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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불안한 도전자 시진핑의 ‘세계 지배’ 전략 [박민희의 차이나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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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이 전쟁 방식을 선호한다면 몇년 안에 국제질서가 바뀔 것이고, 이데올로기 확장 전략을 선호한다면 대리전의 규모가 커져 현재 구도가 10년 이상 지속될 것이며, 기술과 혁신을 통해 경쟁하면 현재의 국제질서가 비교적 안정되면서 20년 이상 지속될 것이다.” 중국이 첨단기술 경쟁을 우선시하고 있지만, 전쟁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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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14일 워싱턴 백악관의 오벌 오피스에서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처음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시진핑은 미국을 향해 ‘태평양은 두 강국에게 충분히 넓다’며 두 대국이 동등한 관계라고 강조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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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도전해 ‘중국이 지배하는 세계’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은 언제였을까.



많은 이들이 2012년 2월을 꼽는다.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 취임을 앞두고 있던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했다. “태평양은 두 강대국에게 충분히 넓다”는 시진핑의 발언이 미묘했다. 시진핑 주석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국과 중국이 ‘신형대국관계’를 맺자고도 제안했다. 미-중 양국은 동등한 ‘대국’이며, 태평양을 동서로 나눠 태평양 서쪽의 아시아는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중국의 영향권으로 인정하라는 요구로 해석되었다.



중국이 이렇게 대담한 ‘도전장’을 내민 배경에는 미국 패권이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2008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실패와 금융위기라는 이중의 수렁에 빠지자, 2009년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국제 세력 균형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다”고 선언했다. 중국군을 중심으로 강경파들이 미국을 넘어서는 전략을 공공연히 주장하기 시작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대교(대령)이자 국방대 교수인 류밍푸는 2010년 ‘중국몽’을 출판했다. 그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는 것은 필연적이며, 중국은 미국과 전쟁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전쟁에 제대로 대비해야 하고, 장기간의 ‘지구전’으로 미국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 11월 중국 최고지도자가 된 시진핑은 류밍푸의 책에서 가져온 ‘중국몽’을 새 목표로 제시했다. 이 시기에 중국 해군은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만들고 활주로 등 군사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해 유라시아 대륙과 남중국해, 인도양까지 경제·정치·군사적 영향력을 파죽지세로 확대해 나갔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또 한번의 분수령이 되었다. 중국은 이 사건을 미국이 ‘돌이킬 수 없는 쇠퇴의 길’로 들어선 결정적 신호로 해석했다. 2017년 10월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백년만의 대변동”을 언급하며, 중국이 주도하는 ‘인류 운명 공동체’ 건설을 제안했다. 100년 만에 서구 주도 질서가 쇠퇴하고 중국이 부상하는 역사적 전환기가 오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2018년부터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인 중국 견제에 나서면서 양국의 ‘격투기’가 본격화 했다. 중국도 공세적인 ‘전랑외교’로 맞섰다. 시진핑 주석은 3번째 임기를 시작한 2022년 11월 20차 당대회에서 ‘중국식 현대화’를 새 목표로 내놓았다. 공산당의 영도를 굳건히 지키면서 경제뿐 아니라 제도, 이념 등에서도 중국이 서구를 대신할 발전 모델과 대안적 질서를 본격적으로 만들어나가겠다는 선언이다.



많은 이들이 중국이 능력을 감추고 서서히 힘을 쌓아가는 ‘도광양회’를 너무 일찍 끝내고 미국과 격차가 여전히 큰 상태에서 무모한 도전장을 던진 것 아니냐고 의아해한다. 2010년 무렵 미국 주도 질서 하에서는 중국이 공산당 집권 체제를 계속 유지하면서 더는 부상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으로 나아간 것에 그 답이 있다. 장윤미 동서대 연구교수는 “중국공산당이 추진한 개혁개방은 19세기 청말 ‘양무운동’의 논리와 유사하게 중국의 제도와 문화를 변화시키지 않고 서양의 물질적인 면만 차용하려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중국은 처음부터 공산당 일당통치와 제도를 확고히 지키려는 원칙이 분명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시장과 통합해 급성장했지만, “세계화 흐름이 투자와 교역을 넘어, 제도와 기술, 금융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중국의 체제 속성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임계점에 도달”하자, 중국공산당은 미국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것을 분명히 할 수밖에 없었다. 장 교수는 중국이 두 가지를 가장 경계하고 있다고 본다. “공산당 통치가 붕괴한 소련의 길과, 금융 분야에서 미국에 양보해 경제적으로 쇠락한 일본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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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중국의 세번째 항공모함 푸젠함이 시험항해를 하는 모습. 푸젠은 대만에 인접한 지명에서 따왔다. CCTV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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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미국을 대신할 세계의 패권국,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도전장을 던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 통치와 중국 제도를 지키면서 미국의 포위망을 극복하려면, 결국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약화시켜야 한다는 판단이 점점 확고해졌다. 중국은 미국과의 힘의 격차에 대한 정교한 계산 속에서 도전 강도를 조절해 왔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의 패권이 점점 더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보지만, 동시에 미국의 민주당 정부든 공화당 정부든 대중국 화해 정책을 취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점점 더 거세게 중국을 압박하고 견제하리라는 불안감이 크다는 얘기다.



