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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국회의원 이모저모

“당론 무산시키는 일 없어야” 이재명 한 마디에 당론 반대하면 ‘수박’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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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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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당론 입법을 무산시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3일 제22대 국회 1기 원내대표를 선출하기 위해 모인 당선인들을 향해 “우리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라 할지라도 민주당이라는 정치 결사체의 한 부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당론으로 어렵게 정한 어떤 법안들도 개인적인 이유로 반대해서 추진이 멈춰버리는 사례를 제가 몇 차례 보았기 때문에 그것은 정말로 옳지 않다”고 못박았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은 헌법기관이지만 무소속을 제외하면 모두 정당인이기도 하다. 두 역할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이 대표는 두 입장의 ‘조화’를 강조하긴 했지만 사실상 전자보다는 후자에 방점을 찍었다. 개인보다는 당의 결정이 우선이니 당론을 거스르지 말라는 으름장이었다.

복수의 의원들은 이 대표의 발언에 의문을 표했다. 한 재선 의원은 6일 통화에서 “21대 국회 때 결정된 당론에 반대를 해서 일이 진척이 안 된 일이 없었던 거 같은데 (이 대표 발언의) 정확한 뜻이 잘 모르겠더라”고 했다. 한 서울 지역 의원은 “흔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왜 그러지’ 이런 느낌이 있었다. 도덕 강의 받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정당정치는 헌법 제8조에 기반을 둔 대의 민주주의의 근간 원리다. 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가의 보호와 자금 등을 지원받으며 그 해산 또한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아야 가능하다. “개인의 힘만으로 그 헌법기관의 위치에 가게 된 것이 아니”라는 이 대표의 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친 당론 강조는 당내 민주주의를 위축시킬뿐 아니라 헌법에 기반한 소신투표를 막는 위헌적 발상이 될 수도 있다. 헌법은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당론으로 합의하는 과정에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고 설사 다수결로 당론이 정해지더라도 소수의 의견을 찍어누르려는 행태는 비민주적이다. 헌법 제46조 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며 개별 의원의 소신투표를 보장한다. 국회법 제114조의2에 따르면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

논란이 되자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는 6일 MBC 라디오에서 이 대표 발언에 대해 “강제가 아닌 권고”라고 진화에 나섰다. 박 원내대표는 “다양한 의견과 자기의 신념에 따라서 충분히 이야기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서 “그렇지만 충분한 토론 끝에 당론으로 결정되는 결과가 나온다면 당연히 당인으로서 그거에 따라주기를 권고하는 게 당내 지도부 원내대표로서 요청드릴 사항”이라고 했다. ‘강제까지는 하지 않는다는 말이냐’는 질문에 “강제하겠다는 말을 민주당의 지도자가 하실 수 있겠나. 당부의 말씀”이라고 답했다.

이 대표 체제 민주당은 이미 당론에 대한 해석을 두고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9월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자유투표에 맡겼다. 하지만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친이재명계 의원들은 부결이 ‘사실상 당론’이었다며 반란표 색출에 나섰다. 당 지도부는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을 향해 “용납할 수 없는 해당행위”(정청래 최고위원) “배신과 협잡”(박찬대 당시 최고위원) “내부의 적”(서은숙 최고위원) 등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통상 당론은 의원총회를 거쳐 추인을 받는 형식을 거치는데 이 같은 절차도 밟지 않은 채 “사실상 당론”이었다고 주장한 전례를 만든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22대 국회에서도 이 대표와 지도부의 뜻에 기반한 당론에 반대했다가는 친이재명계 의원은 물론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의 집중공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딸들의 ‘수박’ 색출 작업이 22대 국회에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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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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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론 위배를 이유로 징계를 받은 사례는 과거에도 여야 모두에서 존재했다. 금태섭 전 의원(당시 민주당 소속)이 20대 국회이던 2019년 말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에 기권하자 당 윤리심판원이 경고 처분을 내렸다. 재심 청구에 당이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않자 금 전 의원은 탈당했다.

2010년에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함께 자신의 노동관계법 중재안을 표결처리한 추미애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당원 자격 2개월 정지를 받았다. 2013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자료제출 요구안’에 반대한 추미애·박지원·김성곤·김승남 당시 의원 등 4명은 윤리위원회 회부 없이 경고만 받았다.

한나라당은 1999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사정위원회법 표결과정에서 당론에 반해 찬성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이수인 전 의원을 제명하고 이미경 전 의원에 대해선 당권 정지 조치를 내렸다. 같은 해 9월 이미경 전 의원은 동티모르 파병동의안 표결과정에서 당론에 반해 찬성표를 던져 제명됐다. 같은 해 10월 두 의원은 함께 출당당했다.

2001년에는 김홍신 전 한나라당 의원이 건강보험 재정분리 당론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소속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로 강제 사보임됐다. 김 전 의원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으나 기각당했다.

헌재는 당시 결정 요지에서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도 특정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이 정당기속 내지는 교섭단체의 결정(소위 ‘당론’)에 위반하는 정치활동을 한 이유로 제재를 받는 경우, 국회의원 신분을 상실하게 할 수는 없으나 ‘정당 내부의 사실상의 강제’ 또는 소속 ‘정당으로부터의 제명’은 가능하다”고 했다.

신주영 기자 j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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