌려놔야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 설립 이후 자유무역 기조에 따라 일본 역시 대부분의 산업분야에서 외국인지분율 제한 또는 외국인 이사 선임 제한 등을 철폐했다.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 NTT(일본전신전화)의 기간통신 부문이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 교수는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의 네이버 의존도를 낮추라고 요구한다는 건 이젠 라인이 기간통신 사업자 수준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NTT에 걸려있던 외국인 참여제한 규제를 라인에도 적용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인 뺏기면 아시아 시장에서 고전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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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라인


일본 정부가 노리는 것은 라인 메신저 서비스가 아닌, 서비스 운영사 라인야후의 모회사 A홀딩스 지분이다. 이 같은 '행정지도'를 네이버가 받아들일 경우 라인야후에 딸려있는 수많은 자회사들에 대한 입김까지 덩달아 약해질 수 있다. 라인야후는 일본 최대포털 야후재팬, 배달앱 1위 데마에칸, 이커머스 아스쿨, 간편결제서비스 페이페이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대부분의 일본 국민들이 설치한 '라인'을 통해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업종들이다.

라인을 기반으로 동남아 시장에서 보폭을 넓히려던 네이버의 글로벌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라인은 대만과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국민 메신저 지위를 누리고 있다. 결국 라인야후의 지배력을 잃는다는 건 일본 시장을 넘어 아시아시장을 공략할 주요 수단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성민 교수는 "현재 전 세계에서 수퍼앱이 가장 앞서나가는 곳은 위챗, 라인, 카카오톡이 활성화된 동북아지역"이라며 "잘 키워놓은 수퍼앱 라인에 대한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차원에서 바라볼 때 우리나라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네이버의 '피, 땀, 눈물'로 만들어진 라인…경영 독립성 보장에 뒤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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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라인 日 진출 타임라인/그래픽=조수아


일본 인구 1억2300만명 중 9800만명(80%)이 사용 중인 일본 국민 메신저 '라인'의 탄생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에 머물던 이해진 네이버(NAVER) 창업자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메신저 서비스를 떠올렸고 이로 인해 2011년 6월 탄생한 것이 라인 메신저다. 지금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지만 엄연히 한국인이 떠올린 아이디어이고 한국에서 개발한 서비스다.

2000년 9월 한게임 재팬을 설립하며 일본에 진출한 네이버는 초기에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다. 2000년 11월 (옛)네이버 재팬을 설립해 검색 시장에 도전했지만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야후!재팬'에 밀려 고전했다. 네이버는 2005년 8월 네이버 재팬 서비스를 종료했다가 2007년 11월 재설립하며 일본에 재진출한다.

라인 서비스 출시 프로젝트를 총괄한 사람은 검색 벤처 기업 '첫눈'의 창업자인 신중호 당시 NHN 이사다. 네이버의 투톱으로 불렸던 신 이사는 라인 메신저 개발을 주도한 뒤 이어서 라인주식회사 이사를 맡아 서비스의 안정적인 안착을 위해 노력했다. 2019년 4월엔 라인주식회사 공동대표에 올라 혁신 서비스 개발과 경쟁력 강화를 담당했다.

라인은 출시 이후 일본 현지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일본 국민 메신저가 됐다. 일본을 공략하기 위한 서비스인 만큼 대부분의 직원을 일본인으로 채용했고 초기 개발진은 한국 기술진이었지만 일본 현지에서도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했다. 라인은 일본이 만화의 나라인 만큼 다양한 만화 캐릭터를 활용한 이모티콘 스티커를 제공해 인기를 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지화 전략이 너무 강력했던 탓인지 라인이 성공하자 어느 순간부터 라인은 일본산(産)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라인 이용자 수가 1억명을 돌파한 직후인 2013년 3월 한 일본 언론에는 '라인은 일본산? 한국산?'이라는 제목의 인터넷판 기사가 올라왔다. 라인이 일본에서 기획되고 일본인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네이버 일본 법인에 속해있기 때문에 일본산이라는 주장이 중심 내용이었다.

기사에는 모리카와 아키라 당시 NHN 재팬 대표의 발언도 인용됐다. 그는 "80명 이상인 개발진에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래도 일본인의 비율이 70~80%나 된다"며 "세계 각지에서도 라인을 일본산으로 인식해 지금도 각국의 미디어가 도쿄 시부야에 있는 NHN 재팬 본사로 취재차 방문한다"고 했다. 이 밖에도 라인이 취득한 개인정보가 한국 정보기관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루머가 퍼지는 등 한일 관계가 어려워질 때마다 라인 국적 논란은 계속 불거졌다.