시진핑 주석의 3번째 임기가 시작된 2022년 11월 이후 중국 행보가 모순적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역할을 확대하면서, 경제 회복을 위해 외국 기업가들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강조한다. 2023년 3월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재개를 중재했다.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이후에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등 미국 동맹국들과의 관계 개선에도 주도적,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내부에선 2023년 7월부터 개정 반간첩법을 시행하고, 외국인을 ‘잠재적 간첩’으로 경고하는 캠페인을 계속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중국인들과 자유롭게 교류하거나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감시와 통제를 강화했다. 식량 안보와 공급망 자급자족을 요구하고, 만일의 전쟁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강조한다.



미국이 동맹국을 규합해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는 데 대한 불안감은 크다. 중국지도부는 현재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단독으로 맞설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미국 국내 혼란이 심하고, 인도·브라질을 비롯해 글로벌 사우스 대국들이 미국과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은 중국에 유리한 국면이라고 판단한다. 러시아, 이란 등과 협력해 ‘만리장성’을 쌓고,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공을 들인다.



중국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경쟁이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고, 제조업 생산 능력에서 중국에 크게 뒤진 미국의 약점을 냉철하게 파고들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야오양 베이징대 교수는 4월4일 국제시사전문 매체인 ‘관찰자’와의 인터뷰에서 “중-미 간 경쟁은 앞으로 20~30년 동안 크게 변할 수 없고, 두 나라는 경제, 지정학 등 거의 모든 방면에서 경쟁할 것”이라며,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이미 미국이 막을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미국의 제조업 공동화는 너무나 심각하다. 미국이 전략적 실수를 했다”고 했다.



대표적인 현실주의 전략가인 옌쉐퉁 칭화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펑파이’ 신문 인터뷰에서 “세계는 다극질서가 아닌 미-중 양극 체제로 들어섰다”고 단언했다. “중국의 종합 국력은 미국과 아직 차이가 있지만 미-중 간 차이보다는 두나라와 다른 대국들 사이의 차이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그는 미-중 경쟁의 양상과 결과는 두 나라 정책 결정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들이 전쟁 방식을 선호한다면 몇년 안에 국제질서가 바뀔 것이고, 이데올로기 확장 전략을 선호한다면 대리전의 규모가 커져 현재 구도가 10년 이상 지속될 것이며, 기술과 혁신을 통해 경쟁하면 현재의 국제질서가 비교적 안정되면서 20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첨단기술 경쟁을 우선시하고 있지만, 전쟁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는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저서 ‘세개의 전쟁’에서 미국과 중국은 ‘신냉전’이 아닌, 강대국 사이의 세력권 경쟁으로 들어섰다고 분석한다.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근본 이유는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기존 국제질서에 중국이 균열을 내며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으로는 중국의 군사력이 팽창하면서 미국의 세력권과 부딪히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도전은 중국공산당 통치를 유지하면서 경제적 영향권을 확대하려는 목표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은 군사적 팽창과 미국과의 대립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세력권이 갈수록 겹치고 경쟁하면서, 대만해협, 남중국해 등에서 긴장이 고조된다. 김 부소장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세력 균형의 변화가 한국에 큰 도전인 것은 분명히 직시하되, 중국을 적으로 만들지 않는 유연한 외교 안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쟁과 약육강식의 무거운 역사가 귀환하는 위태로운 시대를 이곳의 정치 지도자들은 직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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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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