국적 논란이 계속되자 네이버는 라인을 2021년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이자 야후재팬을 운영하는 Z홀딩스와 통합해 LY(라인야후)를 만들었다. 그리고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각각 50%씩 출자한 A홀딩스가 LY의 지분 64.5%를 보유하는 최대주주가 됐다.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에 50%의 지분을 보장해준 것은 자체 의사결정을 수월하게 해 일본 내에서 라인 사업을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한 IT(정보기술) 업계 관계자는 "챗GPT 등 생성형 AI 시대가 되면서 일본 입장에서는 자국민이 가장 많이 쓰는 메신저를 한국에서 관리하는 게 불안한 것 같다"며 "데이터 보관이나 시스템 전반을 일본 기업이 전담하도록 해서 관리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라인이 네이버의 일본 사업에서 핵심인 만큼 네이버도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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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야후 지분구조/그래픽=조수아





'아시아 최고' 꿈꿨지만...네이버, 소뱅 협업 '경영권 상실' 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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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윤선정 디자인 기자


글로벌 진출 발판 마련을 위해 소프트뱅크와 손잡은 네이버(NAVER)의 결정이 이번 '라인야후 사태'의 자충수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시아 최고 인터넷 기업'을 꿈꾸며 이룬 경영 통합이 결국 경영권 상실이란 최악의 결말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의 협업은 5년 전 시작됐다. 양사는 인터넷 강국 미국과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2019년 11월 경영 통합 결정 후 2021년 합작법인 A홀딩스를 설립했다. A홀딩스는 밑엔 소프트뱅크 자회사 Z홀딩스를 두고 라인과 야후재팬을 운영하도록 했는데, 지난해 10월 Z홀딩스, 라인, 야후재팬이 합병해 탄생한 것이 '라인야후'다.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와 손을 잡은 이유는 단순하다. 글로벌 진출이다. 한국에 사업이 집중된 네이버가 '내수 기업' 꼬리표를 떼기 위해선 세계 무대 진출이 필수였다. 하지만 당시 구글에 대항하기엔 네이버는 변방의 작은 기업에 불과했고, 기술력과 맨파워가 부족했다. 이에 한글과 언어구조 및 문화가 비슷한 일본을 글로벌 진출 교두보로 낙점하고 소프트뱅크와 협업을 진행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선 '라인의 위기'도 소프트뱅크와의 경영 통합에 한몫했다고 본다. 10년 전 소프트뱅크는 '프리 IPO'(기업공개) 투자를 제안했지만, 라인은 이를 거절했다. 사업을 이미 정상궤도에 올렸고 자신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신저의 가치는 점점 하락하기 시작했다. 새 먹거리가 필요했던 라인은 '라인페이' 등 핀테크 사업에 도전했지만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라인의 강력한 경쟁자가 소프트뱅크의 간편결제 서비스 '페이페이'라는 점도 경영 통합에 결정타를 날렸다.

물론 소프트뱅크도 네이버가 필요했다. 2006년 보다폰 인수 후 아이폰을 독점 공급한 소프트뱅크는 한국의 카카오톡과 같은 킬러앱이 필요했다. 이에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2014년부터 메신저 라인에 관심을 보였다. 라인과의 협업을 위해 손 회장이 네이버에 여러 차례 구애한 일화가 있을 정도다. 라인에 프리 IPO 투자를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프트뱅크 역시 글로벌 진출에 갈급함이 있었다. 내수 시장에 국한된 핀테크 사업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글로벌 진출이 요구됐다. 특히 14억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중국의 '알리페이'를 뛰어넘기 위해선 세계로 무대를 옮겨야 했다. 핀테크 사업을 일본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통로가 필요했던 소프트뱅크는 그 매개로 라인을 낙점한 것이다. 라인은 일본뿐 아니라 태국, 대만 등 동남아 시장까지 진출한 상태였기 때문에 소프트뱅크 전략에 딱 맞아떨어졌다.

이같이 양사의 니즈가 맞물려 이뤄진 협업이지만, 일본 정부가 소프트뱅크에 네이버의 A홀딩스 지분 매입을 압박하면서 네이버의 '10년 공든 탑'이 한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라인야후에서 네이버 흔적 지우기가 예상보다 빠르고 강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며 "글로벌 진출 교두보 마련을 위해 협업한 결과가 기업 경영권까지 빼앗기는 악수로 작용된 셈"이라고 말했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이정현 기자 goronie@mt.co.kr 김승한 기자 win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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